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역사의 본산인 미국·유럽서 제기되는 점 주목
“논쟁적인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지 고민할 때”
미국 미네소타주 주도 세인트폴의 의회 건물 앞에서 시위대가 10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을 쓰러뜨린 뒤 발로 밟고 있다. 세인트폴/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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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을 계기로 전세계로 번진 인종차별 반대 목소리가 서구 제국주의 시대 인물들의 기념물 철거 요구 등 ‘역사 청산’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서구 역사 기념물 철거 운동은 1950년대 이후 아프리카 등 옛 식민지에서 널리 진행됐으나, 이번 움직임은 ‘제국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유럽과 미국에서 번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15세기 신대륙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부터 20세기 인도 식민통치와 관련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동상 철거 요구가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고 <로이터> <에이피>(AP) 통신 등이 1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대표적인 표적으로 꼽힌 5명의 면면은 이 운동의 포괄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0~1506): 시기적으로 ‘서구 제국주의 유물’ 1호로 지목되는 이는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1492년 첫 탐험에 나서 이른바 ‘신대륙’ 최초 발견자로 기억되는 콜럼버스는 유럽인들의 미국 원주민 학살을 촉발한 인물이라는 비판도 받아왔다. 미국 보스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공원’에 있던 그의 동상이 지난 10일 철거 결정이 내려진 데 이어 마이애미 시내에 세워진 그의 동상도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쓰는 수모를 당했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도 그의 동상이 호수에 던져졌다.
영국 브리스틀에서 시위대가 7일 17세기 노예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바다에 떨어뜨리고 있다. 브리스틀/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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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콜스턴(1636~1721): 17세기 영국 노예상인 에드워드 콜스턴은 영국에서 집중적인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 서부 항구도시 브리스틀에 있는 그의 동상은 지난 7일 제국주의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의해 철거돼 바다에 던져졌다. 그는 서아프리카인 10만명을 미 대륙과 카리브해 섬나라에 팔아넘긴 영국 노예 거래의 주역으로 꼽힌다.
미국 켄터키주 주도 프랭크퍼트에 있는 주의회에서 13일 19세기 남부연합의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 동상 철거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프랭크퍼트/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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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퍼슨 데이비스(1808~1889): 미국 남북전쟁 시절 남부동맹(아메리카연합국)의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도 역사 청산 대상으로 지목됐다. 노예제도 존속을 주장한 데이비스의 동상은 지난 10일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철거된 데 이어 13일에는 켄터키주 의회 건물에서도 철거됐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도 의회에 설치된 남부군 관련자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등 이런 흐름에 힘을 실어줬다.
벨기에 브뤼셀에 설치된 19세기 벨기에 왕 레오폴드2세의 동상이 11일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들에 의해 페인트를 뒤집어썼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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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폴드 2세(1835~1909): 1865년부터 44년동안 벨기에를 통치한 레오폴드 2세는 아프리카 콩고인 수백만명을 살해한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외 식민지 개척에 적극 나선 그는 1885년 개인 소유의 ‘콩고 자유국’(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을 건설했고, 현지인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수백만명의 희생을 불렀다. 벨기에 항구도시 안트베르펜에 있는 그의 동상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에게 크게 훼손된 직후인 지난 9일 철거됐다.
영국 런던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자들이 7일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낙서가 쓰인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동상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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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스턴 처칠(1874~1965): 1941~45년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인종 차별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1943년 인도 벵골의 대기근이 처칠의 쌀 수탈 정책 탓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체코 프라하와 영국 런던에서 그의 동상이 최근 잇따라 훼손됐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양 역사 속 인물에 대한 광범한 공격에 대해 폭력적인 역사 지우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처칠 동상을 목표로 삼은 건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우리는 과거를 편집하거나 삭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남부연합군 장군 이름을 딴 군 기지 개명 요구를 거부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토니 애벗 오스트레일리아 전 총리는 “과거 영웅들의 동상 철거 요구는 최악의 문화적 파괴 행위”라고 비판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하지만 1776년 미국의 독립 선언 직후 혁명 세력이 영국의 조지3세 동상을 철거한 것을 비롯해 소련의 철권 통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이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동상 파괴 등에 대해서는 역사 파괴라는 비판을 찾기 어렵다. 이 때문에 소모적 역사 파괴 논쟁보다는 역사를 어떤 식으로 기억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의 입안자로 지목되는 세실 로즈의 동상 철거 운동을 이끈 라마바니 마하파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공공 장소에 동상을 세워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역사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논란이 되는 인물들의 동상은 박물관에서 적절한 역사 배경 서술과 함께 전시되는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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