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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코로나19가 만든 나치 희생자 역사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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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폴란드 아우슈비츠 나치 강제수용소 해방 75주년을 맞은 1월 27일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들과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수용소에 모여 희생자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바르샤바=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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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예상치 못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봉쇄령으로 자택에 머물던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 기록을 색인화하는 프로젝트에 자발적으로 동참한 결과 방대한 양의 기록물 보존이 가능해진 것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코로나19로 집에 머물러야 했던 전 세계 수천명의 온라인 자원봉사자들이 ‘아롤센 아카이브(기록 보관소)’가 진행하는 나치 희생자 역사 기록 색인화 작업에 동참했다”고 보도했다. 독일에 위치한 아롤센 아카이브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나치ㆍ히틀러 자료 보관소로 꼽힌다. 유럽 각지에서 징집된 강제노역자 등 4,000만명의 정보를 비롯해 원본 문서만 3,000만건 이상이 보관돼 있다.

‘모든 이름은 중요하다’ 프로젝트로 명명된 온라인 색인화 작업은 특정 인물에 대한 기록 검색이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자료의 원본들은 1980년대 후반에 디지털화가 시작됐고 지난해에는 사진파일로 변환된 일부 문서가 온라인에 공개됐다. 하지만 종이가 얼룩졌거나 20세기 중반의 독일 필기체로 작성된 자료 등은 사진파일로 변환해도 사실상 검색이 불가능했다.

이에 아롤센 아카이브 측은 지난해부터 관련 기록을 색인화할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다. 하지만 올해 1월까지만 해도 독일 내 26개 고교에서 일부 학생들이 참여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하면서 각국에서 자택에 ‘감금’된 수천명의 시민들이 대거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힘겹게 진행되던 역사 기록물 보존 작업을 전염병이 도와준 셈이다.

재택 봉사자들은 수기로 쓴 수감자 목록을 보고 이름ㆍ생일ㆍ죄수번호 등을 정해진 양식에 입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12만명 이상의 희생자가 ‘역사적 기록’에 추가됐다. 독일의 의학물리학자인 안드레아스 베버는 “지난 몇 주간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1,200명의 이름을 입력했다”고 NYT에 전했다. 포르투갈의 임대업자 페르난도 구베아도 “당국의 대피령 이후 매일 몇 시간씩 입력 작업을 했다”며 “이 프로젝트는 적기에 진행된 것 같다”고 말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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