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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과학TALK] 한 스푼 양 표면적이 축구장 넓이 ‘만능물질’ MOFs... 백신도 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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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저장·운반·생산촉매 역할… 수소경제 필수소재 각광
그램당 2000평 다공성 물질 2만종… 구멍 활용 ‘무궁무진’
KAIST·UNIST 등 국내서도 배터리용 촉매 등 연구 활발

미래 에너지원인 수소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운반하기 위해서는 좁은 공간에 압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압의 수소는 폭발 위험이 있다. 작년 5월 강릉 수소탱크 폭발 사고가 이를 보여준다. 현재 학계에서는 수소 분자를 하나하나 담을 수 있는 바구니 같은 구조를 가진 신물질을 이용해 효율적이고 안전한 수소 저장을 시도하고 있다.

작년 6월 한국화학공학회가 발간한 ‘화학공업과 기술(NICE)’에 따르면 2017년 미국 미시건대 연구진은 1L 부피의 신물질에 수소 51g을 저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미국 에너지부(DOE)가 제시한, 수소자동차에 필요한 수소 저장 효율 기준을 충족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신물질은 ‘금속유기구조체(MOFs)’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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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미국 케임브리지대와 노스웨스턴대 공동 연구진이 개발한 산소(보라색) 저장용 금속유기구조체(MOFs) ‘UMCM-152’(빨간색·회색). MOFs는 금속 마디(빨간색)를 유기물 연결선(회색)으로 잇는 격자 구조를 가져 내부에 구멍이 많다. /NICE 제37권 제3호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MOFs를 ‘금속과 유기물이 격자 구조로 결합한 결정 물질군(群)’이라고 설명한다. MOFs는 금속이 마디(node) 역할을, 탄소 기반 비금속인 유기물이 마디와 마디를 잇는 연결선(linker) 역할을 하는 격자 구조를 가진다. 격자 구조이기 때문에 내부에 수많은 구멍이 있다.

구멍이 많은 만큼 표면적도 넓다. 나노기술 분야의 세계적인 포털사이트 ‘나노월크(nanowerk)’에 따르면 티스푼으로 한 스푼 양에 해당하는 1g의 MOFs 표면적은 7000㎡(약 2100평) 이상으로, 보통의 축구장 면적과 맞먹는다.

◇연료 저장·유해물질 제거부터 생체로봇·백신운반까지… 2만종 존재

다공성(多孔性), 대면적 구조 덕분에 MOFs는 수소뿐만 아니라 산소, 냉매, 각종 자원을 저장·운반할 수 있고 방사능·유해 물질을 흡착·제거할 수 있다. 촉매, 생체 로봇, 백신 운반체 등 다양한 활용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다.

NICE에 따르면 MOFs의 특성과 유용성은 1999년 오마르 야기(Omar Yaghi) UC버클리대 교수 연구팀의 논문을 통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실제 산업 현장에 쓰이는 MOFs는 대부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다. 용도에 맞는 구조와 구멍 크기, 구성 재료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해 설계하고 화학반응을 통해 합성하는 방식이다. 현재까지 2만 종류 이상이 존재한다.

MOFs는 공기 중의 방사능·유해 물질을 선택적으로 흡착·제거하는 데도 쓰인다. 흡착하고자 하는 물질의 분자 크기에 맞는 구멍을 가진 MOFs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2011년 미국 기업 누마트 테크놀로지(NuMat Technologies)의 유독가스 제거용 MOFs를 시작으로 방사능 물질인 제논과 크립톤, 화학전에 쓰이는 화학무기들, 물속의 중금속을 제거할 수 있는 MOFs도 만들어졌다. 같은 원리로 이산화황, 이산화질소 등 인체에 유해한 기체를 걸러내는 필터나 고농도로 수집해 감지하는 센서로도 활용된다.

MOFs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년 5월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연구진은 수십μm(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미터) 크기의 생체 마이크로봇 ‘MOFBOT’을 개발 중이라고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발표했다. 이 로봇은 인체에 무해하고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는 MOFs를 소재로 만든 나선 모양의 작은 로봇이다. 사람의 몸속에 투입돼 약물전달 등의 미션을 완수한 뒤 자연스레 소멸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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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Fs로 만든 나선 모양의 생체 마이크로봇 ‘MOFBOT’. /나노월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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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요성이 높아진 백신 운반에 MOFs를 활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백신을 구성하는 항원 단백질은 열에 노출되면 효능이 사라지기 때문에 낮은 온도에서 보관해야 한다. 나노월크에 따르면 백신 제조와 운반에 드는 비용의 80%가 냉각 비용으로 쓰인다. 2018년 7월 텍사스대 연구진은 MOFs에 백신을 저장함으로써 별도의 냉각없이도 단백질을 변형시키지 않고 운반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사용하는 MOFs는 물에는 녹지 않아 항원을 안전하게 보관했다가 약산성의 체내 환경에서는 녹아서 항원을 방출할 수 있다. 연구진은 MOFs를 운반체로 하는 말라리아 백신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최전선엔 ‘4차원 MOFs’ 네이처 논문… 국내 전기차 배터리용 촉매 연구도 활발

네이처에서는 지난 1일에만 3건의 관련 논문이 자매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등에 실렸다. 그중 하나는 ‘4차원 MOFs’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진이 말하는 4차원은 공간 3차원 외에 시간 1차원을 더한 것을 의미한다. MOFs의 구조가 정적이지 않고 시시각각 동적으로 변함으로써 활용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구멍의 크기를 최대한으로 넓혀 많은 기체를 저장했다가, 구멍을 좁혀 원하는 물질만 저장·필터링할 수 있게 바꿀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MOFs에 대한 최신 연구성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박진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신물질과학전공 교수 연구팀은 흡착 성능을 개량한 MOFs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개발한 MOFs는 방사능 물질인 아이오딘(요오드)을 흡착하는 속도가 기존보다 3~6배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일 강정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와 최경민 숙명여대 화공생명공학부 교수 공동 연구팀은 공기 중의 산소로 충전되는 ‘리튬-공기 배터리’의 수명(사이클 수)을 3배 늘려주는 MOFs 촉매를 개발했다. 전기차용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는 리튬-공기 배터리의 고질적 문제인 짧은 수명 문제를 개선한 것이다.

지난 4일에는 김광수 울산과학기술원(UNIST) 화학과 교수 연구팀이 수소 생산을 위한 물의 전기분해 과정에 사용되는 귀금속 이리듐 촉매를 대체할 값싼 MOFs 촉매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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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따라 구조가 변하는 4차원 MOFs의 개념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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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기자(kys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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