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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아무튼, 주말] 미군 헬기는 왜 한강 축구장에 내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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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착으로 본 서울 헬기장 현황

조선일보

지난 2일 주한 미군 헬기가 엔진 고장으로 서울 이촌한강공원 거북 축구장 공터에 비상착륙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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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3시 45분쯤 주한 미군 소속 UH-60 블랙호크 헬기가 엔진 고장으로 서울 용산구 이촌한강공원 거북 축구장 공터에 비상착륙했다. 축구장 바로 옆엔 편의점과 주차장, 안내센터 등이 있어 하마터면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대낮 눈앞에서 벌어진 아찔한 상황에 인근 아파트 주민과 한강을 산책하던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산책 나갔다가 머리 위에서 헬기가 에프킬라 맞은 파리처럼 비틀거려서 허걱했다” “전쟁 난 줄 알았다”…. 이날 네이버 동부이촌동 커뮤니티엔 관련 반응이 이어졌다.

미군 헬기는 왜 한강공원 축구장에 착륙했을까. 원래 비상착륙용 공간일까, 우연히 이곳을 선택한 것일까. '아무튼, 주말'이 사건을 되짚어 보고, 서울의 헬기장 현황도 알아봤다.

미군 헬기, 왜 한강공원에?

이날 미군 헬기는 용산 기지에서 출발해 평택 주한 미군 기지로 가던 중이었다. 주한 미군 관계자는 "헬기 두 대가 떠서 평택으로 가는 가운데 한 대가 엔진에 문제가 생겨 점검차 착륙했다"며 "시간 여유가 없어 눈에 보이는 곳 중 안전한 공간을 찾아 다급하게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헬기가 내린 축구장은 잔디가 깔리지 않은 공터. 바로 옆 이촌한강공원 안내센터 직원은 "굉음과 함께 건물이 너무 흔들려 지진 난 줄 알았다. 순간 창밖으로 헬기가 보이더니 안내센터 건물을 30㎝~1m 차이로 스쳐 공터에 불시착했다. 불과 15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기간제 근로자들이 일하는 컨테이너 시설에 착륙할 뻔했는데 조종사가 운전이 능숙해 아슬아슬하게 피했다고 들었다"며 "마침 코로나 때문에 체육 시설을 폐쇄했고, 평일 낮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간이 이동식 천막 한 동과 위성 안테나 등 일부 시설이 프로펠러 바람으로 파손됐다.

사건은 하루 반짝 뉴스 창을 달구고 해프닝처럼 지나갔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전문가들은 꽤 긴박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봤다. 거북 축구장에서 불과 800m 떨어진 곳에 노들섬 헬기장이 있었고, 이륙한 모(母)기지 용산 기지 헬기장도 1㎞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정식 헬기장 두 곳을 지척에 두고 한강공원 축구장에 착륙한 것이다.

서울시 소방항공대 황웅선 기장은 "조종사들은 고장을 인지했을 때 위급한 정도에 따라 land immediately(즉시 착륙), land as soon as possible(가능한 한 신속히 착륙), land as soon as practicable(심각한 고장이 아니어서 즉각 착륙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으로 나눈다"며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모기지나 인근 노들섬 헬기장까지 안 간 것으로 보아 조종사가 상황을 심각하다고 인지해 즉시 착륙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황 기장은 "즉시 착륙해야 된다고 판단하면 최인근 개활지(開豁地·앞이 막히지 않고 탁 트여 시원하게 열려 있는 땅)를 찾아 비상착륙 절차를 수행해야 한다. 지체하면 더 큰 사고와 피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은 조종사가 한강공원 축구장을 비상착륙장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비상시엔 최대한 신속 착륙이 가장 중요하다. 조종사가 임기응변으로 착륙 장소를 결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항공대 관계자는 "항공 종사자 눈으로 보면 탑승자, 지상 민간인, 재산상 피해 없이 안전하게 비상착륙한 것이니 조종사가 대처를 잘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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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헬기장 619곳

63빌딩,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법원종합청사, 광화문 교보빌딩…. 위치, 용도 서로 달라 보이는 이 빌딩들의 공통점은? 옥상에 헬기장이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서울 시내 곳곳에 헬기장이 있다.

