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사건, 검찰의 위증 강요” 주장하는 한은상씨 변호사
한씨 인간적 면모 모르나 지금 거짓말할 동기나 실익 없어
“수감자들 불러내 말 맞추기 교육”…한만호 비망록과 일치
대검 감찰부장 앞 ‘친전’ 보내 당시 수사팀 감찰·수사 요청
검찰 쪽 증인 최씨도 “위증교사 받았다” 법무부에 진정서
본질은 짜맞추기 강압 수사…국민에 의한 검찰 통제 절실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은상씨를 대리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 전원에 대한 감찰 및 수사 의뢰서를 대검찰청 감찰부장에게 제출한 신장식 변호사가 29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한은상씨가 검찰의 ‘모해위증교사’를 받은 의혹을 설명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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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시대’다. 검찰 일부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것이다. 지금은 29권 1200여쪽 ‘비망록’으로 남은 경제사범 고 한만호씨,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경제사범 한은상씨, 그리고 경북 지역 어느 교도소에 수감 중인 마약사범 최아무개씨. 이들은 10년 전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으로 엮인 이들이다. 이들 죄수 몇이 ‘검찰개혁’의 군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 22일 대검찰청 감찰부장 앞으로 ‘친전’(편지 등을 수신자가 직접 펴보라고 겉봉에 쓰는 표현)이 접수됐다. 한 전 총리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피고인이나 피의자를 모해할 목적으로 증인에게 허위 진술을 하게 시키는 것) 등에 대한 감찰 및 수사 의뢰서다. 의뢰인은 한은상씨다. 자신이 검찰로부터 모해위증교사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한씨는 한 전 총리 재판 당시 한번도 직접 등장한 적이 없지만, 지금은 ‘태풍의 눈’이다. 재판에서 검찰 쪽 증인으로 섰던 최아무개씨는 이미 지난 4월7일 법무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 역시 자신에 대한 검찰의 모해위증교사를 주장한다. 10년 전과 입장이 180도 바뀐 것이다.
대검 감찰부는 오는 7일 광주로 가서 한씨를 직접 조사한다. <한겨레>는 29일 한은상씨의 법률 대리인인 신장식 변호사를 만나, 전·현직 죄수들이 주도하는 것처럼 비치는 검찰개혁이 과연 얼마나 믿을 만한지 요모조모 공격적으로 따져 물었다. ‘죄수’는 이미 한 전 총리 사건의 아이콘 같은 표현이 됐다. 비칭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각별히 바란다.
―한은상씨 이름을 실명으로 쓰려고 한다. 지난 5월25일 <뉴스타파> 보도에서는 ‘죄수 에이치(H)씨’로 불렸지만, 최근 실명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한씨 실명은 검찰이 먼저 밝혔다. 뉴스타파 보도가 나간 뒤 해명자료를 내면서 앞부분에는 익명으로 쓰다가 뒷부분에서 실명을 드러냈다. 최아무개씨 이름도 마찬가지다. 실수 같다. 처음에는 ‘대검찰청’ 명의로 냈다가 다시 ‘수사팀’ 명의로 바꾸기도 했다. 대검이 ‘꼬리 자르기’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려 했고, 그만큼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추정한다. 같은 자료 안에서 모순되거나 객관적 사실과 어긋나는 대목도 한두곳이 아니다. 매우 다급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자료를 냈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다.”
―어쩌다 한씨를 대리하게 됐나?
“뉴스타파 ‘죄수와 검사’ 시즌1에 나오는 ‘제보자 엑스(X)’를 내가 속한 법무법인 민본이 대리한 인연으로 이번 사건까지 맡게 됐다.(한 전 총리 사건 관련 보도는 시즌2다.) 몇달 전부터 교도소 접견이나 화상 접견으로 꾸준히 접촉해왔다.”
