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젊은 미술가들과 대림미술관서 전시… 알레산드로 미켈레 단독 인터뷰
여느 브랜드 전시처럼 장인 정신이 깃든 제품이나 기념비적 의상은 없다. 1층 입구로 들어가면 매표소 대신 인어 꼬리가 세탁기 안에 반쯤 낀 듯한 빨래방을 마주한다. 미국 작가 올리비아 얼랭어의 'IDA, IDA, IDA!'. 상상 속 존재인 인어를 모든 인종이 사용하는, 가장 민주적인 공간이면서도 집 안에 있느냐 없느냐로 소유와 공유를 구분하는 빨래방에 투입해 젠더의 경계와 자본주의적 욕망을 비튼 작품이다. 이 밖에 시청각, 합정지구, 통의동 보안여관, 탈영역우정국, 취미가 등 서울의 독립예술공간 10곳을 비롯해 메리엠 베나니, 세실 B. 에번스, 이강승 등 국내외 미술가들의 작품들이 건물을 메웠다.
‘패션계 메시아’라고 불리는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냉혹한 패션계에서 수년간 승승장구하는 성공 비결에 대해 “내가 생각해도 여전히 수수께끼”라며 웃더니, “다만 항상 진심을 다하고 진짜 내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대중들이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찌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전시를 기획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48)를 화상과 이메일을 통해 단독으로 만났다. "코로나 바이러스 봉쇄령으로 1년 전부터 준비한 한국행이 무산돼 아쉽다"는 그는 "전시는 생각이 먹는 음식이다. 흥미로움이 샘솟는 한국은 내 창조성에 울림을 준다"고 했다. "몇 해 전부터 한국의 문화 생산자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조사해 보니, 주류 시장과 제도권이 주도하는 미술계의 대안으로 독립 예술 공간들이 활성화돼 있더라. '정상'이란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그들의 공간적 철학에 흥미를 느꼈다."
미켈레는 쇠락해가던 구찌에 새로운 전성기를 부여한 인물. 무명의 구찌 직원이었던 미켈레는 2015년 신임 구찌 CEO가 된 마르코 비자리와의 면담에서 '젊은 구찌'로 변해야 한다고 조목조목 주장했고, 그의 철학에 반한 비자리가 미켈레를 총괄 디자이너로 전격 발탁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괴짜들이 만들어가는 게 패션계라지만 그는 섹시한 슈트로 연상되던 구찌의 이전 문법에 도전하며 일명 '괴짜 패션'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빈티지·히피·무성(genderless)에 정반대 느낌의 클래식을 섞어 마치 할머니 옷장에서 꺼낸 듯한 의상을 주류로 떠오르게 했다. 호랑이, 뱀, 벌 같은 무늬 자수에 과장된 실루엣의 '맥시멀리스트'에서 빈틈없는 재단의 '미니멀리즘' 패션으로 순식간에 변화를 줬다.
빨래방을 은유한 올리비아 얼랭어의 작품.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잊히는 브랜드를 '심폐소생'하며 가장 '핫'한 브랜드로 변모시키자 '패션계의 예수' '패션계의 메시아' 같은 별명이 붙었다. 긴 머리칼을 출렁이는 그의 외모도 한몫했다. 최근 그의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다섯 번의 패션쇼를 두 번으로 줄이고 온라인으로 더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는 발표에 전 세계 패션계가 '구찌처럼 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술렁이기도 했다.
미켈레는 신진 작가나 숨겨진 예술적 가치를 발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출신 작가 코코 카피탄을 후원해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로 발돋움하게 했다. "대림미술관은 영감의 원천"이라며 한국 유일의 '구찌 플레이스'로 선정했다. 미켈레는 "예술은 내게 생명을 유지해주는 산소와 같다"면서 "예술가와의 협업은 나의 창조성에서 연장된 전기선이자 타인의 창조성을 잇는 다리! 내 눈만으로는 세상을 보기 충분치 않기 때문에 타인의 시각이 매우 즐겁다"고 했다.
"상자 속에 갇힌 패션을 꺼내 패션의 원래 속성인 꿈과 환상, 혹은 그 이상의 것을 발현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고 싶다. 나 자신을 창조적이고 호기심 많은 존재로 더욱 키워낼 것이다."
[최보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