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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日 수출 규제 1년, 한국에 '전화위복'… 아직은 낙관론 경계 [특집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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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에칭가스 국산화 테스트 마쳐 / 작년 10월 액화수소 이어 공정 투입 계획 / 소재기업들도 1년 만에 기대 이상 성과/ 솔브레인·램테크놀러지 공장 증설 박차 / 조기 인허가 승인 등 정부 지원 한몫 톡톡 / 포토레지스트 등은 수입규모 대폭 확대 / 전경련 세미나… “한·일 협력이 더 이득” 주장 / “중소업체 M&A 독려·국산화 지원 늘려야” / 성태윤 연세대 교수 “피해 줄었지만 양국 모두 손해보는 상황" /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장비 등 / 비민감 전략물자 추가 규제 우려” / 美, 갈등에 개입 자제하고 뒷짐 / 정부 해결 주체로서 역할 요구 커져 / 실현 가능한 안 만들어 협상 주문도 / 최악 상황까지 감안 대안 마련해야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공급망 안정화의 핵심 조건인 수입선 다변화가 이뤄졌고, 일부 소재·부품·장비(소부장)는 국산 비중이 일본산을 역전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일부 품목은 국산화에 성공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며 대체가 이뤄졌지만 첨단소재의 경우 일본 수입액이 늘어나는 등 품목별 수출규제 결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에 따라 이제 시동을 건 국내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수출규제는 한국에서 일본 불매운동을 촉발했다. 지난 1년 동안 편의점에선 일본 맥주가 자취를 감췄고, 유니클로 매장에는 고객의 발길이 끊겼다. 불매운동은 현재진행형이고 한·일 관계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결국 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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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규제가 다변화 촉진… “전화위복 됐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SK머티리얼즈가 생산하는 기체 불화수소(에칭가스) 테스트를 마치고 연내 공정에 투입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국산 액체 불화수소를 투입한 데 이어 더 세밀한 에칭(식각) 공정에 쓰이는 기체 형태까지 국산화한 것이다.

지난해 일본이 수출 규제를 강화한 3개 품목 중 불화수소 수입은 일본산이 43.9%(지난해 1∼5월 기준)를 차지했다.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도 일본산이 91.9%에 달했다. 불화수소 재고가 많지 않았던 반도체 업계는 국산화 등에 속도를 내 소재 조달처를 변경할 때 진행하는 테스트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했고, 빠른 시일 내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졌다.

소재 기업들도 1년 만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 솔브레인은 올해 액체 불화수소 공장을 조기 완공했다. 램테크놀러지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액체 불화수소 공장 증설을 진행 중이다.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러지는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각각 불화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주목받은 바 있다.

SK머티리얼즈는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생산시설을 내년 준공 목표로 하고 있다. 동진쎄미켐도 올해 초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공장 증설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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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성과는 정부의 조기 인허가 승인 등 지원이 뒷받침됐다는 것이 업계 공통적인 평가다. SK머티리얼즈의 경우 정부가 특례 적용을 통해 기술 검토 및 안전업무 진단 처리 기간을 단축해 공정 허가가 보다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었다. 램테크놀러지는 지난해 7월 불화수소 등 6종의 유해화학물질 영업 판매업 허가 승인을 받았고, 솔브레인은 화학물질 조기 인허가 지원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 1년 우리는 기습적인 일본의 조치에 흔들리지 않고 정면돌파하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었다”며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생산차질도 일어나지 않았고, 소부장 산업의 국산화를 앞당기고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등 핵심품목의 안정적 공급체계를 구축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난 1년의 성과에 머물 형편이 못 된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이기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공세적 대응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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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 강해졌지만 한·일 협력은 필수”

