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올드한 위원은 시대에 안 맞아
인터넷 플랫폼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추상적인 방송 공공성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세상의 보편적 가치를 논할 때
5기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구성이 임박했습니다. 7월 중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연임(連任)을 결정했고, 미래통합당에 이어 내정설이 있었던 더불어민주당도 상임위원 후보자 공모를 지난 25일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방통위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좋지 않습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규제를 맡는 행정 기구이다 보니 기사에는 ‘더 싸게 휴대폰을 사는 걸 규제한다’는 비판 댓글이 많고, 정치적인 이념에 따라 ‘언론 탄압’이나 ‘언론 길들이기’ 기관으로 보는 시선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방통위 행정 행위에 따른 사회·경제적인 영향력은 생각보다 큽니다. 2008년 출범한 방통위는 크게 방송정책, 통신정책(사후규제), 인터넷 정책(이용자 보호)을 다룹니다.
‘지상파 방송사나 보도·종편 채널에 대한 허가·승인’은 방송 영역이지만, 조만간 있을 ‘통신사나 유통점의 불법 지원금 집행에 따른 이용자 차별 규제’나 ‘유튜브프리미엄에 대한 해지 시 반환금 기준 변경’ 등은 통신·인터넷 영역이지요.
방통위가 최근 유튜브프리미엄을 운영하는 구글LCC의 협조를 이끌어 국내 이용자 권익을 높인 일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유튜브프리미엄’ 월구독(8690원·부가가치세 포함) 기간 중 해지를 신청하면 즉시 해지 처리하고 남은 구독 기간에 비례해 요금을 환불받을 수 있게 된 것이죠.
방통위가 구글이 유튜브프리미엄의 중도해지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게 만든 것은 유료 VOD 기반인 넷플릭스나 웨이브, 티빙 등과 달리, 유튜브프리미엄은 사실상 광고 없이 보는 것이고 일 단위든, 월 단위든 콘텐츠 수급에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업자 측에서는 중도해지 해도 큰 차이가 없는데 이용자에게만 불리한 계약 형식이란 의미죠.
구글이 ‘유튜브프리미엄’에 서비스 이용 기간에 비례해 요금을 산정하는 시스템을 적용한 것은 해당 서비스를 하는 30개국 중 한국이 처음입니다.
방통위는 한마디로 ①미디어의 사회문화적 가치와 ②방송·통신·인터넷 융합시대의 경제적 가치에 모두 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방통위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의 핵심은 ‘다원화된 민주주의’이고, 경제적 가치의 핵심은 ‘이용자 보호’라고 보지만요.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인터넷을 포함한 ICT 산업 발전을 추구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업의 본질이 다릅니다.
너무 올드한 위원은 시대에 안 맞아
지금까지 방통위 상임위원들도 열심히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실현을 위해 애써왔습니다. 하지만, 방통위 안팎에서 너무 ‘올드하다’는 평가가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방통위가 들여다보는 미디어라는 곳이 제작부터 유통, 광고까지 모두 디지털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정부가 정보통신전략위원회(위원장 정세균)를 통해 내놓은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보면 전통적인 방송이 아닌 인터넷스트리밍방송(OTT)와 콘텐츠를 키워 세계 시장으로 나가겠다는 비전이 뚜렷합니다.
지상파 방송과 유료방송(IPTV와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기존 방송 규제는 확 풀고, OTT나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에는 적극적으로 투자해 2022년까지 글로벌 OTT 다섯 개를 만든다고 합니다. 방통위 역시 이 정책을 만드는데 과기정통부,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함께 머리를 맞댔습니다.
인터넷 플랫폼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그런데 ‘위원회’ 구조인 방통위에서 합리적인 규제를 통해 디지털 미디어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을지는 걱정입니다. 역대 위원들 대다수가 지상파 방송사나 국회 의원, 신문방송학자 출신이어서 미래보다는 과거에 머문 측면이 강했고, 인터넷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정책규제기구인 방통위가 산업발전 주무부처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비대면에 강한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들이 폭풍 성장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의 핵심이 되고 있는 플랫폼 기업과 인터넷 문화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 방통위원이 5기에서는 한 명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을 보는 습관이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이 아니라, 원할 때 보고 싶은 것을 찾아보는 주문형 비디오(Video On Demand, VOD)로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통위에도 자신이 속한 정파나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다르게 말하는 방송의 공공성·공익성보다는 ‘표현의 자유’, ‘디지털 세상의 책임과 포용’, ‘성범죄물로부터 아동·청소년 보호’ 같은 커뮤니케이션 세상의 보편적인 가치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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