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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엄마는 집에 돌아가야 했다…여성에게 더 가혹한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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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안나 자비에르(33)는 지난 4월 극한의 노동에 시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다. 자비에르는 회사업무와 함께 집안일도 동시에 처리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보냈지만, 하원 전까지 일을 마쳐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항상 시간에 쫓겼고, 업무 효율은 나지 않았다. 그달 실적도 바닥을 쳤다. 자비에르는 BBC에 “재택근무는 나에게 거대한 좌절감을 안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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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솔트레이크 시티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재택근무 중 딸을 돌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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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쓴 지 반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의 일상도 많이 바뀌었다. 대표적인 게 일터다. 출퇴근 문화부터 바뀌었다. 재택근무를 상시 제도화하는 기업이 늘었고, 다양한 형태의 노동 형태가 등장했다. 물론 어두운 면도 있다. 경제난으로 인한 대량 실직 사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각된 남녀 간 고용불균형이다.



"일자리 피해, 여성이 더 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국제 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코로나19와 고용노동’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노동 시간은 전반적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4% 감소로, 주 48시간 정규직 일자리 4억 개가 사라진 셈이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 조치가 휴직과 실직을 만들고 고용불안으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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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의 한 호텔의 하우스키퍼가 방을 청소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호텔 등이 문을 닫으며 서비스직 여성들의 일자리가 많이 줄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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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성 근로자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컸다. ILO에 따르면 지난 4~5월 전 세계 여성 고용률은 지난해 대비 평균 16% 감소했다. 반면 남성 고용률 감소는 한 자릿수에 그쳤다. 여성의 파트타임 근로자 비율도 남성보다 높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그 마저 포기한 여성이 많았다.

연구자들은 코로나19의 경제적 타격이 소매업·요식업·관광업에 집중된 점을 남녀 고용불균형이 심화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비대면 근무가 불가능한 서비스업에 여성 종사자들이 많아 여성들의 실업률을 높였다는 것이다. 피츠버그 대학교 경제학과 스테파니아 알바네시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서비스업이 침체하면서 여성 고용률이 과거보다 더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ILO도 “그동안의 성 평등 성과가 코로나19에 무너질 위기”라고 우려했다.



"집안일은 더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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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시행되며 여성들의 집안일 부담은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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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여성의 노동시간이 늘어난 곳도 있다. 바로 집안일이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 미국과 유럽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성은 남성보다 주당 65시간을 더 집안일에 쓴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육아에도 개인 시간의 3분의 2를 쏟고 있었다.

집안일에서 여성의 노동량은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증가했다. 오히려 고소득전문직 맞벌이 부부에게서 격차가 더 벌어졌다. 남성 근로자의 출퇴근 비율이 여성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집에서 집안일과 업무 두 가지를 모두 돌봐야 했다.

영국 경제연구소(IFS) 조사 결과 코로나19로 일을 그만둔 여성은 가사·육아 노동시간이 2배 늘었다. 그러나 남성의 경우는 달랐다. 남성이 퇴사 후 집안일을 맡아도 여성보다 가사 노동 시간이 길지 않았다. 맞벌이 때 비율이 3:7이었다면 남편 퇴사 후 5:5로 나뉘는 데 그쳤다.



엄마는 집, 아빠 회사…과거로 돌아가나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고, 실직한 여성들이 사회보장제도에서 밀려나면 노동시장의 성 평등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경제난에 남성중심 고용문화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ILO는 “경제 봉쇄 기간 실업률이 높아지고 일자리 부족이 심화할수록 여성 고용률이 회복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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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간쑤성 톈수이시에 사는 한 여성이 아이의 숙제를 돕고있다. 이 여성은 어렵게 구한 직장을 육아 부담에 결국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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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현장의 퇴보를 막기 위해선 전문가들은 기업이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재택근무가 '뉴노멀'로 자리 잡은 데 따라 근무방식도 바꿔 줘야 한다는 것이다. 마감 일자에 변화를 줘 생산 속도를 조절하고, 남성들의 육아 휴직을 적극 권장하는 것 등이다. 영국의 컨설팅 회사 샤인 앤 워먼 대표 캐롤라인 와일리는 BBC에 “코로나19 시대는 위기이자 근무 환경을 개선할 기회”라며 “남녀 고용불균형이 개선될지, 퇴보할지는 기업들의 의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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