일본의 수출규제가 소부장 강화에 기회로 작용한 것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한·일 협력 강화가 양국 경제에 더 이득이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날 개최한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와 과제 세미나’에서는 이 같은 내용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융합전자공학부)는 “국내기업들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소부장 국산화와 해외 벤더 다변화로 대응했다”며 “그 결과 올해 1∼5월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 비중은 12%로 전년 동기(44%)보다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폴리이미드는 일본 수입이 오히려 더 늘어나는 등 대응 결과가 달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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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진정한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글로벌 분업체제에서는 한 국가가 모든 것을 다 잘하기 쉽지 않다”며 “조선·전자를 비롯한 거의 모든 업종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은 글로벌가치사슬(GVC)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이홍배 동의대 교수(무역학과)도 “한·일 소부장 산업이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역설적으로 일본과 긴밀한 협력은 필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일 소부장 산업은 분업체제로 2018년 약 811억달러 규모 부가가치를 창출했고, 전체 제조업으로 확대하면 이는 1233억달러로 늘어난다”며 “양국의 GVC 붕괴는 그만큼의 이익 손실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소업체 간 인수·합병(M&A)을 독려하거나 잠재력 있는 기업의 국산화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재근 교수는 “일본의 기업별 평균연구개발비는 1534억원인데 한국은 13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며 “글로벌 기업 연구·개발(R&D)센터 및 생산기지 국내유치를 추진하고 국산화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전경련은 ‘한일재계회의’ 등으로 일본 경제계와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수출규제와 한국 기업인 일본 입국 금지 조치 등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일 치킨게임 여전… 경제분야선 손잡아야”

“일본 수출규제 품목에 대해 국내 기업들이 받는 피해를 줄인 건 맞지만 결코 이득이라고도 볼 수 없습니다. 양국이 최소한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협조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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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사진)는 29일 세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1년’을 이같이 평가했다.

지난해 7월1일 일본 수출규제 품목(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폴리이미드)이 정부 재정투입과 기업들의 공급처 다변화 등으로 피해를 최소화한 것은 맞지만, 결국 양국 모두 손해를 보고 있는 ‘치킨게임’ 양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성 교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데는 각종 조처를 하고 비용을 쏟아붓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 “수출규제 1년이 지나면서 한·일 중 어느 국가가 더 손해를 봤느냐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만 본질은 양쪽 모두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노역 배상 판결이라는 비경제적 사안에 대해 일본이 경제적 보복에 나서며 양국의 협력을 저해한 사례이며, 양국 간의 관계에서 볼 때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따라서 비경제적 사안과 별도로 분리해 양국 간의 경제적 협력 관계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일본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지만 이익이 되는데도 굳이 안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며 “일본처럼 인접해 있으면서 기술력을 가진 국가와의 글로벌 분업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일 간의 여러 갈등에도) 양국의 경제적 협력은 저해되지 않도록 협조적인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면서도 “이는 양국의 대립으로 모두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소모전에 부침 거듭…전범기업 자산매각 '화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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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8차 한일 수출관리 정책대화 영상회의 화면에 한국 수석대표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위)과 일본 수석대표 이다 요이치(飯田陽一)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기업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이 한국 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조치로 수출규제를 단행한 지난해 7월부터 약 1년간 한·일관계는 부침을 거듭했다.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맞섰지만, 현재는 이 카드를 보류한 상태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이후 양국 관계 개선에 잠시나마 물꼬가 트였지만 아직은 정체돼 있다. 약 2년 격화일로를 겪어온 한·일관계의 다음 변수는 일본 기업 국내 자산 현금화다. 8월 4일 공시 송달 기한 만료를 앞두고 긴장은 다시 고조된다.

◆늦어지는 현금화… 냉각기 이어질 듯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 1일 강제동원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PNR 주식에 대한 공시송달을 결정했다. PNR는 포스코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이 합작한 회사다. 공시송달 기한은 오는 8월 4일이다.

