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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화장실 몰카 직원 짓 아냐” 발뺌 KBS, 정준영 사건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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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직원 아니지만…” 재발 방지 약속하며 전제 달아 ‘논란’ / ‘정준영 사건’ 1년여 만에 또 디지털성범죄… 출연자 검증·관리 안 지켜져

세계일보

“용의자가 KBS 직원은 아니지만, 출연자 중 한 명이 언급되는 상황에 책임감을 느낀다.”

KBS가 서울 여의도 KBS연구동 내에 불법 촬영기기가 설치된 사건과 관련해 재발 방지와 2차 피해 예방을 약속했다. 이 가운데 자사 직원은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전제를 달아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KBS는 ‘몰카 사건’ 발생 5일 만인 지난 3일 입장문을 내고 “KBS는 연구동 건물에서 불법 촬영기기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 엄중하게 받아들이며, 재발 방지와 피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KBS는 “이러한 유형의 사건은, 범인 검거 및 처벌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KBS는 잘 인식하고 있다”며 “발견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조사에 적극 협조하는 것은 물론, 구성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도 시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KBS 연구동 여자 화장실에 휴대용 보조배터리 모양의 불법 촬영기기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고, 지난 1일 새벽 용의자 A씨가 자진 출석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몰카에 저장된 영상에서 A씨의 모습을 확인, 신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A씨가 자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KBS 공채 출신 개그맨으로, 자신이 설치한 몰카에 담긴 본인의 모습 때문에 경찰에 덜미가 잡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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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KBS 본사 전경. 뉴스1


KBS는 몰카 용의자가 ‘KBS 직원’이라는 최초 보도가 나오자, 즉각 반박하며 ‘법적 조치’까지 운운했다. 조선일보의 지난 2일 보도를 통해 A씨가 2018년 공채 개그맨으로 KBS에 입사했고, 지난달까지 KBS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출연한 개그맨이라는 내용이 공개되자, KBS는 A씨에 대해 “‘개콘’에 출연한 개그맨이라 하더라도 공채 입사 후 전속계약 1년이 지나면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때문에 KBS 직원이라고 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 해명으로 오히려 논란은 증폭했다. 가해자가 자사 직원이 아니라는 KBS 해명은 해당 사건을 구성원이 아닌 단순한 개인 일탈로 책임 소지를 돌리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불러왔다. 가해자가 KBS와 무관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관리 부실 등 명백한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더라면 오히려 사건은 ‘개인 일탈’로 논란의 본질이 옮겨갔을지 모른다며 KBS의 대응을 꼬집는 반응도 적지 않다.

KBS의 ‘발뺌’에 여성단체도 발끈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일 ‘A씨는 자사 직원이 아니다’라는 발표에 “강력한 손절 의지, 부끄럽기나 합니까”라고 비판했다. 민우회는 “KBS직원이 아니라고 입장 표명하면 KBS 화장실에 설치된 불법 카메라가 없는 것이 되느냐”며 “KBS에는 고용형태가 다양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라도 사업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감을 가지고, 역할을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KBS는 이번 사건 관련한 대응에서 이른바 ‘정준영 사건’을 떠올리게 하며 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KBS는 지난해 3월 불법 영상 촬영 혐의를 받던 가수 정준영에 대해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하차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방송 잠정 중단을 결정했다. 당시 KBS는 출연자 검증과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지만, 1년여 뒤 출연자가 비슷한 혐의로 구설에 오르면서 당시 약속한 출연자 관리나 재발 방지는 지켜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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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예능프로그램 ‘1박2일’ 출연 당시 가수 정준영씨 모습. KBS 제공


정씨는 ‘1박2일’에서 하차하기 전인 지난 2016년 처음 성범죄 혐의로 고발됐고 무혐의 처분 뒤 4개월 만에 복귀했다. 무혐의에 따른 복귀 조치라고 하지만, 물의를 빚은 출연자를 충분한 검증 없이 방송에 복귀시킨 것을 두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KBS의 안이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뒷말마저 나온다.

그때(정준영 사건)도 그랬고, 이번(화장실 몰카 사건)에도 KBS는 눈앞의 상황 회피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다른 점이라면 후자의 경우 피해자가 직원과 출연자 등 KBS 내부 구성원이었다는 점이다. KBS가 ’가해자는 조직과 무관하다’며 선을 긋기 전에 출연자나 시설 관리 등 책임을 인정하고, 구성원인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목소리부터 냈더라면 구성원 보호, 나아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 의지를 보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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