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하는 학생도, 기자 만난 교사도 슬픔 감추지 못해
최 선수 부친 “딸이 고통 벗어나 행복하고 싶었나 보다”
6일 직원회의 묵상으로 시작, 교사들 검은 리본 달기로
경북체육고등학교 2016학년도 졸업앨범에 실린 고(故) 최숙현 선수의 사진. [최 선수 유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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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후 경북 경산시 신교동 경북체육고등학교. 이곳은 감독과 팀닥터, 선배 선수들의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소속 고(故) 최숙현 선수의 모교다. 최 선수가 다녔던 경북체육중학교도 함께 위치해 있다.
경북체고 2016학년도 졸업앨범엔 최 선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졸업앨범 속 최 선수는 친구들에 비해 상당히 앳된 얼굴로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각자 개성을 살린 옷차림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에서 최 선수는 트라이애슬론 종목을 상징하는 싸이클을 한 손에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싸이클 수트와 스포츠 선글라스까지 갖추고 카메라 앞에 선 최 선수는 그 시절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해맑은 표정을 보였다.
다만 졸업앨범에 남긴 한 마디는 최 선수가 그 시절 삭이고 있었을 고통이 묻어나는 듯했다. 그는 졸업앨범에 ‘흙길 그만 걷고 꽃길만 걷자’라고 적었다. 최 선수의 아버지는 “딸이 고등학교 2~3학년 때부터 고통 속에 살았는데 졸업 후에는 행복한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적은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경북체육고등학교 2016학년도 졸업앨범에 실린 고(故) 최숙현 선수의 사진. 트라이애슬론을 상징하는 싸이클을 들고 있다. [최 선수 유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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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체육고등학교 2016학년도 졸업앨범에 실린 고(故) 최숙현 선수의 한 마디. '흙길 그만 걷고 꽃길만 걷자'라고 적혀 있다. [최 선수 유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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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체고 학생들 사이에선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학교 선배인 최 선수가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계속된 무거운 침묵이다. 학교 앞 운동장에서 체력 단련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트랙을 따라 열맞춰 뛰고 있는 학생들도 하나같이 굳은 표정이었다.
교직원들도 최 선수 얘기가 나오면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학교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안타까움이 크다고 했다.
최 선수를 지도했던 교사들은 이 학교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학교 교사들 대부분은 언론 보도를 통해 최 선수가 경북체고 출신이란 사실을 알았다. 최 선수가 학기 초 담임교사와 상담을 한 기록도 없었다. 학교 기록물보존연한인 3년이 지나 최 선수의 상담기록부는 폐기됐다.
6일 경북 경산시 경북체육고등학교 전경. 이 학교는 고(故) 최숙현 선수의 모교다. 김정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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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경북 경산시 경북체육고등학교 전경. 학생들이 트랙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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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수와 친하게 지낸 친구의 기억도 그랬다. 한 친구는 “정말 성실하고 착한 친구였는데 (감독과 팀닥터 등이) 그 친구를 그렇게 억압했다. 기숙사에선 밤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 같이 운동을 하는 친구로서 마음이 아팠다. 더 들어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말했다.
최 선수를 가르쳤던 1~3학년 담임 교사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최 선수의 각 학년 담임을 맡았던 교사 3명 중 1명은 퇴직을 했고 2명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는데, 모두 이 사건으로 깊은 충격에 빠져 슬퍼하고 있다”며 “언론과의 인터뷰도 하기 힘들 정도로 우울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북체육고등학교 2016학년도 졸업앨범에 실린 고(故) 최숙현 선수의 사진. 동기들과 재미있는 복장을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 선수 유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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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선 감독이나 팀닥터가 최 선수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가게 할 만큼 가혹한 폭행이 있었는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김 교감은 “트라이애슬론은 세 가지 종목을 섭렵해야 하니 아주 어린 나이의 학생을 발굴해 지도해야 한다”며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낸 학생을 그렇게 했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했다.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 선수. [최선수 가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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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수 유족 측이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는 팀닥터의 실체에 대해서도 학교 교직원들은 의아해 했다. 한 교직원은 “팀닥터를 둘 정도면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같은 프로팀 정도는 돼야 하는데 소수 종목의 작은 팀에서 팀닥터를 고용했다는 건 이상한 일”이라며 “해당 팀닥터는 이 사건이 알려지기 전까지 들어본 적도 없고 학교에서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 최숙현 선수 사망 관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참석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직장 운동부 감독 A씨(왼쪽부터), 주장 B씨, 선수 C가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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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과 선수들은 폭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모 감독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6일 긴급 소집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원회 현안질의에 나와 “폭행과 폭언 사실이 없느냐”는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 물음에 “그런 적 없다”며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경산=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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