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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드라마 발레 '오네긴', 한 편의 영화 보는듯한 매력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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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 강미선 수석무용수

세계일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무용수에게도 힘겹다. 드라마 발레 ‘오네긴’ 전막 공연을 앞둔 지난달 30일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 타티아나가 오네긴의 편지를 찢으며 격동하는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피날레가 반복해서 펼쳐졌다. 무대 위 주인공은 유니버설발레단(UBC)이 자랑하는 강미선·이동탁 수석무용수. 마스크를 쓴 채 난이도 높은 동작을 반복하는 이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게다가 근육 이완이 필수인 발레단 연습실은 부상 방지를 위해 냉방도 삼가한다. 초여름 더위 속에 온몸의 힘을 한순간 끌어내야 하는 리프트를 해내고는 어쩔 수 없이 가쁜 숨을 내뱉으며 잠시 쉬는 이들의 모습에선 예술이 요구하는 치열함이 엿보인다.

연습 후 가진 인터뷰에서 강미선 수석무용수는 “숨쉬기도 어렵고 얼굴에 열이 많이 올라와서 더욱 힘들다”면서도 “마스크 착용은 서로를 위한 배려인 만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에는 지난달 열린 대한민국발레페스티벌 갈라 공연 참여가 유일한 무대였는데 그때도 본 공연 직전에야 마스크를 벗었더니 오히려 어색했을 정도라고 한다.

“지난해 연말 ‘호두까기 인형’ 이후로 전막 공연은 7월 18일 개막하는 ‘오네긴’이 처음이네요. 지난 2월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한창 연습하는데 갑자기 연습실 문이 닫히고 ‘집에 머물라’고 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무대를 쉬게 될지는 몰랐어요.”

갑작스레 시작된 자발적 격리 생활은 혹독했다. “처음에는 몸도 마음도 쉬면서 다시 도약할 기회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연습실 문이 너무 오래 닫히면서 집에서 혼자 연습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사실 많이 아팠어요. 골반, 허리 등을 받쳐주던 근육이 줄어들면서 관절, 인대 등이 오히려 더 아픈 데가 많아지더라고요. 그런데도 병원이나 한의원은 혹시나 싶어서 갈 수 없으니 집에서 얼음찜질하는 게 전부였죠. ‘아. 진짜 무용수는 쉬면 안 되겠구나’라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되면서 발레단 연습실도 문을 열었고 갈라 출연으로 무대에도 다시 올라갔다. 마스크를 쓴 채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을 비로소 만난 순간에는 ‘내가 서야 할 곳이 여기구나’라고 새삼 벅찬 감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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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드라마 발레 ‘오네긴’ 피날레 장면을 마스크를 쓴 채 연습 중인 강미선·이동탁 수석무용수. 이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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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공연을 위해 강미선은 연일 연습 강도를 높이며 몸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 오랜만에 열리는 전막 공연이기에 최선을 다하려 하나 마음 한편에선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갈라를 준비할 때도 계속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준비하다 보니 더 힘들었어요.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는데 혹시 공연을 못 하면 어떻게 하나’라고. 이번에도 그런 마음고생이 있는데 그래도 최선을 다해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이 3년 만에 무대에 올리는 거장 안무가 존 크랑코의 ‘오네긴’은 드라마 발레 정점에 오른 명작이다. 182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농촌을 배경으로 모험을 즐기는 자유분방한 젊은 귀족 오네긴과 내성적이며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타티아나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여기에 타티아나 여동생과 약혼자의 파국까지 얽히고설킨다. 스토리가 중요한 드라마 발레 중에서도 주인공들의 깊이 있는 내면 심리묘사가 특징이다. 따라서 무용수, 특히 주인공 타티아나는 섬세한 연기를 펼쳐야 한다. 안무가 사후 크랑코재단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발레단도 엄선하며 엄격하게 공연 수준을 관리한다. 이 때문에 국내 초연은 2009년 유니버설발레단이 최초로 선보였으며 매 공연 때마다 크랑코재단이 직접 단원 캐스팅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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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은 “드라마 발레여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이 전해지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며 “다른 클래식 발레에도 다 스토리가 있지만 그래도 발레 테크닉을 보는 맛이 큰 데 비해 오네긴은 주요 등장 인물이 네명인데 각각 상황속에서 어떻게 성격이 변화하는지 그 연기를 보는 재미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강미선의 타티아나 연기는 2009년 초연 때부터 이미 다섯 차례에 달한다. 극 중 감정 변화가 큰 입체적 배역인데 강미선은 “1막에선 한 남자에 대한 첫사랑일 수도, 짝사랑일 수도 있는 감정을 지닌 순수한 시골 처녀라면 3막 마지막에선 이루지 못한 사랑에 내면의 절규를 보여줘야 한다”며 “그래도 어렸던 초연 때는 솔직히 오네긴을 떠나보내는 장면 등 복잡한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 3막은 어려운 점이 없잖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조금씩 깊어지면서 점점 타티아나 연기가 편해지는 것 같기는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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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발레 명작 ‘오네긴’ 공연을 앞두고 있는 유니버설발레단 강미선 수석무용수. “방역 때문에 집에서 연습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아 나는 진짜 발레를 안하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홈트레이닝용 장비도 구입하고 요즘에는 독일에 계신 선생님과 전 세계 무용수들이 함께 하는 온라인 클래스(연습)도 참여하는데 새로운 재미가 있더라구요.” 이제원 기자


2002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한 강미선은 현재 최고참이지만 자리가 비면 군무로 무대에 서는 것도 마다치 않는 솔선수범형 리더다. 작품에서 어떤 배역을 맡을지 결정되는 캐스팅을 기다리는 심경에 관해 묻자 “사실 어릴 때부터 솔리스트에서 수석무용수 등으로 이어지는 승급보다 작품에서 어떤 배역을 맡느냐는 캐스팅에 연연하는 편이었다. 캐스팅을 못 받았을 때는 좌절감이 바닥을 치기도 해서 좋은 캐스팅을 받기 위해 더 노력했는데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고 운도 있어야 하고, 항상 다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받을 수 있는 역할에는 항상 감사한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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