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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묻지마 폭행' 잡겠다고 '묻지마 체포·영장'…안일한 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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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혐의자라도 헌법·법률 예외 안되는 위법 체포"

경찰 "극단선택·제2피해 방지" 해명 설득력 떨어져

뉴스1

서울역에서 30대 여성을 상대로 이른바 '묻지마 폭행'을 저지른 남성 A씨가 4일 오전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영장실심심사에 앞서 추가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역 특별사법경찰대로 향하고 있다. A씨는 지난 5월26일 오후 1시50분쯤 공항철도 서울역의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 앞에서 30대 여성 B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2020.6.4/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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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 서울역에서 모르는 여성을 상대로 '묻지마 폭행'을 저지른 30대 남성에 대해 법원이 '위법한 긴급체포'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경찰과 검찰의 안일한 사법집행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신속한 검거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았다고 하더라도 긴급체포 요건도 고려하지 않고 경찰이 무리하게 강제로 신병을 확보한데다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 역시 정확한 사법적 판단 없이 영장을 청구해 결국 법원이 제동을 걸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기각 사유를 검토한 후에 검찰 판단에 따라서 영장 재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판사는 4일 상해 혐의를 받는 A씨(32)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기각 결정을 내렸다.

김 판사는 기각 사유에 대해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긴급체포는 위법한 체포에 해당한다"며 "그에 기초한 이 사건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고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체포 과정에서 Δ주거의 자유를 침해했고 Δ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했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3(긴급체포)에 따르면 사법경찰관이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망갈 우려가 있을 때 긴급체포를 허할 수있다고 적시해놨다. 그러나 긴급을 요한다는 말은 피의자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처럼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장기각에도 경찰은 긴급체포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철도특별사법경찰대는 5일 "체포 당시 피의자가 주거지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했으나 휴대폰 벨소리만 들리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 도주 및 극단적 선택 등 우려가 있어 불가피하게 체포했다"며 "피의자가 불특정다수에게 몸을 부딪치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여 제 2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신속히 검거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법원은 기각사유에서 피의자가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라고 할 것인데 비록 범죄혐의자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있어 예외를 둘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철도경찰 관계자는 "법원의 기각 판단 이후 검찰에서 기각 사유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며 "검찰 검토가 끝나면 검찰 판단에 따라서 재신청 등 절차가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수사에)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피의자를 다시 볼 생각은 있다"면서도 "당장 (영장을 신청하겠다는 것은) 아니니까 불구속 수사 결정이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일정을 조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법감시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피의자를 특정했으면 출석요구를 하거나 체포영장을 신청했어야 하는데 일단 들어가서 체포하거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불법"이라며 "묻지마 폭행은 공분을 살 만하나 여론이 법은 아니며 공권력 집행은 법률에 따라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나중에 용의자를 특정한 경우로 범행 후 바로 현장에서 잡는 현행범 체포가 아니다"라며 "피해자가 폭행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지만 일반적인 폭행 사건의 일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절차를 밟아서 기소하고 조사하는 것이 맞다"고 꼬집었다.

반면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긴급체포를 엄격하게 보는 것은 환영할 일이나 체포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범행 특성상 약간 정상 범위를 벗어난 형태로 피의자가 보이니까 집 안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suhhyerim77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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