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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IT과학칼럼] 행복한 ‘절대기술’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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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험난한 세상을 헤쳐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엄청난 위로와 위안을 주는 여러 가지 것 중에 으뜸으로 종교를 생각할 수 있다. 세상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관련해 온갖 불행 속에서 힘들어할 때마다 신과 같은 절대자는 인간에게 큰 위로와 행복을 준다. 때로는 그 말씀 속에서, 또 기도를 통해서 지혜와 해법까지 찾아 다시 힘을 얻고 살아간다. 빠져든 고통이나 절망의 늪의 깊이에 따라 그 위로의 정도는 크게 달라지지만 말이다. 새삼 큰 위로와 행복을 주는 그 절대자의 전지전능함에 머리가 절로 숙어진다.

오랜 역사를 거듭해오면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결실을 얻고, 하늘과 기후조건에 의존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18세기 증기기관 발명 이후 200여년 동안 우리는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 속에서 나날이 변해가는 기술을 신기해하고, 또 그다음의 기술을 기다리면서 이를 매번 즐기며 탐닉해왔다. 한때는 심지어 어떤 TV를 꼭 사야겠다는 것이 삶의 작은 목표가 되기도 했었다. 요즘이야 TV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왔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우리는 공장이나 일터에서 일할 기회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으며 사업주의 배려로 매달 월급봉투를 꼬박꼬박 받아쥐며 흐뭇해하기도 했고 원하는 물건을 사며 기뻐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기술의 진보와 성과에 그저 경의를 표할 뿐이다.

이 기간 인간의 기술은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소위 ‘경박단소(輕薄短小)’라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섰다. 그러기 위해 사람들은 밤을 낮처럼 여기고 끊임없이 개발에 또 개발을 거듭해왔고 더 나은 성과를 쟁취했었다. 사업주의 경우에도 극히 일부는 근로자 착취를 통해 자신만의 치부에 혈안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근로자보다 더 큰 고심과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사업주와 근로자는 협심하며 생산성 향상과 인류의 행복이라는 거대한 목표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지구온난화, 수질오염, 플라스틱 섬 등 환경 이슈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원인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었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반작용이며 후폭풍이라는 점은 경악하게 한다. 일단 과학기술로 발생한 문제인 만큼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을 다시 과학기술로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기는 하겠지만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말하자면 정말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아주 오래전 몇십만년마다 크고 작은 빙하기를 만들면서 자연은 스스로 그 재정비 작업을 조용히 진행했다. 그 결과, 모든 생물과 그에 따른 현상은 스스로 제어되고 복원되며 또 정화되고 그러면서도 전혀 문제없이 선순환됐었다.

지금껏 자연이 그리해왔듯이 아무 문제가 없는, 그래서 스스로 만들어지고 스스로 작동하며 적당한 때에 맞춰 스스로 자연스럽게 처리되는 바로 ‘절대자’와 같은 그런 ‘절대기술’은 없을까?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진정한 ‘지속 가능 발전’이란 바로 이러한 절대기술이 있어야만 행복한 실현이 되는 것이리라.

길가의 높은 뾰족탑 위 빨간 십자가를 보며 절대자에게 잠시 기도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만들고 쓰고 버리고 하더라도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그런 행복한 절대기술을 내려주십사고 말이다.

최규하 한국전기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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