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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대구 지킨 코로나 영웅들의 ‘피·땀·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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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글·마스크의 고통… 피할 방법은 없다” / “나는 대구에 있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 / 코로나 최전선에서 느낀 공포·긴박감… / 의료진 사명감…환자 임종 순간의 소회… / 이재태 교수, 의사 등 35인 경험담 수집 / “우리 시대의 기록으로 남겨 미래 준비”

“숨을 쉬고 있지만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은 끝이 없었고, 약속된 두 시간의 끝이 오기는 하는지, 때로는 시간이 이대로 멈춰 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찜질방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온몸의 땀구멍이 한 번에 열리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고글과 마스크로 눌리는 탓에 생기는 국소적 통증으로 얼굴의 여기저기에다 테이핑을 해보지만 아주 피할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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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병원 게시판에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를 격려하는 편지와 그림들이 가득하다. 학이사 제공


대구 코로나19 의료현장에서 일한 칠곡 경북대병원 이은주 간호사가 방호복을 처음 입은 날의 느낌을 이렇게 적었다. 그는 “이심전심, 낯선 관계에서 쓰기에 적절한 사자성어가 아님에도 우리는 분명히 ‘이심전심’이었다”고도 했다.

대구는 지난 2월 18일 처음으로 31번 코로나 환자가 나오면서 하루아침에 공포의 도시가 됐다. 하루 확진자가 100명 이상 발생하면서 시민 모두가 난생 처음 겪는 당혹감과 절망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전쟁터 같았던 코로나 진료현장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고생한 의료진이 있었기에 코로나와의 힘겨운 싸움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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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희망을 심었네’는 대구 코로나 19 진료현장을 지켰던 의료진 35명의 생생한 경험을 담고 있다. 의사 간호사 등 진료현장을 지켰던 이들의 글을 모아 대구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장을 맡았던 경북대 의과대학 이재태(사진) 교수가 엮었다. 출판은 학이사 신중현 대표가 의료인들의 기록을 우리 시대의 기록으로 남기자고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진료현장 최일선에서 코로나와 맞서 싸운 의료진이 느낀 공포와 긴박했던 상황, 죽음에 이르는 환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느낀 소회, 격리된 환자들의 심리변화 등 소중한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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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태(엮음) / 학이사 / 1만8500원


“나도 3월 한 달 동안 코로나의 현장에 있었다. 코로나의 공포는 두려웠고 때로는 섬뜩했다. 그러나 우리 이웃이 아프고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무력감은 정말 힘들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이 주어져도 하겠다고 자원했고, 생활치료센터로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모두 애타는 마음으로 달려와 주신 전국의 의료진, 자원봉사자, 공무원, 군인들과 함께 열심히 일했다. 대구로 봉사 왔던 많은 분은 전장으로 향하는 비장함으로 가족들과 눈물의 이별을 했다고 했다. 우리는 대구에 살며 매일 코로나 병원으로 무감각하게 뚜벅뚜벅 출퇴근했을 뿐이었는데, 이 도시에 들어오면 바로 무시무시한 코로나에 감염된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사는 이방인이었기에 실없는 웃음이 났었다.”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글에서 이렇게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코로나 발생 초기 사태가 심상치 않자 ‘존경하는 5700 의사 동료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대구를 도와 달라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수많은 의료진이 대구로 달려오게 했다. 그에 따르면 대구시 개원의사들은 조를 편성해 2000명이 넘는 코로나 환자를 분담했다. 이들은 하루 두 차례씩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이들에게 전화를 해 치료와 함께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기여했다.

“막상 (대구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싱숭생숭했다. 감염력이 매우 높다고 알려지기 시작한 신종 감염병이라지만,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자신했던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마음이 평온하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우여곡절과 심경변화를 겪고 3월4일 2시에 나는 대구에 있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위치에 적절한 때에 자발적으로 갈 수 있었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대구에 가기까지’에서는 송명제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임상 조교수 글로 “왜 대구에 가느냐!며 걱정하는 지인의 모습과 의사로서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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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구지역 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근무교대를 위해 격리병동으로 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배은희 경북대병원 간호사는 ‘코로나 병동의 기억-어둠을 헤치다’ 부분에서 “코로나19 환자이기 때문에 임종과정을 가족들이 옆에서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은 언제나 안타깝다. 옆에서 보는 간호사의 입장에선 더 이상 무엇도 해드릴 것 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며 코로나19 환자의 임종 순간에 대해 담담히 썼다.

혼란의 한가운데 있었던 민복기 대구시의사회 코로나 19대책본부장은 “다행히 지금은 의료진과 자원봉사자의 헌신과 시민의 협조 덕에 종식된 것은 아니지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며 “일본 아사히, 마이니치신문, 러시아, 카자흐스탄국영방송, 독일 슈피겔,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의 방역대책에 어떻게 시민들을 동참시켰는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청하면서도 과연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 많았는데, 시민들이 전문가 예상보다도 훨씬 더 잘해줬다. 지금의 안정세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책 서문 ‘2020년 대구의 봄’에서 “대구가 코로나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았다. 이 경험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며 “기억의 절차에서 6시간 미만의 단기 기억은 신경섬유 간의 접속에 의해 이루어지나, 그 이상의 장기적인 기억은 이를 위한 특별한 단백질의 생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글집이 대구 의료현장을 기억하는 한 가지 단백질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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