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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북핵 문제·미중 관계·위안부 논란…“침묵”만 유지하는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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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도 언급했는데…핵군축 회의에서 북핵 문제 외면해

‘홍콩 국가보안법’ 국제사회 우려에는 ‘원론적 입장’만

위안부 면담 기록 청구에는 “한일 관계 악화” 비공개

헤럴드경제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차단하며 ‘대적’에 나선 북한을 비롯해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을 둘러싼 미중 갈등, 윤미향 의원과의 위안부 합의 논란 등 주요 현안마다 중심에 선 외교부가 ‘로 키’ 대응을 유지하고 있다. 외교부는 “입장을 내기 어렵다”며 조심스러운 모습이지만, 주요 현안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태도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과도한 저자세”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3일 외교부에 따르면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은 지난 9일 오후 화상회의로 열린 ‘핵군축·핵비확산조약(NPT) 스톡홀름 이니셔티브 장관급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이 차관은 이날 회의에서 “한국이 핵무기 확산 방지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보장하는 NPT 체제의 수혜국 중 하나로서, NPT 평가회의의 성공과 국제 핵군축·비확산 체제 강화에 적극 기여 중”이라며 우리 정부가 2019년 유엔총회에서 결의 채택을 주도한 ‘청년과 군축·비확산 결의’ 등의 성과를 소개했다.

그러나 정작 회의 직후 이 차관은 “북한 핵 문제를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핵군축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매년 우리 정부가 강조했던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제1부부상이 남측과의 통신선을 차단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시하는 상황에서 이른바 ‘북한 눈치보기’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이같은 논란에 외교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외교부는 “북한 비핵화는 의제가 아니였다”며 “코로나19로 연기된 NPT 평가회의 등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문제가 주로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북한 핵 문제를 언급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부의 해명도 설득력은 떨어진다. 의에 함께 참석했던 일본이 나서서 북한 핵 문제를 먼저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와카야마 켄지(若宮健嗣) 일본 외무부대신은 회의 직후 “(회의에서) 북한 정세와 관련,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 역시 회의 결과를 설명한 보도자료에 북한 핵 문제를 언급했다고 명시했다. 북한 핵 문제는 의제가 아니었다는 우리 정부의 설명과는 대치되는 대목이다.

중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제정을 강행한 ‘홍콩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외교부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외교부는 홍콩 관련 문제에 대해 “홍콩은 우리에게 밀접한 인적·경제적 교류 관계를 갖고 있는 중요한 지역”이라며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하에 홍콩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1984년 중영공동성명의 내용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면서도 한미 동맹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되지만, 일찍이 홍콩 국가보안법에 강한 우려를 표명한 영국, 프랑스, 호주, 일본 등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앞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홍콩 문제에 대한 공동성명을 주도하겠다고 나선 일본은 중국 정부가 “내정 간섭을 하지 말라”는 불만에도 “할 말은 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한국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G7 초청을 받은 호주 역시 중국의 강경 대처에도 홍콩 국가보안법 비판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일본이 홍콩 문제를 두고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배경을 두고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반(反)중국 연대를 위해 한국과 호주, 인도, 러시아를 초청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G7 내 입지 강화가 목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미 고고도방어미사일체계(THAAD·사드) 배치 논란으로 중국과 한차례 마찰을 빚었던 한국 입장에서 관계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다는 의견도 강한 상황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중 관계와 관련된 입장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우리 정부가 어느 한쪽 편을 들 수는 없는 상황이라 고심이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외교부의 ‘침묵’은 위안부 합의 논란에서도 반복됐다. 지난 2015년 일본 정부와 위안부 피해자 배상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윤미향 의원(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과 나눴던 면담 기록을 지난 11일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며 공개 거부한 것이다.

외교부는 해당 면담 기록이 공개될 경우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만, 이미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된 상황인 데다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을 지냈던 조태용 미래통합당 의원이 “당시 윤 의원과 외교부가 합의 내용을 충분히 논의했다는 내용의 보고를 분명히 받았다”고 말하는 등 관련 의혹이 확산된 상황에서 부적절한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외교부는 “관련된 법률에 따른 결정”이라며 대응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외교부가 제시한 근거는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 2호로, 당시 면담 기록이 ‘국가 안전 보장·국방·통일·외교 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비공개 결정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당장 “청와대와의 사전 협의는 없었다”며 해명에 나섰다. 외교부 관계자는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 지난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보를 갖고 있는 해당 부서에서 주도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면서도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나 다른 관계부처와의 협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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