공시송달 기한이 도래해 일본 기업에 현금화 명령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자산 매각절차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걸릴 전망이다. 법 절차와 법원의 속도조절 가능성을 고려할 때 실제 자산 매각은 연말 혹은 내년 초에야 진행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다수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30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 정부가 공세적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일본도 문제를 확산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올 연말까지는 관망세로 있으면서 내년 현금화 조치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 ‘관리모드’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지난해 소모적 싸움을 벌인 양국 정부가 올해 더 전선을 벌리지는 않고 평행선을 달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파국’은 아니더라도 일본이 공시송달 기한인 8월4일 이후 다른 보복조치에 나설 가능성은 열려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최악의 경우 (공시송달 기한이 지나) 일본이 8월 중순 이후 한국에 대해 2차적 추가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같은 달 22일은 우리 정부가 지난해 지소미아 종료를 처음 결정했던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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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되는 피로감 속 ‘국지전’ 반복

현재 양국 모두 피로감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통화에서 “서로 감정싸움을 많이 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도 “강대강으로 치달았던 지난해와 달리 양국 모두 지친 상태인 데다, 한·일 갈등은 이미 외교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모두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지난해 한·일 갈등을 중재하려 했던 미국은 ‘양국 간 해결할 문제’라며 발을 빼고 있다. 양 교수는 “의지만 있으면 타협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히 있는데 한·일 모두 아직까지는 그럴 의지가 없고 치킨게임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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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올 상반기에도 ‘국지전’만 반복됐다.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강제동원 역사를 바로 알리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우리 정부가 항의하고 있는 것이나, 코로나19와 관련해 일본이 갑작스럽게 우리 국민의 사증면제를 정지하면서 우리 정부가 맞대응한 것 등이다. 다만 신 대사는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과 별개로 일본이 국제사회에 한 공적인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끝까지 추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언젠가 ‘결전의 시간’은 온다는 것이다. 역시 현금화가 기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양국 갈등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역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과 이를 일본 기업의 금전적 부담으로 바꿀 현금화다. 진 센터장은 “올해 관리해야 내년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데 아직은 그런 움직임이 없으니 내년에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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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의 경우도 대비… “미리 준비해야”

당장 현금화가 도래하지 않더라도 각종 시나리오에 대비해 만일의 경우를 지금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신 전 대사는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주문했다. 그는 “결국 문제를 푸는 것은 정부다. 정부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으면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며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먼저 해결 의지를 보이고, 행정부가 실현 가능한 안을 만들어서 일본하고 협상하고 입법화하면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수순”이라고 강조했다. ‘문희상안’ 등 국회가 나섰던 중재안이 결국 빛을 보지 못했고, 여당 다수가 반대하는 이 안을 오히려 야당이 넘겨받은 현 국회 상황으로 볼 때 재추진하기도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본 기업의 금전적 부담을 줄이되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은 보존하는 중재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한 예로 진 센터장은 “한국 정부나 포스코가 일본 기업의 물권을 사면 외교적 교섭이 가능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양 교수도 “대법원 판결을 지키되, 일본 기업의 손실을 보전해 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후의 시나리오, 즉 현금화 이후도 생각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양 교수는 “일본도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못하는 만큼 가능한 시나리오를 추려낼 수 있을 것”이라며 “현금화가 실제로 이뤄졌을 경우 대응방안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색해진 日, 표리부동한 발언 반복 사태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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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정권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화이트(수출절차 우대국)리스트 배제를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과 연계해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 차원에서 이런 조치가 한국 대법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임을 인정하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임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일본 정부의 표리부동이 문제 해결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수출규제가 경제·통상 외적인 요인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르면 8월 피고인 일본제철(판결 당시 신일철주금) 압류자산이 매각되면 한·일관계에 더 큰 격랑이 예상된다. 특히 코로나19 대응 실패와 각종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아베 정권이 출구를 모색하기 위해 다시 한·일 갈등을 격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은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의 무역관리 제도가) 개선돼 왔다고 나는 평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수출규제가 정당하다는 논리를 반복했다.

