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차례 "숨 쉴 수 없다" 호소했지만 외면당해
"엄마 사랑해요" "애들에게 사랑한다 전해달라"
전 세계 인종차별 반대시위를 촉발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발생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당시 백인 경찰이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고 있다. 미니애폴리스=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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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州)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는 백인 경찰들에게 체포되던 중 "숨을 쉴 수 없다"고 20차례 이상 호소했다. 하지만 그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던 경찰은 "산소가 많이 소모되니 그만 말하라"며 외면했고, 바로 옆에 있던 다른 경찰은 "말 잘 하네"라며 비웃기까지 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반대시위를 촉발시킨 조지 플로이드 사망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공개됐다.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경찰관 토마스 레인이 법정에 제출한 바디캠 녹취록을 통해서다.
미 CNN방송과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이 8일(현지시간) 보도한 녹취록을 보면, 플로이드는 바닥에 엎드린 자신의 목을 경찰관 데릭 쇼빈이 무릎으로 누르자 "숨을 쉴 수 없다"고 거듭 말했다. 이에 쇼빈은 "그럼 말을 그만하고 소리도 지르지 마라. 말하는 데 엄엄청난 산소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옆에 있던 다른 경찰관 알렉산더 킹 역시 "괜찮아, 말 잘 하네"라며 플로이드의 호소를 무시했다. 플로이드는 계속해서 "그들(경찰)이 날 죽일 거다. 숨을 못 쉬겠다"고 말했지만 경찰관들은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플로이드는 몇 분 후 의식을 잃었고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후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당시 경찰은 한 상점에서 플로이드가 20달러 위조지폐를 사용한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경찰관 레인이 주차된 차 안에서 플로이드를 발견하고 하차를 요구하자 플로이드는 "미안하다. (그런데) 난 아무짓도 안 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는 거냐"고 물었다. 실랑이를 하다 레인이 총을 꺼내들자 플로이드는 총을 쏘지 말라고 거듭 말하면서 차 밖으로 나왔다. 과거 총상 경험이 있다면서 총을 쏘지 말라고 재차 말하자 레인은 "쏘지 않겠다"면서 플로이드를 경찰차 쪽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바디캠에는 플로이드가 경찰차에 타는 것 자체에 겁을 먹은 모습도 보였다. 그는 "밀실 공포증이 있다"거나 "아무도 해치지 않겠다"고 말하며 수갑을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플로이드를 경찰차에 태우려고 할 때 현장에 도착한 쇼빈은 막 차에 탄 그를 다시 길바닥에 끌어내렸다. 이때 플로이드는 "엄마, 사랑해요" "내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 "난 이제 죽을 거다" 등의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고통을 호소하던 플로이드가 어느 순간 반응이 없자 레인은 쇼빈에게 "의식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지만 쇼빈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레인이 플로이드의 자세를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두 차례 말했고, 지나가던 시민들마저 "맥박이 뛰냐"고 의구심을 표했는데도 쇼빈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플로이드가 의식을 잃은 후에도 그의 목을 압박한 채로 응급차를 기다렸다.
이 같은 바디캠 녹취록은 플로이드 살인 공모 혐의로 기소된 레인이 자신의 무혐의를 주장하려고 바디캠 녹취록을 법원에 제출하면서 알려졌다. 레인의 변호사는 20년차 베테랑 경찰관 쇼빈의 말을 연차가 낮은 다른 경찰관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레인은 진술서를 통해 "쇼빈의 판단을 믿어서 플로이드가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WP는 "경찰의 잔혹성ㆍ인종차별과 관련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시위를 촉발한 이번 사건을 녹취록을 통해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면서 "플로이드가 경찰에 협조하려고 했고 죽음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쇼빈은 2급 살인 혐의 등으로 구속됐고, 현장에 함께 있던 레인 등 3명의 경찰관은 공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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