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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제2의 고향 정읍 이야기 알리려고 1인 출판사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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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샘바다출판사 최은희 대표

한겨레

최은희 샘바다출판사 대표. 최은희 대표 제공


“책을 펴낼 출판사가 있었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내려고 해도 지역에 출판사가 없어 다른 지역으로 오가는 고생을 하니까 자존심이 상했어요. 마치 동네에 우물이 없어서 먼 동네로 눈치보며 힘겹게 물동이를 이고 다니는 기분이었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지난달 30일 자신의 1인 출판사에서 낸 첫 책의 출판기념회를 연 최은희(52) 샘바다출판사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재작년 10월에 출판사를 차리고 올해 초 이름을 샘바다로 바꿨다.



‘정읍 남자’ 만나 25년째 정읍살이

재작년 인구 10만 도시에 첫 출판사

“지역 출판사 없어 자존심 상했죠”

최근 첫 책 ‘각시다리 연가’ 출간

이갑상 작가 ‘고장 이야기’ 시집


“동학지도자 김개남 소설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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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바다 출판사의 첫 책인 시집 <각시다리 연가> 표지.


최 대표는 올해로 25년차 정읍 주민이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그는 1995년 서울에서 정읍 출신 남편과 결혼해 이듬해 남편 고향으로 이주했다. 그가 사는 인구 10만9천여명의 정읍시는 전북지역 14개 시·군 중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으나, 출판사가 단 한 곳도 없다고 한다. 정읍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무성서원(사적 제166호)과 조선시대 태인방각본이 있던 곳이다. 방각본은 민간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간행했던 책을 말한다.

출판사 이름인 ‘샘바다’는 고대가요 ‘정읍사’를 부른 백제여인이 살던 동네이름이다. 한자로는 정해(井海)다. 작지만 아름답고 가치있는 책을 결코 망하지 않고 꾸준히 펴내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생명체를 살리는 물처럼 샘바다출판사도 사람·동물·식물·문화를 살리고, 정읍의 이야기를 전국과 세계로 전달하고 싶다는 것이다.

“상업성이 우선인 수도권 대형출판사에서는 지역의 무늬를 담은 소박한 책을 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동네문화가 소외되고 위축되면서 주체적인 문화창조와 향유가 힘들어요. 샘바다출판사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자치기구에 해당하는 집강소의 정읍출판소와 같다고 할까요. 정읍사람이 주인공인 정읍이야기를 지향하고, 우리 이야기가 바다로 간 샘물처럼 널리 읽히기를 바랍니다.”

출판사의 첫 책 <각시다리 연가>는 시인 이갑상(61)의 작품이다. 시인이 지역인터넷매체 <정읍통문>에 연재한 100여편의 시중에서 60편을 추려 시집으로 만들었다. 이 시집을 첫 책으로 선택한 것은, 사라져가는 정읍의 이야기를 많이 담아 정감있게 잘 표현했다고 확신해서다. “시민들이 책을 읽고 시집 속 이야기를 제대로 알았으면 해요. 이야기들이 역사 속 화석에서 벗어나 시민 곁에 복원돼야죠. 특히 정읍의 과거와 현재를 가지런히 책으로 만들어 청소년에게 읽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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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전북 정읍에서 <각시다리 연가> 출판회 및 시낭송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최은희 샘바다출판사 대표, 저자 이갑상 시인, 사회를 본 이진우 인터넷매체 <정읍통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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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맞은편에 위치해 지금은 공원이 된 ‘각시다리’는 “결혼하면서 이 다리를 먼저 잘 건너야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전설이 있단다. 이 시인이 ‘각시다리’ 시로 지역의 모습을 잘 되살린 뒤 사람들을 통해 회자되면서, 각시다리를 다룬 연극 및 음악제도 생겼다고 최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각시다리와 반달방죽, 도둑방천, 홀애비점방 등 시집 속의 옛 장소를 그림으로 표시하는 지도를 만들고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달 20일 ‘시를 찾아 걷는 골목길탐방’ 행사가 열린다.

최 대표는 “지역 이야기를 까맣게 모르는 젊은이들이 이 시집을 읽으며 우리가 사는 동네에 관심을 가진다면 기쁠 것”이라면서 시집이 어른에게도 향수를 일깨워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동학농민혁명 3대 지도자 중의 한명인 김개남의 삶을 소설로 쓰기 위해 몇 년째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 책도 샘바다출판사에서 펴낼 것입니다. 또 살아있는 역사의 주인공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한국전쟁, 산업화 등 소용돌이 치는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이 지역 인물의 이야기도 더 늦기 전에 발굴해 기록하고 싶습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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