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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기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아이들의 편지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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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원희룡 지사의 ‘환경의 날’ 기고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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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물테마파크 건립 반대 시위를 하는 제주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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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두 아이는 코로나19 때문에 6월 8일에야 등교한다. 올해 신입생인 첫째 아들은 3월에 맞춘 겨울 교복을 한 번도 입지 못한 채 다시 여름 교복을 맞췄다. 제주 중산간 마을에 사는 우리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이 끝나면, 카메라와 쌍안경, 그리고 간식을 챙겨 들고나와 동네 곶자왈로 탐험을 떠난다. ‘곶자왈’은 용암이 만든 바위와 돌덩이로 이루어진 투수성이 우수한 독특한 화산지형을 일컫는 제주어이다. 이곳은 난대림과 냉대림이 함께 숲을 이루고 있어, 수많은 제주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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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피난처에 ‘열대동물 사파리’라니


3달이 넘도록 거의 매일 아이들과 함께 마을의 곶자왈을 찾는 이유는, 이곳에 어떤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조사해 제주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의 문제점을 알리고 싶어서다.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은 국내 최대 리조트 기업 대명이, 제주 조천읍 선흘2리 인근 곶자왈 지역에 사자 30마리, 호랑이 10마리 등 외래 야생동물 500여 마리를 전시하는 동물원과 숙박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안타깝게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과 벵듸굴이 있고, 2018년 세계최초 람사르 습지 도시로 지정된 우리 마을에 이런 대규모 개발사업이, 그것도 무려 14년 전에 받은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로 진행된다는 사실에 마을 주민들과 학부모는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선흘리 주민들은 지난 2019년 총회를 통해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를 꾸려, 1년이 넘도록 원희룡 도지사에게 사업 불허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원희룡 도지사는 어떠한 답변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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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지와 연결된 제주 민오름에서 찍힌 팔색조. 팔색조는 천연기념물 204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 이진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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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지와 연결된 제주 민오름에서 발견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긴꼬리딱새. 사진 이진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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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예정지와 연결된 민오름에 들어서면 용암이 만든 검고 울퉁불퉁한 바위들을 감싸며 뿌리를 내린 때죽나무와 그 가지 위에 앉은 코발트 빛 안경을 낀 긴꼬리 딱새를 쉽게 만난 수 있다. 6월의 제주 조천읍 선흘리 마을 숲은 습기를 충분히 머금은 제주 중산간 곶자왈로서 난개발에 밀려 쫓겨난 팔색조, 긴꼬리딱새, 흰눈썹황금새, 비바리뱀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의 피난처다. 천연기념물, 법정 보호종,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쉽게 만난 수 있는 이곳을 밀어버리고 기후에 맞지도 않는 열대동물들을 데려와 사파리를 만들겠다는 사업을 승인하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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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반대’에 지사는 1년째 묵묵부답


‘세계생명다양성의 날’인 지난 5월 22일, 선흘2리 주민들은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희룡 제주도지사에게 질문했다.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은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유는 인간이 야생동물의 서식처를 침범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는데, 야생동물 서식지인 곶자왈을 파괴하는 개발사업이 말이 되느냐고 말이다.

미국 뉴욕 브롱스 동물원에서는 사자와 호랑이 7마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언급하며, 동물원을 통해 인수공통감염병이 전파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표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우려를 담은 서한은 청원경찰과 제주도정 통유리 문 앞에 막혔고, 유리 넘어 보이는 큰 티브이 화면에는 마스크를 쓴 채 코로나를 열심히 대처하고 있다는 원희룡 도지사의 얼굴만 반복해서 나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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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주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에 사는 아이들이 원희룡 제주도지사 앞으로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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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대선 도전을 천명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환경의 날을 기념한답시고, 코로나바이러스와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를 거론하며 미래 세대에게 ‘거주불능의 지구를 물려줄 수 없다’는 유체이탈식 기고문을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다. 마치 환경운동단체 활동가의 글처럼 보이는 기고문을 읽고 맥이 탁 풀렸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제주도가 영산강환경유역청의 권고를 무시하고 지난 5월 30일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의 서식처인 비자림로 숲의 나무들을 베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기고문을 쓴 걸까? 1년이 넘도록 곶자왈과 곶자왈에 기거하는 야생동물들을 지켜달라고 제주도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선흘리 마을 주민들은 투명인간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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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리 아이들의 숲 지켜달라”


작년 3월 제주 선흘리 선인분교에 다니는 학부모와 아이들은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을 막아달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청을 방문했다. 당시 6학년, 4학년이었던 우리 아이들도 선흘2리 곶자왈과 야생동물들을 지켜달라며 삐뚤빼뚤 쓴 손편지를 원희룡 도지사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은 아직 원희룡 도지사에게 답장을 받지 못했다.

미래세대가 보낸 편지에도 응답하지 않는 정치인이 한 나라의 수장이 되겠다고 나선다니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제주도의 흙을 밟고 자랐다던 도지사의 감수성에 다시 부탁한다. 원희룡 도지사는 제주 동물테마파크사업을 불허하라. 제발 우리 마을 아이들이 제주의 숲과 함께 더불어 자라게 해달라. 자신이 자란 땅과 물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일이 당신의 소임임을 잊지 말기를 부탁한다.

이상영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 학부모/선흘2리 대명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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