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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사회주의 혁명 시기에 인민재판이 있었다. 말이 재판이지 형식만 있는 숙청이었다. 법은 적용되지 않았다. 제도나 약속도 없었다. 그저 군중이 내놓은 결론을 단죄의 기준으로 삼았다. 집단이 가하는 위해이자 법치 위에 군림하는 폭거였다. 1세기 시차를 둔 2020년 6월 비슷한 징조가 우리 사회에 보인다. 손정우(24)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심사다.
손씨는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다. 2015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유료회원 4000여명에게 수억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받고 아동음란물을 제공했다. 우리 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이 확정돼 올해 4월 복역을 마쳤다. 그런데 미국이 강제 송환 요구를 해서 지난달부터 심사를 받고 있다.
미국 측은 우리 사법부가 짚고 넘어가지 않은 범죄은닉자금 세탁 혐의에 대해 자신들이 처벌하겠다고 한다. 아버지 명의 계좌를 이용해 범행 자금을 도박 수익으로 위장했다는 게 미국 측 공소사실이다. 미국에서 유죄로 인정되면 감방에서 최대 20년 정도 살아야 하는 범죄다.
대중은 죄의 경중을 떠나 심사 전부터 이미 결론을 내렸다. 미국으로 보내라고 한다. 혐의는 중요치 않다. 성범죄를 저질러 놓고 감방살이 1년 6개월은 너무 적다는 목소리가 높다. '매를 덜 맞았으니 더 맞아야 한다'는 논리로 들린다. 헌법상 이중처벌금지 원칙에 반하는 얘기다. 물론 '표현의 자유'에 해당된다. 관대한 우리나라 법에서 비롯된 여론이기도 하다. 자금세탁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5년 이하 징역에 불과하다.
법원의 판단은 다음 달 6일 나온다. 대중이 정해놓은 결론과 다를 수도 있다. 범죄인 인도법에는 인도 거절 사유가 3가지 명시돼 있다. 이중엔 임의적 사유란 게 있다. 범죄인이 대한민국 국민이거나 인도범죄가 대한민국 영역에서 범해진 경우는 인도를 불허한다는 내용이다. 손씨 변호인은 이 임의적 사유를 근거로 인도 불허를 주장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국민은 국내에서 처벌하는 게 맞다"고 했다.
민족주의를 운운하려고 쓴 글이 아니다. 손씨 측을 두둔할 생각은 더욱 없다. 오로지 하나의 결론만 용인될 것 같은 작금의 흐름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대중은 묻는다. '손정우가 성범죄자로서 합당한 처벌을 받았는지 답하라.' 당연히 '아니다'가 답이다. 그러면 주문한다. '무조건 미국으로 보내라.' 인민재판과 무엇이 다른가. 질문을 다시 했으면 한다. '국내에서 자금세탁을 한 자국민이 미국에서 처벌 받는 게 맞는지 답하라.'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심사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절차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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