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역사에 새로운 숫자 하나가 쓰였다. 역대 최대 규모인 올해 3차 추가경정예산안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차 11조7000억원, 2차 12조2000억원에 이어 35조원이 넘는 3차 추경까지. 올 한해만 60조원 가까운 지출 예산이 추가됐다.
세 차례 추경 모두 목적은 하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위기 대응이다.
1차 추경은 코로나19 긴급 방역 예산 확보, 2차 추경은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용도가 주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급증한 방역 수요를 나랏돈으로 메우고,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로 인해 멈춰버린 소비를 되살리기 위한 긴급 처방이었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0년도 제3차 추가경정예산안이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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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세 번째 추경의 최대 목적은 일자리 지키기다. 올 2분기를 기점으로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실업난이 본격화한 데 따른 조치다.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면 정부가 임금 등 비용을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예산이 대폭 늘었다.
코로나19로 일을 쉬어야 하는 특수고용직종사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무급휴직자에 월 50만원씩 3개월간 지급하는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예산도 3차 추경에 반영됐다. 고용보험이 없어 실업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대상이다.
저소득층,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 지원도 확대된다. 소비쿠폰 지급도 3차 추경을 통해 확대 시행된다. 정부안에 없던 대학 등록금 반환액도 국회 심사 과정에서 추가됐다.
지난달 21일 국회에 쌓인 '제3차 추경안' 자료.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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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뉴딜’ 예산은 이번 3차 추경에 처음 반영됐다. 올해 4조8000억원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31조3000억원을 투자해 일자리 55만 개를 새로 만드는 게 목표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2가지를 축으로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 정부 수입 감소분도 이번 3차 추경에 반영됐다. 정부는 11조4000억원 규모로 세입 경정(줄어든 세금 수입을 예산에 반영)을 했다.
유례 없는 액수의 3차 추경안이 여당 176석 차지라는 ‘거여 구도’ 덕분에 무난히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그 규모만큼이나 큰 숙제를 남겼다.
나랏빚 문제다. 3차 추경안 통과로 인해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3.5%로 치솟는다. 지난해 이 비율은 39.8%였다.
코로나19로 정부 수입은 줄 수밖에 없는데 나갈 돈은 눈덩이로 늘어나고 있어서다. 부채 비율 40% 중반도 정부의 낙관적 성장 전망(올해 경제성장률 전년 대비 0.1%)이 현실이 돼야 유지 가능한 목표다.
한국은행(-0.2%), 국제통화기금(IMF, -2.1%) 등은 올해 한국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을 점친다. 다른 주요 국내외 기관도 역성장에 무게를 둔다. 이 예측대로라면 올해 한국의 부채 비율은 50% 육박할 전망이다. 재정 비상등엔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국가채무 변화.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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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은 더 있다. 졸속 편성, 졸속 심사 문제다. 정부는 수십만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추경 예산을 늘려 잡았지만 초단기, 단순 업무 중심의 최저임금 일자리가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알바 추경’이란 비판이 함께 일었다.
21대 국회 거대 여당 구도에서 추경 심사가 졸속으로 이뤄진 것도 문제였다. 여당이 주도하는 예비 심사 과정에서 3조원이 넘는 예산이 추가됐고, 선심성 지원 비판 속에서도 대학 등록금 반환 예산이 더해졌다. 매년 문제로 지적됐던 지역구 민원 예산 ‘끼워 넣기’도 반복됐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 더불어민주당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 다시 예산 감액에 나섰지만 논란은 그대로 남았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올해만 세 차례에 걸친 추경으로 재정수지 적자가 대규모로 늘어나게 됐다”며 “채무 부담으로 인해 경제 성장 잠재력은 낮아지고, 재정 위기 가능성은 커지고, 미래 세대의 세금 부담은 늘어나는 등 ‘삼중고’에 직면하게 됐다. 국회나 정부나 좀 더 책무성을 가지고 재정 운용을 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이전 추경 때도 그랬고 3차 추경 역시 ‘현금 나눠주기’에 집중돼 있다는 게 문제”라며 “무차별 현금 살포보다는 타격이 있는 부문에만 핵심적으로 지원하고 전체적인 경제 활력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 데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정부가 올해 추경으로 코로나19 대응 용도로만 지난해 GDP 14%를 지출했으며, 1~3차 추경 전체 규모는 지난해 GDP 30%에 육박한다”며 “당장 올가을ㆍ겨울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는 등 더 큰 전쟁을 오랜 기간 치러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장기전에 대비해 실탄을 아끼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해 나가야 하는데 정부는 있는 대로 재정 ‘바주카포’를 쏘아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올 1분기 성장률만 봐도 민간 부문은 ‘마이너스(-)’ 일색이며 정부 재정으로만 지탱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4차, 5차 추경만 또 할 것인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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