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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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북 특사를 보내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을 북한이 17일 일방적으로 까발렸다. 정부도 부인하지 않았다. 정부는 북한의 막장 강공을 막는 저지책으로 특사 카드를 꺼냈지만, 무위에 그쳤다. ‘언제, 누구를, 어떻게’를 영리하게 고민하지 않고 서두른 책임이 크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 당국이 15일 특사 파견을 간청하는 서푼 짜리 광대극을 연출했다”고 보도하면서 특사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이었다고 공개했다. “앞뒤를 가리지 못하며 다급한 통지문을 발송한 데 대해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렸다”고 밝혔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형석 대진대 교수는 “‘더 이상 남측에 설득 당하지 않을 테니,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라’는 게 최근 북한의 메시지였다”면서 “이 타이밍에 나온 특사 제의가 북한 성에 찼을 리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특사 파견을 제안한 것은 그 만큼 처지가 곤궁했다는 뜻이다. 북한은 이달 4일 김여정 제1부부장 담화를 통해 ‘대남 적화 노선 전환’을 선언한 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대남 군사조치 등 구체적 계획을 준비 중이었고, 정부도 이를 상당 부분 포착하고 있었다.
다급할수록 신중했어야 했지만, 정부는 그러지 못했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을 내세운 것이 적절했느냐는 뒷말부터 나온다. 두 사람은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과 이후 북미 협상에서 한국의 중재 외교를 담당한 ‘투 톱’이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남측이 북미 사이의 중재자를 자처해놓고 미국을 설득하지 못한 데 대해 북한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최근 국면의 본질”이라면서 “이 시점에 남북 대화와 북핵 협상의 주요 플레이어인 두 사람을 또 다시 대북 특사로 보내겠다는 생각은 다소 안이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북한의 의중을 냉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리’를 추구하는 북한은 특사가 무슨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갈 것인가를 철하게 따졌을 것이다. 북한이 고대하는 건 오직 미국의 태도 변화이지만, 정부는 단시간에 그런 깜짝 선물을 마련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남북 경제협력을 위한 미국의 동의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은 남측 특사를 만나봐야 원하는 선물을 받지 못할 것으로 여긴 듯 하다”고 관측했다. 이에 정부가 특사 파견 제안에 앞서 한미 간 조율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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