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7 (화)

“내 얘기 같아 편하게 몰입… 불어는 달달 외웠는데 프랑스 여자 분위기 난대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화 ‘프랑스여자’서 주연 맡은 김호정 / 연극 배우 꿈 품고 파리 갔지만 / 佛남성과 결혼한 통역사 ‘미라’役 / “시나리오 처음 읽었을 때 / ‘나처럼 연기하면 되겠다’ 생각 / 현지 여성 느낌 나도록 연구”

4일 개봉한 영화 ‘프랑스여자’는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과거의 기억이나 사건, 인물, 삶의 편린들이 마구 떠오르며 어떤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게 뭔지 말로 표현하긴 어렵다. 드라마 장르에 미스터리 스릴러를 결합한 듯하다. ‘프랑스여자’ 미라로 분한 배우 김호정(52)은 “지금 보기 좋은 영화”라고 말한다.

“한 번 봤을 땐 당황할 수 있어요. 배우들이 연극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거든. 그 의미를 따지면 집중 못 해요. 두 번 보면 아니까, 좀 편안하게 볼 수 있어. 세 번 보면 이야기가 딱 맞아떨어져요. 주변 환경이 편안하면 힘들어서 못 봐요. 코로나로 각자 재택근무하고 혼자 뭔가를,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잖아요. 그럴 때 딱 보기 좋은 영화예요.”

세계일보

영화 ‘프랑스여자’ 주연 김호정은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내 이야기인 것 같았다”며 “모든 대중이 아는 배우가 아니란 것, 자유스러운 게 좋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호정은 연극 배우의 꿈을 품고 파리로 떠났지만 통역사가 된 미라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듯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내 이야기인 것 같았다”며 “(연기를) 나같이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라는 경계인을 표상한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프랑스인과 한국인의 경계에 있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섞이며 그 특성이 두드러진다. 김호정은 “누구나 경계인 아니냐”고 반문했다.

“배우는 항상 경계에 사는 사람이에요. 연기를 하지만 (그 역할과는) 동떨어져 살죠. 그냥 (나를) 믿고 가는 게 늘 정답이야. 미라를 연기할 때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생과 사의 묘한 경계에서 내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건데 어떤 생각을 한다 해서 내 모습이 변하지 않잖아요.”

세계일보

‘프랑스여자’ 미라로 분한 김호정. 미라의 내면, 미묘한 감정 변화가 오롯이 느껴진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고혹적 이미지 때문인지 김희정 감독 말대로 프랑스 여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철저히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런 느낌이 있다고 하는데 감독님과 구체적으로 연구했어요. 감독님한테 침대 장면이 많은데 슬립을 입고 자야 프랑스 여자로 믿지 않겠냐, 제 속옷을 입겠다고 했죠. 그 하나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런 이미지를 줄 수 있는 거죠. 불어는 외운 거지(웃음).”

그는 관객들이 믿고 보는 배우인 동시에 감독들이 믿고 맡기는 배우다. 1999년 김수용 감독의 ‘침향’을 시작으로,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임권택 감독 ‘화장’ 등에 출연했다.

“‘호정씨가 그냥 하면 돼’란 말을 옛날부터 많이 들었어요. 믿음을 주시는 거죠. 제가 오히려 들볶으며 확인하는 거지. 연극을 오래 한 습성 때문에 비극을 좋아해요. 뭔가 연기할 때 재밌어. 그래서 비극적인 작품을 했는데 그게 부각되다 보니 그런 작품만 들어와 한동안 (활동을) 안 했죠. 모든 대중이 아는 배우가 아니란 것, 아직까지 자유스러운 게 좋아요. 사생활이 자유롭고 갇혀 있는 삶을 살지 않기에 인물을 표현할 때 장점이 되는 것 같아요.”

영화 속 ‘배우가 나이를 먹어야만 그 역할을 잘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선 “꼭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젊었을 땐 에너지를 열정적으로 쏟아 내죠. 예술가들 다 그렇잖아요. 나이 들면 (에너지가) 사라져요. 연륜으로 가는 거지. 그땐 정신 차려야 되는 거야. 남들이 치켜세우는데 난 불안한 거죠. 전 자신 있게 연기한 건 30대 중반까지였고, 그 다음부턴 모든 게 불안정했던 것 같아요. 잘될 거라 생각했는데 망하는 경우도 많았고, 이 모든 게 실력인 줄 알았는데 운이었나 혼란스러웠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콜롬비아에서 영화 ‘보고타’를 찍다 급거 귀국하고 자가 격리를 했다는 그는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아 보였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요즘은 맨날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겁이 많아졌나.”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