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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기고] 정의연 사태로 NGO의 존재 의미가 무너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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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기부를 했다는 사람과 앞으로 기부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고 자원봉사 또한 비슷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부에 관한 질문에서 2013년 조사 대상자의 34.6%가 '기부 경험이 있다'고 답했는데 2019년에는 25.6%로 줄었고, '향후 기부할 의향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는 2013년 48.4%가 '그렇다'고 응답했지만 2019년에는 39.9%가 됐다.

자원봉사에 관한 조사에서도 '자원봉사 활동 경험이 있다'가 2011년 조사 대상자의 19.8%에서 2019년에는 16.1%로, '향후 봉사할 의향이 있다'는 2011년 45.6%에서 2019년 33.4%로 감소 추세를 나타냈다. 기부(나눔)와 봉사는 그 사회의 건강과 행복도에 대한 척도이기도 하다. 특히 IT 발달과 디지털화로 심화되는 빈부 격차와 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효과로 말하면 나눔과 봉사보다 더 좋은 방책은 없을 것이다.

최근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사태 이후 나눔과 봉사 문화에 앞장서 온, 특히 후원금을 받아 사회 공익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NGO)들은 뜻하지 않은 역풍을 곳곳에서 맞고 있다. 정의연 사태의 진상은 앞으로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좋은 일을 위해 기부를 실천하는 사람들, 또 열심히 나눔 문화 조성에 앞장서는 NGO들에 다소간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빨리 수습되어 기부 문화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올해 92세인 박춘자 할머니는 남한산성 입구에서 노점 김밥 장사로 평생 모은 3억원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지난 2008년 어린이재단에 기부했으며, 최근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의 전세 보증금 5000만원마저 같은 목적으로 어린이재단에 유산 기부 공증까지 마쳐놓은 상태이다. 이런 후원자님들의 뜻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훼손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나눔 문화가 몸에 익은 민족이다. 70년 전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지금은 아프리카·동남아시아의 어려운 나라를 돕는 해외 원조 국가가 됐다. IMF 사태 같은 굵직한 국난 속에서도 DNA에 새겨진 십시일반 문화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K팝과 같이 세계의 주류가 되고 있는 한류 열풍은 이제 코로나19 방역까지 수출하는 문화 대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종교나 기업 중심 기부 문화를 벗어나 어려운 이웃을 서로 돕는, 그래서 따듯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소액 개인 후원자들의 기부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기부 문화의 본질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정의연 사태는 NGO들에 책무성의 중요함을 더욱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를 계기로 '공익법인 등의 결산서류 공시'와 관련한 미진한 법과 제도가 개선되고, 후원자도 후원하는 기관의 활동과 내용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고 후원처를 결정하는 기부 풍토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각 NGO는 존재하는 이유를 정관의 목적 사업에 잘 명기하고, 귀중한 후원금을 기부받아 목적 사업에 충실하게 사용해야 하고, 사업 성과를 정확하게 공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모든 NGO의 존립 기반은 투명성과 신뢰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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