일본 정부는 전날 WTO 분쟁해결기구(DSB) 회의에서 분쟁처리소위원회(패널·1심기구) 설치를 거부했으나, 모든 회원국이 거부하지 않는 한 7월29일 2차 회의에서 패널이 자동설치된다. 1심에 불복하는 당사국이 있으면 2심(최종심)인 상급위원회로 넘어간다. 교도통신은 “(6개월 이내가 원칙인 1심 논의가) 최근엔 길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상급위원회는 (구성원 부족으로) 기능부전에 빠져 있어 문제 해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사실 군색한 입장이다. 지난해 7월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발표하면서 이유로 제시한 △정책 대화 단절(→ 지난해 11월 국장급 협의 재개) △재래식 무기에 대한 캐치올 제도 미비(→ 3월 관련 조항 보완한 대외무역법 개정) △수출관리 조직체계 불충분(→ 5월 담당과의 국 격상 등 조직·인원 확충) 문제는 우리 측 대응으로 모두 해소된 상태다. 일본 정부는 법·제도 문제를 제기할 근거가 빈약해지자 “제도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이다 요이치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 등)는 모호한 발언만 반복하고 있다.

혐한 분위기가 넓게 퍼진 일본 여론은 일본 정부 조치를 대체로 지지하는 분위기나, 경제계 등에서는 양국 발전의 기반이었던 자유무역과 국제분업, 정경분리 원칙이 깨졌다는 점에서 우려가 없지 않다. 특히 일본 정부가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했는지에 대해 갈수록 의문이 커지고 있다. 한국 내 노재팬 기류를 촉발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와 제3국 대체화가 진전됨으로써 오히려 장기적으로 한국의 탈(脫)일본을 촉진하는 조짐이 보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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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한 서울발 기사에서 한국의 대일 수입액 감소, 자동차·맥주 판매량 급감 등을 제시하면서 “한국 정부가 뒤를 밀어주는 탈일본의존은 반도체 재료에 머무르지 않는다”며 “한국의 일본불매는 착실히 (한국 사회 전반에) 스며들기 시작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무역協 “의존도 높은 품목 불확실성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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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성 수출규제 조치가 한국 산업의 '신(新)독립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수출규제 대체 소재·부품·장비의 개발현장인 나노종합기술원(카이스트 본원)에서 연구원들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이재문 기자


일본의 수출규제 1년을 맞아 추가 수출규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30일 ‘일본 수출규제 1년, 규제품목 수입 동향과 대일 의존형 비민감 전략물자 점검’ 보고서를 통해 대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비민감 전략물자 품목을 중심으로 추가 수출규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규정한 비민감 전략물자는 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나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인 기초유분, 플라스틱 제품 등 기초소재에 집중돼 있다. 이들 품목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대부분 80∼90%에 달한다.

비민감 전략물자는 일본이 지난해 법령 개정을 통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뒤 수출심사를 크게 강화한 품목이다. 비민감 전략물자 중 일본으로부터 100만달러 이상 수입하고 대일 수입 의존도가 70% 이상인 품목 100개를 선별한 결과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나 기초소재류 품목 등 상위 3개 품목군에 56.7%가 집중됐다. 기초유분의 경우 일본 의존도가 94.8%에 달했고 반도체 제조용 장비(86.8%), 플라스틱 제품(83.3%), 사진영화용 재료(89.7%) 등도 높았다.

보고서는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수출규제를 받은 품목들도 모두 비민감 전략물자였다”며 “일본이 추가 수출규제를 단행할 경우 비민감 전략물자를 대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무역협회 홍지상 연구위원은 “당초 우려와 달리 국내 수급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다”면서도 “일본 정부가 추가 규제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역협회는 이날 유튜브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본 시장 진출전략 화상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무역협회 김영주 회장은 “양국 기업인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협력한다면 경제위기 극복은 물론 한·일 관계 개선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중·박현준·이정우·김청중·홍주형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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