―변호사란 설령 의뢰인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아도 의뢰인을 두둔하는 직업이다. 솔직히 한씨를 신뢰하는가? 검찰은 자료에서 그가 재판 당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증인에서 배제했다고 해명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나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변호사로서는 전적으로 신뢰한다. 첫째,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할 동기나 실익이 전혀 없다. 만기 출소 2년을 앞두고 이런 얘기를 해서 법률적인, 경제적인, 그리고 다른 어떤 사실상의 실익도 기대할 수 없다. 그건 최씨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본다. 둘째, 여러 기록이 그의 진술을 뒷받침한다. 가령, 조카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출입했던 날짜와 시간까지 남아 있는 검찰 쪽 기록, 조카가 검찰에 오기 직전에 10인분이 넘는 회 초밥 도시락을 샀던 50만원대 카드영수증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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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상씨는 그 초밥을 검사나 수사관들, 다른 출정 재소자들과 이른바 ‘집체교육’(거짓으로 말을 맞추는 훈련)을 하다 함께 먹었다고 하는데, 검찰은 해명자료에서 ‘자기들은 먹지 않았고 한씨의 조카와 아들이 다른 출정한 이들과 먹은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검찰 쪽도 함께 먹었다면 ‘뇌물 수수’다. 함께 먹지 않았다고 믿으려 해도, 처음부터 사실관계가 틀렸다. 한씨 조카와 아들이 함께 서울중앙지검에 들어간 기록이 없는데, 어떻게 둘이 함께 먹을 수 있겠나. 같은 해명자료에서 검찰은 ‘출정한 이들을 철저히 분리해서 수사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초밥을 함께 먹게 했다는 건 또 뭔 소린가. 이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1128실에 불려간 출정 기록은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경제사범, 마약사범, 사기사범 등 성격이 전혀 다른 사범들이 도대체 그렇게 자주 불려가 온갖 편의를 제공받으며 뭘 했다는 건가. 그걸 밝힐 책임은 검찰에 있는데, 아무 언급이 없다.”
―공교롭게도 한씨가 감찰과 수사를 의뢰한 시기와 최씨가 진정을 낸 시기가 비슷하다. 그래서 <조선일보> 같은 일부 신문과 미래통합당에서 ‘작전’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게 아니겠나.
“최씨가 진정을 낸 시기는 뉴스타파 보도보다 한달 이상 앞선다. 한씨와 최씨는 멀리 떨어져 수감생활을 하고 있고, 아무 접촉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두 사람은 감정이 좋은 관계도 아니었다. 한씨는 집체교육을 받고도 모해위증교사 등을 사실대로 말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최씨는 이를 말리며 법정에 나가 검찰 기소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했다. 그런 최씨가 이제는 모해위증교사를 받았다고 진정을 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씨 진술의 진실성을 가장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세번째 근거다. 우리는 최씨가 진정서를 낸 사실을 최근 보도를 보고 알았다.”
―한만호씨가 비망록에서 ‘삼인성호’(세 사람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라는 글을 남기며 한명숙 전 총리가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는데, 지금은 한만호-한은상-최씨 세 사람이 검찰의 모해위증교사를 주장하는 형국이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같이 죄수들의 주장이다. 삼인성호 가능성은 없나?
“‘메시지를 공격하지 못하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이 있는데, 딱 그 꼴이다. 재판 당시에 검찰 기소 내용을 뒷받침한 증인은 최씨와 사기범 김아무개씨(당시 출소 상태) 두명이었다. 검찰은 한만호, 한은상씨 말은 신뢰할 수 없었고 최씨와 김씨 말은 신뢰할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다 같은 죄수인데 신뢰와 불신을 판단하는 근거는 뭐란 말인가. 인제 와서 진정을 낸 증인 최씨는 아직도 신뢰하는가, 아니면 신뢰 못할 사람으로 바뀐 것인가. 중요한 건 현재 그들 주장의 교집합이 무엇이냐다. 한만호씨와 한은상씨의 주장은 대부분 일치한다. 보도를 보면, 최씨 진정 내용도 모해위증교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들이 10년에 걸쳐 텔레파시로 시나리오를 짜오기라도 했다는 건가.”
―한은상씨는 지난 10년 동안 뭐 하다가 이제야 나선 건가?
“검찰은 당시 출정을 거부하는 한은상씨에게 미성년자인 아들, 그리고 조카를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고 협박하고 회유했다. 한씨는 이 때문에 다시는 가족들이 협박받게 하지 않겠다며 서둘러 미국으로 이민을 보냈다. 아들이 미국 시민권을 빨리 받게 하려고 미군에 입대시키기까지 했다. 한씨는 그때의 참담한 기억을 뼈에 새기고 있었다. ‘나도 죄수지만 검찰은 훨씬 더 큰 범죄집단’이라고 하더라. 한씨가 진실을 밝히려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12월 청와대에 진정을 냈다. 정권이 바뀐 것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정을 넘겨받은 검찰은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구체적 사실이 적시돼 있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며 ‘공람 종결 처리’ 했다. 이름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는 죄수 신분임에도, 한씨는 ‘이번엔 세상이 떠들썩하게 해달라’고 당부하더라. 검찰이 함부로 덮지 못하게 해달라는 뜻이었다.”
