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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종합] 징역 2년 '성폭행 의대생'에 재판부 "왜곡된 성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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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성범죄 혐의로 2번 조사받기도

집행유예 처벌한 1심 판결에도 화살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 전북대 의대생 A(24)씨가 항소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1심 재판부는 “합의를 했고 초범인 점”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죄질이 불량하고, 왜곡된 성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를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특히 “A씨는 과거에도 강간 등의 혐의로 피소돼 비록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로 비춰볼 때 피고인이 평상시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성적 욕구 대상으로 본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수감 생활을 하면서 반성하고, 앞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A씨가 법정 구속되자 시민사회단체는 “이제서야 합당한 죗값을 받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김성주 부장판사)는 5일 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장애인복지시설에 각 3년간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던 A씨는 이날 법정 구속됐다.

A씨는 지난 2018년 9월3일 오전 2시30분쯤 여자친구 B(20대)씨의 원룸에서 B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이날 여자친구를 추행하다가 “그만하지 않으면 신고하겠다”라는 말에 격분해 B씨의 뺨을 여러 차례 때리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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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전북 시민·사회단체가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전 의대생의 항소심 재판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환영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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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왜곡된 성 의식으로 2차 피해 발생…죄질 불량”

항소심 재판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치료해야 할 의대생 A씨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폭행하고 강간한 사건으로 상당히 죄질 불량하다”며 “A씨의 범행으로 B씨는 죽을 것 같은 공포심과 성적 수치심, 정신·신체적 고통을 겪었다”며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B씨는 A씨에게 일방적으로 목 졸림을 당하자 저항을 포기하고 강간을 당했는데도, A씨는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경찰 조사에서도 성폭행을 전후로 주고받은 문자를 삭제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황만 남겨놓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A씨는 ‘B씨가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고 동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하는 등 다양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사실을 왜곡했다”며 “B씨는 경찰에 2차례, 검찰에 1차례 출석해 당시 피해 상황을 세세하게 떠올리며 진술을 해 심각한 2차 피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친 성폭행 전후로 다른 여성 5명 만난 정황

A씨는 지난 2010년과 2015년에도 강간 등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혐의 없음’ 처분을 받고 재판에 넘겨지진 않았다고 한다. A씨는 B씨를 성폭행한 시점을 전후로 다른 여성 5명을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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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를 성폭행한 의대생의 항소심 선고공판이 5일 오전 10시에 광주고법 전주재판부에서 열렸다./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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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A씨가 이 여성들과 성관계를 하는 사이로 추정되고, 소개팅앱 등을 통해 미성년자를 포함한 다수의 여성과 조건 만남을 했거나 시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수사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하면서 이 부분에 주목했다. A씨의 왜곡된 성 의식이 범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을 했다. 재판부는 “다른 여성 5명과 만난 것으로, 비록 유죄 판결을 받진 않았지만, 조건 만남 등의 정황이 A씨의 휴대전화에서 추출된 것은 분명하다”며 “이 내용에 비춰보면 평소 여성을 자신의 성적 도구로 보고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과거 성범죄 의심 정황에도 1심 “전과 없다. 합의했다” 집행유예

항소심에서 실형이 나오자 시민사회단체는 1심 재판부를 비판했다. 이들은 “마땅히 실형에 처했어야 함에도 돈으로 해결한 합의를 진지한 반성과 노력으로 인정한 법원은 문제가 있다”며 “실형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1월 강간과 상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상),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장애인 복지시설에 각 3년간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A씨는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까지 낸 사실이 확인됐지만, 판결은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였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성폭행·음주운전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지만 “피해자가 합의를 했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성폭력 범죄로 처벌받은 적이 없는 점, 피고인 가족들이 선처를 간곡하게 탄원하는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항소심 재판부와 같은 수사기록을 보고도 다른 판단을 했다. A씨가 과거 강간 등의 혐의로 두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고, 성폭행을 전후로 여러 여성과 조건 만남 등을 했다는 수사기록도 1심 재판부에 제출됐다.

◇의대생 부모 탄원서엔 “유복하게 자라 공감능력 부족”

항소심 재판에선 A씨의 부모가 법원에 낸 탄원서 내용도 공개됐다. A씨의 부모는 탄원서에 “어린 시절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남들보다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어 공교육을 받기 어려운 조건이었다’며 ‘학교에선 그저 시간을 보내다가 방과 후 전북대 영재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아 일반 교육과정에서 배워야 할 정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적었다.

적절한 시기에 공교육에서 받아야 할 인성 교육을 받지 못해 아들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취지다. A씨의 아버지는 전주의 한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도 재판부에 낸 반성문에서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떨어지고 준법 능력도 부족했다”며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해,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실형 받았지만 출소 후 다시 의대 진학 가능

A씨는 지난달 4일 자신이 다니던 전북대에서 ‘죄질이 좋지 않아 엄한 징계가 불가피하다’며 제적 처분을 받았다. 제적은 근신·유기정학·무기정학·제적 등 재학생 징계 4단계 중 가장 무거운 처분이다.

징계가 확정된 A씨는 전북대에 재입학할 수 없다. 하지만 수능 등을 통해 다른 대학 의과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졸업하면 의사 시험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5월 ‘고려대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 가해자 3명 중 한 명인 B(32)씨는 2012년 대법원에서 2년 6개월 실형을 받고도 2014년 성균관대 의대 정시 모집에 합격해 논란이 됐다. B씨는 국가고시에 응시해 의사 면허를 땄으며, 최근 한 병원 인턴에 합격했다가 “직업윤리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취소 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대 의대 학생회 관계자는 “A씨가 다른 대학 의대에 입학한 뒤 의사 면허를 취득할 가능성을 막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의료인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지만,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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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를 성폭행한 의대생의 의사 면허 취득을 막아달라는 주장이 지난달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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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간, 폭행, 음주운전 의대생은 의사가 되면 안 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제출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마감된 이 청원에는 5만5786명이 참여했다.

[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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