서울시 소방항공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에 있는 헬기장(군용 헬기장 제외)은 619곳. 구체적으로 지상 헬기장·착륙장 15곳, 산악 헬기장 35곳, 고층 건물 옥상 헬기장(병원 헬기장 포함) 569곳 등이다. 이 가운데 사각형 착륙장, H자 표지, 야간 착륙이 가능한 등화 시설, 풍향계 등을 갖춘 정식 '지상 헬기장'은 잠실·노들섬·중랑천·서울만남의광장·반포(수난구조대) 헬기장 등 5곳. 시설은 갖춰지지 않았지만 일정 공간이 확보돼 임의로 쓸 수 있는 '지상 착륙장'은 올림픽공원, 암사 아리수정수센터, 보라매공원, 녹천교 인라인장, 광나루 비행장, 안양천변 축구장 공터, 중랑천변 인라인장, 뚝도 아리수정수센터, 상암 평화의공원 내 유니세프 광장, 신정교 남단 축구장 등 10곳이다.

밀도 높은 대도시 서울은 헬기에는 그야말로 ‘헬(지옥)’이다. 부족한 지상 공간을 대체하는 곳이 건물 옥상.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서 내려다봤을 때 고층 건물 꼭대기에 커다랗게 ‘Ⓗ’ 표시가 있는 게 눈에 띈다. 헬리콥터 이착륙에 쓰는 공간인 ‘헬리포트(heliport)’ 표시다. 일정 조건의 고층 건물엔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헬기로 대피할 수 있게 옥상 헬기장을 갖추도록 법으로 규정해 놨다. 건축법 시행령에 “층수가 11층 이상인 건축물로서 11층 이상 층의 바닥 면적 합계가 1만㎡(약 3025평) 이상인 건축물(평지붕인 경우에 한함) 옥상에는 헬리포트를 설치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헬리포트 길이와 너비는 각각 22m 이상을 권고하나, 옥상 바닥 길이와 너비가 22m 이하일 경우 각각 15m까지 줄일 수 있다. 중심에서 반경 12m 이내엔 장애가 되는 건축물, 공작물, 조경 시설, 난간 등을 설치할 수 없다. 표시 크기까지 세심하게 규정해 뒀다. Ⓗ 표시에서 바깥 원 지름은 8m, H자와 원의 선 너비는 각각 38㎝, 60㎝다. 서울시내 옥상 헬기장 569곳 중 187곳이 31층 이상 고층 건물에 있다.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 삼성동 아이파크,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 입주민 대피를 위한 비상용으로 옥상 헬기장을 갖춘 아파트도 꽤 많다. 응급 환자 이송에도 헬기는 없어서는 안 될 수단. 서울대병원, 고려대구로병원, 서울성모병원, 신촌세브란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의료원, 국립경찰병원, 은평성모병원, 이대서울병원 등 병원 10곳 옥상에도 헬기장이 있다. 조난객 구조 등을 위한 산악 지역 헬기장은 북한산 7개, 도봉산 4개, 관악산 6개, 우면산 2개 등 총 35개가 있다. 재난 발생 시 비상착륙 공간으로 쓰이는 공간도 있다. 널찍하면서 큰 장애물 없이 텅 빈 대형 경기장이나 운동장이다. 목동 주경기장, 잠실 보조경기장, 태릉선수촌 운동장, 효창운동장 등 경기장 4곳과 건국대·경희대·고려대·국민대·동국대·삼육대·서강대·서울과학기술대·서울대·서울시립대·숭실대·연세대·한체대·한양대 등 서울 시내 대학 운동장 14곳도 유사시 헬기 비상 착륙 공간이다. 군용 제외 국내 등록 헬기 200여 대 서울지방항공청에 따르면 군용·경찰·세관 헬기를 제외하고 등록된 국내 헬기는 총 205대. ▲지자체·소방·산림청 등 국가기관용 헬기 80대 ▲LG전자·포스코·SK텔레콤·현대자동차·한화솔루션(구 한화케미칼) 등 기업에서 보유한 자가용 헬기 16대 ▲홍익항공, 글로리아항공, 통일항공 등 사업용으로 민간 업체에서 보유한 헬기 109대다. 경찰청은 총 20대를 보유하고 있고, 이 중 서울청 경찰항공대에서 대형 28인승 MI-172 2대, 소형 7인승 BELL-206 1대 등 3대를 운용하고 있다. 서울시 소방항공대에선 18인승 AW-189 1대, 14인승 AS365 2대를 보유하고 있다. 헬기의 응급 환자 이송이 지체되는 일도 종종 생긴다고 한다. 황웅선 기장은 “나들이나 운동하던 사람들이 헬기 착륙장 주변 안전 장소로 비켜주지 않을 때가 있는데, 헬기 하강풍 때문에 안전사고가 생길 수 있어 조종사들은 환자를 태운 상태로 공중에서 발을 동동거린다. 이럴 때 통제에 적극 협조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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