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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서 본 정대협·정의연 운동 [‘위안부’ 운동 다시쓰기 - 전문가 기고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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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에 몸담은 시민들은 가슴 아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위안부’ 피해생존자 이용수님의 기자회견을 한국 보수언론이 악용하며 정의연(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포함한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과 증언 및 연구의 30년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듯한 사태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반일종족주의>가 한국 이상으로 베스트셀러(40만부)에 오른 일본에서는 TV에서도 이번 사태를 ‘제2의 양파(조국) 사건’으로 크게 보도하고 있다. 이들 뉴스의 출처가 한국 보수언론의 일본어판인 데서도 나타나듯 국경을 넘은 ‘보수연대’가 진행되고 있다. 이 사태를 가장 기뻐하는 이들은 일본의 가해책임을 해제하고 싶어하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다. 정대협·정의연 30년과 일본군성노예제를 심판하는 여성국제전범법정(2000년 법정) 20년의 재검증 논점은 많지만, 지면 관계상 일본의 ‘위안부’운동·2000년법정과 정대협·정대협 운동과 민족주의 및 페미니즘의 관계를 중심으로 돌아보고자 한다.

■일본의 ‘위안부’운동·2000년 법정과 정대협

가해국 일본에 대하여 ‘위안부’ 문제 해결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정대협이었다.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는 1970년대부터 알려졌지만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나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 6월 “위안부는 민간업자가 데리고 다녔다”는 일본 정부의 국회 답변을 계기로, 이 발언에 항의하는 한국 여성들(이후의 정대협)이 일본을 방문했다. 그 과정에서 몇 차례 강연회가 열렸고, 같은 해 12월 처음으로 일본 여성들의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이 탄생했다. 1991년 12월 김학순님이 일본을 방문해 들려준 증언의 충격이 일본의 운동과 연구의 방향을 결정지었고, 이는 이듬해 1992년 1월에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군 관여 공문서 자료 발견과 이후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 공표(1993년 8월)로 이어졌다. 정대협과 피해자의 등장은 일본에서 운동과 연구의 시작에 결정적인 촉매로 작용했다.

‘2000년 법정’으로 이어지는 두번째 문제제기를 한 것도 정대협과 피해자들이었다. 1994년 2월, 한국의 피해자와 정대협이 일본 검찰에 ‘위안부’ 제도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고발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운동진영은 운동의 분열과 약화가 초래될 것이라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이는 전후의 일본이 ‘쇼와 천황’을 포함해 과거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 책임을 추궁하지 못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문제제기에 대한 응답은 2000년 법정으로 나타났다. 1998년 6월에 창립된 인권단체 ‘VAWW-NET(바우넷)저팬’의 마쓰이 야요리 대표가 가해국 여성의 책임 아래 단순한 국제공청회가 아닌 책임자 처벌=심판의 장으로서 ‘피해자를 비롯한 여성을 주역으로 하는 국제전범법정’을 제안했다. 2000년 법정은 도쿄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 당시 불문에 부쳐진 ‘천황의 면책, 식민지의 배제, 성폭력의 불처벌’을 여성과 시민의 힘으로 다시 심판하고 젠더 정의의 관점에서 식민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다. 정대협은 이 제안에 가장 먼저 찬동하여 피해 8개국의 대표로서 2000년 법정을 성공으로 이끄는 강력한 추진자가 되었다. 2000년 법정 이후 현재까지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은 정대협과 협력해왔지만 그들의 운동방침에 무비판적이지는 않았으며 이상과 같은 독자성을 각기 지녔다.

■정대협 운동은 민족주의 일색인가.

<경향신문> ‘위안부 운동 다시 쓰기’ 기획기사에서 강조된 바를 보자 하니 한국에서는 정대협을 ‘민족주의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이용수님은 정대협의 민족주의를 비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그 점이 쟁점화되는 것일까? 한편 일본에서 정대협은 ‘반일 내셔널리즘’이라 낙인 찍혀 있다. 1990년대에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의 이사를 지낸 오누마 야스아키 교수, 페미니스트 우에노 치즈코 교수 등이 그렇게 지칭하였고, 이번 사태에서도 일본 언론은 윤미향 의원을 ‘반일의 최선봉’이라 부르기까지 한다.

