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당시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대북 제재 완화를 검토해보겠다며 잔뜩 기대감을 심어주었다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밝혔다. 수미 테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은 19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볼턴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에 들어 있는 한반도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테리 연구원이 전한 볼턴의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합동 군사 훈련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외교·안보 참모진이나 한국 측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훈련 축소 결정을 내렸다. 트럼프는 또 미국 본토에서 70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북한이 미국의 안보 위협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미국의 한국전 참전과 주한 미군 주둔 및 병력 규모에 대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고 볼턴이 밝혔다.
볼턴은 트럼프와 김 위원장이 첫 만남에서 서로 아첨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회담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설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질문이 마음에 든다며 김 위원장이 정말로 똑똑하고, 상당히 비밀에 싸여 있지만, 완전히 진실하고, 훌륭한 성격을 가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고 볼턴이 전했다. 김 위원장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수용해준 데 대해 사의를 표하면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해제를 다음 순서로 기대할 만할지 물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문제에 대해 열려 있다”고 말해 김 위원장이 낙관적인 기대를 안고 회담장을 떠났다고 볼턴이 회고록에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축소에 관해서도 즉석에서 의기투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훈련이 돈 낭비라고 생각해왔고, 김 위원장이 군사 훈련 축소 또는 폐지를 요구하자 즉석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볼턴은 이를 트럼프의 ‘굴복’이라고 평가했다고 테리 연구원이 전했다. 트럼프는 미국이 왜 한국전에 참전했는지 모르겠고, 지금도 대규모 병력을 한국에 주둔해놓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볼턴이 회고했다.
백악관은 하노이 회담을 준비하면서 빅딜, 스몰 딜, 협상장 박차고 나가기 등 3가지 옵션을 준비했다고 한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이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김 위원장의 핵 포기 거부로 빅딜이 어려워지자 트럼프는 ‘여자가 당신을 걷어차기 전에 당신이 먼저 여자를 걷어차라’는 신조에 따라 협상장을 박차고 나갈 준비를 했다고 볼턴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영변 핵 시설 폐기 이외에 추가 양보를 ‘간청’했으나 김 위원장이 끝내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지난 6월 말에 전격적으로 성사된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은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고 볼턴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이 끝난 뒤에 “ 김 위원장이 3차 정상회담을 요청했고, 나를 만나기를 몹시 원했다”고 말했으나 볼턴은 “그 모든 것이 허튼소리이고, 몹시 만나기를 바란 쪽은 그런 얘기를 하는 바로 그 사람(트럼프)이었다”고 반박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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