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중 흑인 CEO는 현재 이 네명이 전부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데 자이틀린, 케네스 프레이저, 로저 퍼거슨, 마빈 엘리슨. /사진=블룸버그머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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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302] 법률자문상담 사이트 로켓로이어를 운영하는 흑인 출신의 찰리 무어는 지난해 가을 아들과 버몬트주에서 운전하던 도중 인종차별을 겪었다. 과속을 하거나 신호를 어긴 것도 아닌데 경찰이 그를 멈춰 세운 것이다. 무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경찰에게 '변호사'라고 답했더니 그 순간 모든 게 달라졌다고 무어는 회상했다. 그는 "경찰이 갑자기 세상 친절한 '미스터 버몬트 씨'가 되더라. 말 그대로 휴대폰 영상을 향해 말을 거는 시늉도 했다"며 "평생 이런 일을 겪어왔다. 그동안 영상으로 녹화가 안 됐다뿐이지 400년 동안 계속 이랬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태로 미국 전역이 4주째 들썩이고 있다.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M)' 등 수많은 시민단체를 비롯해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과 같은 주요 흑인 정·재계 인사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중에서 흑인 기업인 4명으로부터 나온 입장이 특히 주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포천지가 선정한 미국 500대 기업에서 유일한 흑인 출신 최고경영자(CEO)였기 때문이다.
CNN은 해당 CEO들이 플로이드 사망시위와 관련해 보인 입장을 정리해 보도했다. 명품 브랜드 '코치'가 속한 '타퍼스트리(Tapestry)'의 지데 자이틀린, 대형 제약사 '머크(Merck)'의 케네스 프레이저, 주택용품 판매기업 '로우스'의 마빈 엘리슨, 금융사 'TIAA'의 로저 퍼거슨이 그 주인공이다.
직장 내 편견과 미세공격에 노출된 흑인 전문직 종사자 3분의1이 2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출처=픽사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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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틀린은 링크트인을 통해 자사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쓰려고 몇 번이나 자리에 앉았지만 눈물이 나서 계속 그만뒀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매우 사적이다." 그는 시위대의 매장 약탈 소식을 전하면서도 "창문과 핸드백은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조지 플로이드, 아머드 아버리, 브레오나 테일러, 에릭 가너 등 수많은 목숨은 되돌릴 방법이 없다"며 지금까지 희생된 흑인 피해자들의 이름을 열거했다.
프레이저 CEO는 언론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플로이드가 나일 수도 있었다"며 "우리가 그 영상(플로이드 체포 영상)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나일 수도 있었던 플로이드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를 들고 있다. /사진출처=AFP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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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미국 포천지 발표에 따르면 500대 기업 중 흑인 CEO는 단 4명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인구비율이 13%로 알려져 있음에도, CEO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사가 이어져온 20여 년을 통틀어도 흑인 CEO는 총 17명밖에 되지 않으며, 이 중 여성은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제록스를 이끌었던 우르술라 번스 단 한 명뿐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주요 IT기업에는 흑인 경영인이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은 이런 현상에 대한 원인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했다. 연방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가 2018년 조사한 결과 미국 내 흑인 전문직 종사자의 비율은 3.3%였다. 기업 내 최고경영진(C-suite) 직책에서도 향후 승진 가능성이 훨씬 높은 최고재무책임자(CFO)보다 인사·행정 부문에서 임원을 맡고 있는 이가 많았다.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이사회에 흑인이 전무한 사례도 S&P500 상장기업의 3분의 1이나 됐다.
흑인 전문직들은 직장에서 다른 어떤 인종보다 많은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도 조사됐다. CNN은 "흔히 이 같은 행태는 '너는 다른 흑인과 다르다'거나 '(그들과 달리)논리정연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방식의 '미세공격(microaggression)'으로 이뤄질 때가 많다"면서 "편견과 차별은 흑인 전문직의 3분의 1이 2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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