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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5 (토)

[사설] 기본소득 논의가 여야 포퓰리즘 경쟁이 돼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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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의 기본소득 논의 공식화로 논쟁 봇물

재원 마련 방안과 함께 국민적 합의 우선해야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기세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어제(4일)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라며 관련 논의를 공식화했다. 전날 당 초선 모임에서 “빵 사먹을 돈이 없다면 (보수의 핵심 가치인) 자유가 있을 수 있겠느냐”며 논쟁에 불을 붙이자마자 일부 당내 우려에도 불구하고 속전속결 통합당의 핵심 어젠다로 못을 박아버렸다. 원래 기본소득 논의에 적극적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관련 법안 마련에 나섰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집중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보수 야당은 일부 급진적 진보 진영이나 여권 유력 주자가 기본소득을 언급할 때마다 포퓰리즘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왔다. 그런데 청와대가 오히려 “아직 이르다”고 한발 빼는 와중에 현금 살포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 문제를 비판하는 대신 기본소득 이슈를 먼저 화두에 올렸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상황을 겪고 있는 데다 중장기적으론 인공지능(AI)이 몰고 올 ‘직업의 종말’ 시대를 대비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당장 다음 대선에서 뒤집기 한판승이 절실한 통합당의 핵심 대선 전략이라고 봐야 하겠다. 지난 총선에서 돈의 위력을 확인한 만큼 이번 기본소득 논쟁이 미래를 위한 진지한 정책 경쟁이 아니라 ‘누가누가 더 주나’ 식의 여야 간 현금 퍼주기 경쟁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건 이런 이유다.

실제로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직 지급이 채 끝나지도 않은 재난지원금을 2차, 심지어 3차까지 지급하자는 주장을 하며 기본소득 성격의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기본소득을 연구하고 실험까지 했던 미국이나 유럽 일부 국가의 기본소득 논의는 여권 유력 주자들의 묻지마 현금 살포와는 거리가 멀다. 기존 복지제도의 비효율을 대체하는 수단으로서 각종 복지수당 대신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나 현금복지는 그대로 둔 채 재난지원금처럼 현금을 주는 방식을 상정한 것이라 우려스럽기만 하다.

다들 살기 어려운데 공짜 돈 싫어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재원 조달 방법이다. 이미 올해 재정적자는 112조원에 달한다. 씀씀이는 커졌는데 거꾸로 세수는 18조원이나 구멍이 나게 생겼다. 재정이 화수분도 아닌데 너나없이 돈 쓸 궁리만 하고 정작 곳간을 어떻게 채우겠다는 진지한 논의는 없으니 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워도 결국 기본소득 논의가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재정적자를 무한정 감수할 수는 없는 만큼 증세 없는 기본소득 도입은 불가능하다. 부자 증세가 됐든, 보편적 증세든 한국 사회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의제들인 만큼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과 함께 국민적 의견 수렴은 기본소득 논의의 필수 전제라는 점을 여든, 야든 명심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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