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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미국 흑인 사망

미국민 64% 반대하는 "경찰예산 삭감"…인종차별 해법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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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의 아하 아메리카]

시위대 워싱턴 시장 자택 기습 시위

"경찰예산 삭감해 공동체 지원" 요구

ABC, 흑인 57% 찬성, 백인 70% 반대

민주당, 경찰 목조르기 금지 등 초점

바이든, 코로나 보건 격차 해소 공약

중앙일보

13일 미국 워싱턴 DC 뮤리엘 바우저 시장 자택 앞에서 성소수자 단체를 포함해 조지 플로이드 시위대가 경찰예산 삭감(Defund Police)을 요구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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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현지시간) 밤 워싱턴 DC 백악관 바로 위쪽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광장에서 수백명의 시위대가 관광객, 인근 주민이 뒤섞인 가운데 "경찰 지원을 끊고, 사람들에 돌려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찰 예산을 없애는 대신 흑인을 포함한 지역 공동체에 투자하라는 요구로 발전한 셈이다.

다음 날인 13일 오후 성 소수자 단체의 주도로 200여명의 시위대가 뮤리엘 바우저 워싱턴 DC 시장의 자택 앞을 급습해 광역경찰 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바우저 시장은 시위대를 폭도로 비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DC 집결지인 라파예트 광장을 BLM 광장으로 개명해 전국적 스타로 부상했지만, 경찰 예산 삭감의 표적으로 전락했다. 바우저 시장이 "시의 성장에 따라 불가피하다"며 전년 대비 3.3% 늘어난 5억8000만 달러 경찰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한 게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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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리엘 바우저 미국 워싱턴 DC 시장. 플로이드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백악관 북쪽 라파예트 광장과 16번가 거리를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광장으로 개명하는 조치로 찬사를 받았지만 경찰예산 삭감을 놓고는 시위대와 충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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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진앙인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시의회는 아예 지난 12일 시 경찰을 해체하고 지역사회 주도 공공치안 모델로 탈바꿈하기로 의결하기도 했다. 뉴욕·로스앤젤레스 시도 예산 삭감을 약속한 상태다. 미국은 연방수사국(FBI)과 연방보안관, 국립공원 경찰 등 일부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자치경찰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살인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3주째 주말을 맞아 규모는 줄었지만, 시위대의 목표는 가해자인 경찰에 보복성 정의를 요구하는 예산 삭감으로 뚜렷해지고 있다. 반대로 미 연방의회도 경찰개혁법안 논의에 착수한 가운데 경찰예산 삭감이 인종차별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뉴욕 출신으로 12일 백악관 시위 현장을 찾은 프랭크 애덤스(59)는 "경찰 개혁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소득·직장·주거·건강 등 미국 사회 인종 불평등의 극히 일부분"이라며 "특히 경찰예산 삭감 같은 조건반사적 보복으론 지지를 받기 힘들고 우리가 얻는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4년 민권법, 65년 투표권법을 끌어냈던 것처럼 우리는 좀 더 똑똑하고,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 ABC 방송이 공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의 거의 3분의 2인 64%가 경찰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34%뿐이었다. 다수가 경찰 축소·폐지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가족·이웃간 분쟁이나 가벼운 교통사고까지 경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60%는 경찰 예산을 삭감해 공중 보건과 사회복지 사업에 쓰자는 제안에도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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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BC방송이 12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경찰예산 삭감운동을 '지지한다'는 34%, '반대한다'가 64%로 나타났다. [ABC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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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응답자는 57%가 삭감을 지지했지만 백인은 26%밖에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지지자의 86%, 무당파 67%가 반대했고 민주당 지지자는 55%가 찬성하고 43%가 반대했다. 시위대의 목표가 아직까진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자 애매모호한 줄타기를 하던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도 "경찰예산 삭감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반대로 돌아섰다. 그는 "나는 경찰이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한다면 연방 예산 지원을 지지한다"라고 밝혔다.

경찰예산 삭감 논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에서 흑인의 불균형한 피해를 포함한 인종 차별과 격차에 대한 해법 마련에 사람들의 관심을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미국 공공미디어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흑인은 미국 전체 코로나19 사망자의 24.3%로, 인구 비중보다 두 배가량 희생됐다. 흑인 인구가 많은 워싱턴 DC에선 사망자의 74.1%, 루이지애나 53.8%, 미시시피 51.5%, 사우스캐롤라이나 51.1% 등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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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종별 소득·실업·보험·코로나19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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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만명당 치명률은 61.6명으로, 백인(26.2명)보다 2.4배에 달했다. 미국민 가운데 중위 가계소득이 4만 달러로 가장 빈곤하고, 민간 의료보험 가입률은 낮고(55.4%), 소득 3만5000달러 이하 저소득층에 대한 메디케이드와 같은 공공보험 의존도(41.2%)는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의회에 발의된 법안도 경찰개혁이 중심이다. 민주당은 지난 8일 블랙 코커스 회장인 캐런 배스 하원의원과 제럴드 내들러 법사위원장 등 214명이 경찰직무(policing) 정의법을 공동 발의했다. 경찰관 위법행위 처벌 기준을 "고의"에서 "인지하거나 무모한 행동"으로 낮추고, 정당방위 면책 기준을 제한하며, 용의자 체포과정에서 목조르기를 금지하고, 연방정부 법무부가 경찰의 인종차별 관행에 대해 강제 수사할 수 있도록 소환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2014년 뉴욕에서 경찰에 의해 질식사한 에릭 가너의 이름을 따서 목조르기를 포함한 호흡방해 행위를 금지하는 '과잉 폭력행사 금지법안'도 발의된 상황이다. 2015년 처음 법안이 발의됐을 때 경찰노조와 다수 공화당의 반대로 하원 문턱도 넘지 못했지만 이번엔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통과 가능성은 높아진 상황이다.

흑인을 포함한 소수인종 만성질환 예방을 위한 건강증진기금을 증액하는 코로나19 격차경감법안도 민주당 자하나 헤이스 의원이 지난 4월 말 발의했지만, 경찰개혁에 대한 관심에 가려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역시 흑인 표 결집을 위한 조 바이든 후보의 대선 전략 차원에서 "구조적 인종차별" 문제에 접근한다고 비난을 받는 이유다. 바이든 후보는 저소득층에 대해선 보험료 없이 65세 이상 메디케어와 같은 공공 의료보험을 보장하고, 흑인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해 1만5000달러의 선불금을 지원하며, 500억 달러를 투자해 학비 부담 없이 2년제 지역대학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대선공약에 넣어놨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선 이후로 미룬 셈이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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