이와 관련해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하고 싶다. 첫째, 정대협 운동의 목표에 일본정부의 사죄와 배상 실현이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내셔널한 틀’ 안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란 제국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하여 지배-피지배, 침략-피침략의 식민주의에 근거한 내셔널한 틀 안에서 자행한 전쟁범죄였다.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도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는 성격을 띠니 내셔널한 틀이 전제됨은 당연한 일이다. 정대협이 국민기금과 한일 ‘합의’(2015년)에 반대한 것은 ‘반일’세력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조치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법적책임)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정대협 운동을 단순히 ‘반일 내셔널리즘’이라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또한 민족주의를 일반화해 비판하는 것은 제국의 지배에 대한 피지배민족의 저항조차도 민족주의를 구실 삼아 배격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결국은 피지배민족의 저항하는 힘을 박탈하게 된다. 민족의 피해회복을 지향하는 운동이 민족주의와 무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페미니즘 연대와 자기 변혁

둘째, 운동의 방법론에서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와 전시 성폭력을 없애기 위해 국경을 초월한 ‘페미니즘적 연대’를 추구했다. 정대협은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위안부’운동을 알리고 세계적인 여성인권평화운동으로 드높임으로써 세계사에 공헌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의회에서 대일 ‘위안부’ 결의가 채택(2007년 이후)된 것도 그 일례이다. 뿐만 아니라 정대협은 2012년에 ‘위안부’ 피해자의 뜻을 받들어 나비기금을 설립하고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 등 전시 성폭력 피해 극복을 위한 협력사업을 펼쳤다. 정대협은 운동의 방법론 만이 아니라 목표에서도 세계의 전시성폭력 재발 방지를 목표로 하는 운동으로 성장했다.

셋째, 정대협 운동은 30년 동안 끊임없이 자기 변혁을 이뤄왔다. 일본의 많은 논자들처럼 1990년대의 운동만으로 정대협을 판단하는 것은 일면적 시각이다. 예를 들어, 2000년 법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배경으로 공창제를 지적한 일본 측에 대하여 한국 측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는 ‘위안부’와 공창을 구별하고 싶었던 당시 정대협의 가부장적 여성관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학문적 논쟁은 현재도 진행 중).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정대협은 미군기지촌여성, 성매매여성운동과 연계하는 등 한국사회의 성매매·성착취를 문제 삼는 페미니즘운동으로 자기성장을 이어갔다. 기지촌 출신 여성이 수요시위에서 당당하게 발언하고 연대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는 일본을 훨씬 앞서가는 운동이다. 그러한 흐름은 기지촌 여성 연구로 알려진 한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의 한 사람인 이나영 교수가 지난 4월 정의연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한 데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지 말라

어떤 운동이든 그렇듯 정대협 운동에도 모순이나 갈등, 알력, 실패는 있을 것이다. 정대협 운동은 피해당사자를 중심에 두는 운동이지만 다양한 상황에 놓여있는 피해당사자의 요구를 모두 대변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사회와 언론이 정대협·정의연의 30년 운동사를 ‘민족주의’라는 한마디만으로, 혹은 이용수님의 이번 기자회견만으로, 운동의 회계상 실수를 침소봉대 확대시켜서, 운동과 증언과 연구의 전면부정으로 치닫는 것은 위험하다. 운동의 변천 과정 중 일부밖에 보려 하지 않는 비판은 한국에서 시작되어 세계사를 변화시킨 운동에 대해 교각살우(矯角殺牛), 즉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정의연은 한국사회의 누구보다도 피해자들과 대면해왔고 바로 그 때문에 이용수님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는 본뜻을 새겨 그 분과의 관계를 포함한 30년간의 운동과 방법론을 자성적으로 돌아보면서, 한국사회와 함께 한층 더 자기 변혁을 실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이용수님의 기자회견 발언인 “(일본정부로부터) 사죄와 배상은 백년 천년이 지나도 받아내야 한다”는 소망도 함께 실현해 가기 바란다.

■다양한 피해자의 목소리 듣기

‘위안부’ 생존자가 모두 떠나실 수 있는 현시대에 한국사회가 이 문제의 해결을 바란다면 다양 한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100여명의 증언을 담아낸 8권의 《증언집》 중 단 한 권이라도 읽어주었으면 한다. 이 증언집들은 정대협 운동을 통해 증언을 성실하게 대면하게 된 연구가 만들어낸 세계사적 자산에 다름없다.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해 가령 방송사들이 연구자나 운동단체와 협력하여 피해자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증언기록 아카이브(영상 포함)를 인터넷상에 만드는 것은 어떨까? 그랬을 때 비로소 이 분들이 “주체성과 존엄성을 가진 피해생존자”(양현아 교수)임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현재 한국 피해자의 목소리를 일본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증언 4집》의 일본어판 번역에 참여하였고, 또한 한국과 일본에서 ‘위안부’ 피해에 어떻게 귀 기울여왔는지를 편집한 《성폭력 피해를 듣다》를 올 가을 일본에서 출판할 예정이다.(번역: 강혜정)

<김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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