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전엔 싹싹 빌더니 이제 와 ‘오리발’
지난 2일 경북 경주시체육회 사무실에서 열린 인사위원회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이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유망주 고(故) 최숙현 선수에게 폭행 등 가혹 행위를 일삼은 가해자 중 하나로 지목된 경주시청팀 감독이 경북 경주시체육회 인사위원회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그는 5개월 전엔 고인의 아버지에게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인정했으나 이제 와서 자신은 고인을 때리지 않고 외려 말렸을 뿐이라고 잡아뗀 것이다.
3일 경주시체육회 등에 따르면 전날 열린 인사위에서 경주시청팀 감독 A씨는 자신이 최 선수를 트라이애슬론에 입문시켰고, 애착을 가졌다며 다른 팀으로 간 것도 감독이 주선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2월까지 최 선수에게 ‘고맙다’거나 ‘죄송하다’란 모바일 메신저 메시지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 선수 유족이 공개한 녹취파일에서 A씨는 고인이 팀닥터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는 걸 방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팀닥터의 폭행이 벌어지는 동안 그는 고인에게 “닥터 선생님이 알아서 때리는 데 아프냐”, “죽을래”, “푸닥거리 할래?” 같은 말을 했다.
해당 녹취 파일에서 A씨는 최 선수의 체중이 늘었다는 이유로 “3일 동안 굶어라”라고 다그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팀닥터 외에도 한국 트라이애슬론 간판선수이자 베테랑인 최 선수의 선배가 고인을 괴롭히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방조하고, 오히려 괴롭힘 당하던 고인의 뺨을 때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는 최 선수와 중학교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최 선수에게 받았다는 감사 인사나 사과 역시 진심이었는지, 위계질서가 확실한 한국 스포츠계의 감독과 선수 사이에서 두려움의 표현이었는지에 대해선 후자일 가능성에 보다 무게가 실린다.
가혹 행위에 시달리던 최 선수는 지난 2월부터 소송 등 법적 절차를 밟았다. 그러자 A씨는 최 선수의 아버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염치없고 죄송하다, 무릎 꿇고 사죄드린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 메시지에서 구체적인 행위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으며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을 드린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했다. A씨는 또 “내가 다 내려놓고 떠나겠다”고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그는 “아내와 아이가 나만 바라보고 있다”며 “먹고 살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호소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으로, 소속팀 감독 등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지난달 26일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
그랬던 A씨는 소송 절차가 시작되자 줄곧 폭행 등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경주시체육회 인사위에선 “나는 때리지 않았고, 오히려 팀닥터의 폭행을 말렸다”고 주장했다. 최 선수는 올해 경주시청을 떠나 부산시체육회에 입단했다. 하지만 선수도, 지도자도 많지 않은 한국 트라이애슬론계에서 전 소속팀 감독의 영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최 선수는 결국 지난 26일 오전 부산의 숙소에서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23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고인은 경찰에 이어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등에 신고하거나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외면당한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