―최씨는 왜 하필 지금인가? 총선 결과를 보고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다.
“최씨도 죄책감이든 피해의식이든 당시 일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지 않았을까. 최씨가 진정을 낸 시기가 총선 이전이라는 점은 확실히 못박아두고자 한다. 주머니 속 송곳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지금 국면에서 핵심 인물은 한씨보다는 오히려 최씨가 아닌가 싶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대검 감찰부에서 조사하도록 지시했는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 배당했다가, 추 장관이 다시 지시를 하자 양쪽 모두에 조사를 맡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추 장관 말대로 ‘지시의 절반을 잘라 먹은’ 셈인데, 그 뒤로 윤 총장은 아무 해명도 조처도 없다. 양쪽이 서로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 어떻게 처리할지 내가 다 걱정스럽다.”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은상씨를 대리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 전원에 대한 감찰 및 수사 의뢰서를 대검찰청 감찰부장에게 제출한 신장식 변호사가 29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한은상씨가 검찰의 ‘모해위증교사’를 받은 의혹을 설명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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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상씨가 콕 집어서 대검 감찰부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한씨도 나도 마지막까지 어디에 접수할지 고민했다. 법무부에 진정할까…, 하지만 강제수사권이 없다. 서울중앙지검에 낼까…, 그런데 모해위증교사가 일어났던 곳이다. 더구나 최씨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 갔다고 보도가 나왔는데 제대로 조사나 될지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윤 총장은 한명숙 사건에 깊숙이 발을 담갔던 검사를 올해 초 인사에서 대검에 남겨달라고 굳이 추 장관에게 요청까지 했다. 공수처가 7월에 제때 출범한다면 거기에 맡기면 될 텐데,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때마침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이 공개적으로 의지를 표명했다. 법리적으로도 대검 감찰부가 가장 적합하다고 봤다.”
―굳이 대검 감찰부장 ‘친전’으로 제출한 이유는?
“친전은 관련법상 제삼자가 먼저 개봉할 수 없다. 다른 데로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대검 감찰부가 한은상씨뿐 아니라 최씨까지 조사하면 당시 상황을 거의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중요한 건 검찰의 수사 의지다. 관련자가 워낙 많다. 한씨는 검찰 고위층이 ‘집체교육’을 지켜보기도 했고, 심지어 서울시 고위 공무원도 그 자리에 와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한 전 총리가 출마한 서울시장선거를 앞둔 때였다.) 지금 그들 모두가 입을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수사만 제대로 하면 반드시 터진다.”
―이번 사안이 필연적으로 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가리키게 된다는 건 염두에 두고 있는 건가?
“내가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 사실 한 전 총리 재심을 말하는 건 먼 일이다. 이 사안의 본질은 죄수가 됐든 죄수의 가족이 됐든, 검찰이 미리 짜놓은 틀에 맞추기 위해 그들의 인격을 짓밟은 것이다. 오죽하면 최씨도 이제 와서 진정을 냈겠나. 검찰의 그런 적폐는 사법 체계의 근간을 파괴하는 행위다. 먼 얘기도 아니다. 5년 전에는 유우성씨 사건이 있었다.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이토록 명백한 사안에 대해 언론이고 정치권이고 제발 ‘정치적 프레임 짜기’를 중단하기 바란다.”
―그렇더라도 이번 사안을 검찰개혁 이슈로 곧장 연결하는 건 비약 아닌가?
“한 사람의 인격을 멋대로 침해하는 것은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인 사건뿐 아니라 국민 누구도 검찰의 강압적인 끼워 맞추기 기획 수사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 진정한 검찰개혁이라고 본다.”
―검찰을 너무 불신하면 뜻밖의 부작용도 크지 않겠나?
“물론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적어도 검찰의 금융 수사 역량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잘 이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인권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예전에는 권력이 검찰의 칼자루를 쥐다가 힘이 빠지면 칼끝을 쥐는 형국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칼이 혼자 남아 춤을 추는 꼴이다. 권력이 아닌 국민의 통제가 절실하다.”
―신 변호사는 최근까지 정의당에서 검찰개혁과 관련한 정책을 다뤘다. 정의당만의 차별성은 뭔가?
“공수처나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권한을 외부와 나누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검찰 내부의 권한을 수평적으로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검찰의 권한이 외부에 분산된다면 ‘지방 검사장 직선제’를 시행하는 것이 정의당의 정책 목표다. 검찰 내부가 시끌시끌한 지금 모습이 오히려 좋은 징후다. ‘죄수의 시대’가 촉진제가 되기를 바란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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