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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땀이 온 몸에 흘러내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9살 A양이 건너왔다는 베란다 앞에 섰다. 45도 정도 기울어진 지붕이 가로 막는다. 여길 오르기 위해 신발과 양말을 차례로 벗었다. 발바닥이 후끈했다. 한 낮이라 옥상 열기가 여과 없이 전해진다. 난간을 잡고 왼쪽 발을 먼저 지붕위에 올렸다. 이어 나머지 오른발을 끌어올렸다. 지붕위로 한발을 더 딛기 위해선 난간을 잡은 손을 놔야만 했다. 더 이상 양손에 잡을 것도 없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몸을 앞으로 최대한 숙였다. 손을 지붕에 바짝 붙였다. 하지만 맨발이라 미끄러울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아래를 보니 아찔했다. 빌라 5층 15m쯤 되는 높이다. 식은땀이 온 몸에 흘러내렸다. 갑자기 찾아온 더위 때문은 아니었다. 보폭을 최대한 줄여 한발을 더 위쪽으로 내딛었다. 바짝 긴장한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지나간 지붕위에서 맨발로 시도하려한 스탠드업은 바로 포기했다. 조심스럽게 뒷걸음 쳤다. 잡을 곳이 없어 앞서 했던 행동을 되감기 해 내려왔다. 미끄러질까봐 더 조심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오르는 시간의 2배는 더 길게 걸렸다.
"살기 위해 도망쳤다"
9살 여자아이가 여길 건너왔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아이는 이 지붕위에 올라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후에 A양 상담원을 통해 들었다. 살기 위해 그랬다고 한다. 살기 위해 맨발로 지붕을 타고 사선을 넘은 거다. 끔찍한 학대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건 고문이지 뭐"
이 사건을 지켜본 한 경찰관이 말했다. 학대를 당한 내용만 나열한다면 영락없는 일제 강점기에나 나올법한 고문이라는 거다. 사실 고문이 따로 없었다. "엄마가 글루건으로 발등을 불에 달군 젓가락으로는 발바닥을 지졌어요. 아버지는 뜨거운 프라이팬에 손을…" 온 몸에 난 A양 상처를 본 상담원이 아이에게 "어떻게 해서 생긴 거야?"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목에 난 상처는 쇠사슬에 매여 생긴 상처라고 했다. 매질도 당했다고 한다.
실제 아이 상처를 찍은 사진을 봤다. 온 몸에 피멍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사실 아이 몸에 난 상처가 학대의 증거였다. 이렇게 까지 모질게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동료 기자들과 함께 분노했다. 이걸 훈육이라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밤새 그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 취재를 더 꼼꼼하게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목줄은 강아지 놀이였다? 부모는 경찰 조사에 앞서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과 상담과정에서 딸이 말을 안 들어서 동생을 괴롭혀서 간식을 훔쳐 먹어서 등 이유로 혼냈다고 진술했다. 또래 아이가 흔히 하는 평범한 이유로 학대를 한 셈이다. 또 아이들이 강아지 놀이를 좋아해 목줄을 채웠다고 했다. 상담원은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말문이 막혔다. 어떤 부모가 자식이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A양이 살던 집은 4층이지만 복층으로 된 구조다. 아이는 홀로 복층에 있는 다락방에 있었다고 한다. 이 다락방 베란다에 목이 매여 있던 날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 아이 몸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밥을 하루 한 끼 정도만 먹었다고도 했다. 배고픔에 너무 힘들어했다고 한다. 아이가 처음 구조될 당시 병원에서 잰 몸무게는 25kg. 그런데 2주 만에 5kg이 불었다고 한다. 또 1주가 더 지나 체중은 2~3kg가 더 늘었다. 얼마나 굶겼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사실 A양은 만 9살이지 초등학교 4학년 11살이다. 목숨을 걸고 집에서 탈출하고 난 뒤 서서히 평균 몸무게를 찾아가는 중이다.
아이의 탈출 과정에서도 배고픔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목숨을 걸고 지붕을 넘어 옆집으로 간 아이는 가장 먼저 먹을 것을 찾았다. 다행히 집주인은 없고 선반위에 컵라면이 있다. 누룽지와 짜파게티다. 정수기에서 차례로 물을 받았을 것이다. 젓가락은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높은 곳에 나무젓가락이 있었는데 아이 눈 높이에선 보이지 않았던 듯 하다. 다행히 정수기 옆에 작은 티스푼이 있었다. 티스푼으로 누룽지를 먼저 먹었다. 콜라도 반쯤 마셨다. 그 순간 인기척이 났다. 오전 10시쯤 집 주인이 온 거다. 이곳을 사무실로 쓰는 30대 아저씨들이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숨어버렸다. 부모에게서 본 어른의 모습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아저씨가 화장실을 간 틈에 짜파게티를 챙겨 집 밖으로 나갔다.
이후 아이는 비좁고 먼지 가득한 빌라 물탱크실에서 7시간 가량을 숨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기계실에 있었다" 라고 진술했다. 물탱크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하는 곳이다. 모터가 돌아가면서 주기적으로 기계음이 난다. 아이 눈에는 기계실로 보였을 수 있다. 다행히 그곳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아이는 창문을 통해 동태를 살폈던 것으로 보인다. 빌라 입구는 물론 멀리서 차와 사람이 오는 것까지 다 보이는 창문이다. 아이는 곧장 빌라 밖으로 나가면 집안에 있던 어머니에게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주로 해가 진 뒤 밤에 오셨다. 아이는 늦은 오후 시간을 택하기로 했다. 촬영팀과 잠시 물탱크실에 있었지만 목이 아플 정도로 먼지가 많은 곳이다. 아이가 초조하게 있었을 7시간이 어땠을 까 감히 상상이 안 갔다. 결국 아이는 오후 5시쯤 물탱크실에서 나와 밖으로 뛰쳐나갔다. 빌라를 나가자마자 주민에게 구조됐다.
이웃들은 학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웃과 교류를 할 수 없었던 코로나19의 영향도 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안타까워했다. 옆집 아저씨들은 아이가 올 줄 알았더라면 더 맛있는 것을 사 놨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아무도 몰랐을까? 단지 코로나19 탓일까? - 내일(18일) 2부에서 이어집니다.
◆ 관련 리포트
[취재설명서] "3번이나 찾아갔지만…" 창녕 아동학대 사건 취재기②
→ 기사 바로가기 : http://news.jtbc.joins.com/html/719/NB11955719.html
배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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