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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슈 故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지옥 같았던 뉴질랜드 전지훈련…故최숙현 선수에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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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살고 싶거든 선배한테 빌어”… 자칭 ‘팀닥터’는 “잘못했으면 굶어”

세계일보

최숙현 선수의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일지. 연합뉴스


“욕을 밥보다 많이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다. 뇌도 같이....”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인 고(故) 최숙현 선수는 2017년 2월 8일 뉴질랜드 전지훈련장에서 자신의 훈련들을 기록한 일지에 이같이 적었다. 일지에 따르면 이날은 최 선수가 훈련 대신 ‘휴식’하는 날이었다. 최 선수는 “왜 살까, 죽을까. 뉴질랜드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지”라며 일지에 ‘기록’ 대신 ‘고통’을 남겼다.

7일 최 선수의 녹취록, 동료들의 증언, 체육회 등에 따르면 그는 경주시청팀에 입단하기 전인 2016년 2월 뉴질랜드 전지훈련부터 가해자들의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말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세계철인3종경기협회’에서 승인한 대회들이 열리는 나라로 대형 호수를 중심으로 수영, 사이클, 마라톤 등 3종 훈련을 진행하기 알맞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입단 전 전지훈련부터 시작된 폭언·폭행…감독은 “살고 싶으면 A선수에 빌어라”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최 선수는 소속팀 여자 선배인 A선수에게 운동화로 얼굴을 내리치는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선수는 최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한 4명 중 1명이다. 최 선수는 A선수가 연습 종료 직후 갑자기 달려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했다고 했다. 동료들도 이를 지켜보고 있었으나 감독은 달려와 “(A선수가) 손으로 때린 게 아니라 신발로 때렸다”라며 대놓고 A선수 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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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선수 가혹행위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 A선수가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 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심지어 “살고 싶으면 A선수에게 빌어라”라고 최 선수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선수는 이후 무릎을 꿇고 A선수에게 사과했다고 했다. A선수는 국제대회 메달리스트로 철인3종 종목의 간판스타로 알려졌다.

이듬해인 2017년 2월 뉴질랜드 전지훈련에도 최 선수를 향한 괴롭힘은 계속됐다. 특히 이때부터 최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한 또 다른 선배인 B선수가 등장했다. 최 선수는 훈련일지에 “수영 잘하고 있는데 남자 선배 B씨가 지나갈 때마다 뒤에서 발을 잡아당겼다”며 “욕은 내가 다 먹고 자기가 나에게 욕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적었다. 이어 “덕분에 A선배랑 완전히 모른척하게 됐다”며 “어디 말할 곳도 없고...”라고 말 못할 고통을 전했다.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에 제출한 진정서에서도 같은 해 3월 뉴질랜드 훈련 중 A선수와 B선수로부터 폭언을 들은 것을 증언했다. 당시 사이클 훈련 중 최 선수는 넘어져 다치는 사고를 당했고 A선수와 B선수가 “정신을 차리지 않고 운동한다”며 심한 욕설을 했다고 했다. 특히 “B선수가 툭하면 트집을 잡아 공공연하게 욕설을 했고 뒤통수를 가격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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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 선수들과 이용 의원 등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피해실태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B선수는 최근 국회에 출석해 이에 대해 “폭행한 적이 없으니 사과할 일도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전직 동료들로부터 “그의 가혹행위 때문에 철인3종을 그만뒀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최 선수의 가족들은 최 선수가 2017년 뉴질랜드 전지훈련쯤부터 고통을 토로했다고 말하고 있다. 최 선수 아버지 최영희씨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 선수가 주장 (A)선수의 지시로 남자 선수들에게 각목으로 피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맞은 적이 있다”며 “뉴질랜드 전지훈련에서 ‘왕따 당했다’, ‘힘들다’ 이런 식으로 괴로움을 (담아)문자도 하고 카톡도 하고 전화도 하면서 그때 (최 선수의 피해 사실을)처음 알았다”고 털어놨다.

◆ “네가 못 맞아서 동료가 맞는다” 뉴질랜드 합숙마다 구타 이어져…부모들은 정체모를 항공료 지불

최 선수는 합숙, 전지훈련 과정에서 나타난 지속적인 괴롭힘을 점차 주변에 알리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에서 겪은 폭행과 폭언들에 대해 녹취를 남겼다.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가해자 중 한명인 팀닥터 C씨는 최 선수에게 “3일 굶자. 잘못했을 때 굶고 책임지기로 했잖아”라며 “이빨 깨물어, 이리와, 뒤로 돌아, 커튼 쳐”라고 20여분간 최 선수를 수십차례 폭행했다.

C씨는 “네가 못 맞아서 얘가 대신 맞는다”며 최 선수의 동료선수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최 선수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하며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폭행 후 C씨는 아무렇지 않게 감독과 술잔을 기울였다. C씨는 선수와 부모들에게 팀 닥터라 불렸지만 의사는커녕 물리치료사 면허도 없는 인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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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해양스포츠제전 참가한 최숙현 선수. 연합뉴스


최 선수에게 뉴질랜드 원정 훈련은 지옥과 같았다. 훈련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수개월 간 운동을 쉴 때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질랜드 원정훈련이 이뤄졌던 지난해 3월 ‘네이버 지식인’에는 최 선수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까지 발견됐다. 작성자는 “선배들은 사실이 아닌 걸로 사람을 욕한다. 제가 있어도 제육이 아닌 것처럼 욕을 하고 운동하는 중에도 자기들끼리 제 욕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사람들 평범하게 사는 모습 더 이상은 못 보겠다”며 “방법을 주세요 제발...”이라고 절박한 모습을 보였다.

최 선수의 동료들은 팀 닥터 C씨 등이 뉴질랜드 원정 훈련마다 미성년자, 성인할 것 없이 음주를 강권했다고 폭로한다. 선배들의 폭행도 이어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이를 모르고 전지훈련 때마다 ‘팀닥터’에게 돈을 송금했다고 했다. 최 선수의 아버지는 경주시청 예산으로 전지훈련을 가지만 ‘팀닥터’가 항공료 명목으로 250만원을 청구해 입금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팀닥터’가 최 선수의 심리치료를 해주겠다며 50만원씩, 선수 몸 관리 비용으로 월 100만원을 요청해 돈을 줬다고 밝혔다. 최 선수와 최 선수 가족의 명의 통장에서 ‘팀닥터’에게 이체된 금액만 1500여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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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선수의 마지막 메시지. 연합뉴스


대한철인3종협회는 전날(6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고 해당 감독과 A선수를 영구제명하기로 했다. B선수에게는 자격정지 10년을 내렸다. 다만 ‘팀닥터’는 협회선수 등록이 안 돼 있어 체육회의 징계 대상이 되지 않았다. 감독과 A선수, B선수는 모두 “폭행사실이 없다”며 자신의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팀 닥터 C씨는 잠적한 상태다. 경북경찰청은 지난 3일부터 광역수사대에 전담수사팀을 꾸려 경주시청 전·현직 선수를 대상으로 진상 조사에 나섰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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