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지원금에 허리 휘는 지자체
재난관리·구호 기금뿐 아니라
복지·생활밀착형 예산도 축소
서울 복지분야 예산 619억 감액
전문가 “포퓰리즘·재정위기 우려”
지난달 16일 대전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긴급 재난지원금 신청을 받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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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올해 국공립 어린이집 130곳을 새로 지을 계획이었지만 75곳만 늘리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정부 지원금)과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 등에 충당하기 위해 국공립 어린이집 신축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계획된 예산까지 총 1300억원 가운데 550억원을 줄여 코로나19 지원금으로 썼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전국 자치단체가 정부 지원금에다 자체적으로 별도의 지원금까지 마련하고 있다. 상당수 자치단체는 재난관리기금이나 재난구호기금 등을 헐어 지원금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지자체는 저소득층 복지 관련 예산이나 주민 생활과 밀접한 도로 건설 예산까지 삭감해 주민에게 줄 돈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8일 2조8529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했다. 이렇게 해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 코로나19 피해업종과 고용보험 사각지대 지원비 등을 확보했다. 추경 재원 마련을 위해 기존 사업 예산을 1조1440억원 감액했는데, 이 가운데 복지 분야가 619억원을 차지한다.
50대 기초수급자 “나 같은 사람 손해볼 것”
지방자치단체 생활지원금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
감액 내용을 보면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진료비 175억원,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비 47억6000만원, 저소득시민 자활사업 운영지원비 47억6000만원, 복지네트워크 구축과 복지사각지대 발굴 지원비 22억4000만원, 청소년 발달장애인 방과후활동서비스 지원비 16억2000만원 등이다.
서울의 한 지역자활센터에 다니는 기초수급자 박교순(59)씨는 2016년 자활 참여를 조건으로 급여를 받는 조건부 수급자가 된 뒤 이듬해 코 안에서 혹이 여러 개 발견돼 수술을 했다. 당시 입원·수술비로 200만원 정도 나왔는데 비급여 항목 수술비 60만원 정도 외에는 의료급여 혜택을 받아 30만원만 부담했다. 박씨는 의료급여사업비 삭감 소식에 “의료비 지원이 줄면 나 같은 사람만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며 “급여수급자로 병원에 다니는 자활센터 동료들도 지원이 없어지면 불안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시 복지기획관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시설이 휴관하거나 해당 시설 직원의 근무가 중단돼 사업비를 줄인 게 대부분”이라며 “코로나19 지원금으로 재편성되니 피해를 본 대상자가 있다면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의료급여사업 예산이 준 것은 전년도 예치금이 남은 데다 코로나19로 병원 방문자 수가 줄었기 때문이며 지원은 그대로 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용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국장은 “복지시설이 대부분 휴관하면서 가족이 24시간 돌봄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긴급서비스 지원이 없다”며 “이들에 대한 코로나19 피해 지원책 없이 예산 삭감만 한 것 아니냐”고 했다.
서울 외에 다른 시·도는 재난관리기금이나 재해구호기금, 예비비 등에서 지원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상당수 일선 시·군은 주민생활과 밀접한 다른 사업 예산까지 끌어다 썼다.
거제시는 도로 사업비 100억 감액
경남 거제시는 최근 거가대교 접속도로에서 거제시 도심을 관통하는 신설도로(송정 IC~문동) 사업비 100억원을 감액했다. 이 사업은 2013년부터 국토교통부가 추진해 왔다. 총 사업비 3000여억원 가운데 거제시는 749억원 정도 부담해야 한다. 거제시 관계자는 “경남형 지원금을 도와 시·군이 5대 5로 분담하기로 하면서 예산이 부족해 도로건설비를 줄였다”며 “내년에 공사가 착공돼 7년 후 완공이라서 당장 공사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거제시가 이 사업을 위해 확보한 예산은 총 150억원이다. 이 중 100억원을 지원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예산 마련이 쉽지 않아 공사 진행이 더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송정 IC~문동 구간은 총연장 5.74㎞에 달하는 왕복 4차선 도로다.
전문가들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단체까지 무리하게 현금 지원 경쟁에 나서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송광태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정자립도가 10%도 안되는 지자체가 많은데 기존에 계획된 예산을 코로나 지원을 위해 감액하면 구멍이 뚫리고 그 피해는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며 “인기 영합 정책으로 보이는 현금지원 경쟁이 반복되면 심각한 재정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창원·광주·대구·서울=위성욱·김정석·최은경·김태호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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