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아했지만 의견 못 내는 상황”… 운동처방사 안씨 성추행 폭로 잇따라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 선수 추가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뉴스1 |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 유망주였던 고(故) 최숙현 선수를 상습 폭행한 인물로 지목된 전 경주시청 운동처방사(일명 ‘팀닥터’) 안모씨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최 선수의 동료선수 A씨는 “안씨가 선수들에게 치료 목적이라며 성추행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A씨는 8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팀닥터는 치료 목적으로 마사지하는 와중에 허벅지 안쪽으로 과하게 손을 뻗거나, 2018년 10월 홍콩 대회를 나갔을 때 허리 부상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가슴을 만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성추행을 의심할 상황이었지만, 바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는 “의아하긴 했지만 의견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 말하지 못했다”며 “제가 거기서 ‘왜 이렇게 하세요’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안씨가) ‘내가 이렇게 한다는데 네가 왜’ 하거나, 욕을 하거나, ‘그러면 너 이제 나한테 치료받지 마’ 이러거나 반응할 수 있지 않았겠냐”고 했다.
‘실제 근육을 푸는 치료와 성추행의 차이를 선수라서 더 잘 알지 않나’라는 질문을 받은 A씨는 “안다. 제가 느끼기에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어 “다른 선수도 저처럼 치료 목적으로 (마사지를) 하다가 허벅지 안쪽을 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A씨는 자신을 비롯한 동료 선수들이 안씨를 의사로 알았다고 전했다. 그는 “전부 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나는 미국에 자격증이 있다’ ‘수술을 하고 왔다’ ‘펠프스 선수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면서 “펠프스 몸을 봐줬다는 얘기를 하는데, 처음엔 안 믿다가 국가대표도 많이 만들어냈다고 얘기하니 의사 면허증이 있겠구나, 수술하고 교수라고 하니 감독님도 ‘닥터 선생님’이라고 부르니까 당연히 그렇겠구나 믿었다”고 말했다.
소속팀 감독과 선배 선수들의 폭행·폭언에 시달리다 지난달 말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최숙현 선수의 유골함. 뉴시스 |
안씨는 최 선수가 폭행 가해자로 고소한 4명 중 1명이다. ‘팀닥터’로 불렸지만, 의사나 물리치료사가 아닌 운동처방사 2급 자격증만 소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날(7일)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최 선수 동료들의 자필 진술서에 따르면 안씨는 여성 선수들만 머무는 숙소에 술을 들고 찾아오는 등 성추행을 의심케 하는 정황이 다수 등장한다. 한 선수는 “(훈련시간 외에 안씨가) 식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불렀다”며 “훈련을 끝내고 와서 피곤하고 가기 싫었지만, 주 2~3회 불렀다”고 밝혔다. 이어 “언젠가 저녁을 먹었다고 말했는데도 밤 7시30분이 넘어 와인 한 병을 들고 (여성 선수 숙소에) 와서 혼자 마셨다”고도 했다.
다른 선수는 “안씨가 갑자기 방으로 불러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라며 뺨을 2차례 때리더니 갑자기 웃으면서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고 예뻐했는데’라며 볼에 뽀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안씨가) ‘네가 나한테 해준 게 얼만데 선물 하나 안 해 주냐’며 뺨을 때리고, (이런 과정의) 반복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선수는 “안씨가 훈련과정 중 수영 동작을 알려준다면서 서 있는 상태에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한쪽 손으로 목을 감았다”며 “(안씨가) ‘본인 목을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끌어안을 때처럼 끌어안으라’고 말해 굉장히 불쾌했다”고 증언했다.
여준기 경북 경주시체육회장이 8일 오전 고 최숙현 선수의 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술론 직장운동부팀에서 활동했던 운동처방사 안모씨를 성추행과 폭행혐의로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에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뉴스1 |
한편 경주시체육회는 경주시청 소속 트라이애슬론 선수들의 진술을 토대로 안씨를 성추행과 폭행 등 혐의로 이날 고발했다. 최 선수는 숨지기 전인 지난 3월5일 ‘훈련 중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전 소속팀인 경주시청의 김규봉 감독과 운동처방사 안씨, 선배 선수 등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후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숨졌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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