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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기고] 왜곡된 가야사와 지역 정책 / 박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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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가야를 대표하는 무덤 떼인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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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가야사 연구는 임나일본부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며, 3~4세기에는 금관가야와 아라가야, 5~6세기에는 대가야가 중심국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적 기반에 따라 왜곡된 역사 해석이 행해진다는 데 있다. 먼저 금관가야 중심론을 살펴보면 3~4세기만이 가야의 전성기이며, 5세기 이후 가야는 오히려 쇠퇴한 것으로 주장한다. 이런 인식은 금관가야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지역 정치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신화에 불과한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후(허왕후)의 이주 전승을 역사로 인식하고, 2018년 대통령 부인이 인도에서 열린 허왕후 기념 공원 착공식에 참석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규모 가야전에는 허왕후가 가져왔다는 전승이 있는 파사 석탑이 입구 메인홀에 진열되기도 했다. 2000년 전 인도 공주가 건너와 금관가야의 왕비가 되었다는 전승은 신화로서 매력적이지만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없다.

최근 호남 동부 가야유적이 활발하게 조명되고 있다. 전북 지역의 고분, 산성, 봉수, 제철유적 등에 주목해 ‘전북가야론’이 대두되었다. 전북가야론은 기존 대가야 권역으로 봤던 이 지역을 백제와 대가야 사이의 독자적 가야세력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봉수, 제철유적의 연대가 불확실하고, 이 지역 세력을 대가야의 하위 집단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2023년 경남 김해시에 국립가야역사문화센터가 개관한다. 김해시에는 이미 가야 유적 유물을 전시하는 국립김해박물관이 있고, 인접한 창원시에는 가야유적 발굴과 연구를 중심으로 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있다. 경남에만 가야 전문 국립연구기관이 3곳이나 된다.

반면 대가야 본거지 경북 고령군에는 초라한 군립박물관이 하나 있을 뿐이다. 대가야가 영호남에 걸친 권역을 확보하고 고대국가로 발전하며 5세기 후반 일본열도 문명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를 고려하면 지역균형발전에 어긋나는 처사다. 기존 학계에서 대가야 권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전북 지역에서도 가야유적 발굴과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2019년 설립됐음을 고려하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국립완주연구소가 설립된 배경은 최근 송하진 전북지사의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전북가야에는 봉수와 제철유적이 있으며, 철을 매개로 중국, 일본까지 이어주는 동북아의 교량이자 국제무역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즉 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지역 발전정책이 정부의 지지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국립가야역사문화센터는 유적의 중요성과 지역균형 정책 맥락에서 대가야 본거지인 고령에 설립되었어야 했다. 고령에는 가야권에서 유적의 보존 상태가 가장 좋고 일제강점기 도굴꾼인 오구라가 반출한 금관 등의 중요 유물이 출토된 지산동 고분군이 있으며, 이외 다수의 고분군과 특히 가야시대부터 채광되어온 금광산이 잘 남아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가야사 복원을 국정과제로 제시하면서 영호남 벽을 허물 수 있는 사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시행 중인 가야 재조명 사업에서 화합과 균형이란 취지가 무색하게 지역 간 경쟁과 불균형이 노정되고 있다. 가야사 정책은 올바른 연구 성과에 의거해야 한다. 지난달 20일 가야를 포함하는 역사문화권 정비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역사 아닌 신화와 일부 지역 학자의 논리에 따른 정책은 앞 정권의 실패를 되풀이할 뿐이다. 1500년 전 가야사를 통해 영호남이 화합과 균형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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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수 ㅣ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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