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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알베르 카뮈 `페스트 La Peste` 선의의 연대로 재앙에 반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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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데자뷔 같은 소설이 있다. 알베르 카뮈의 작품 『페스트』다. 소설은 지금까지 인류가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로 기억하는 질병 ‘페스트’를 소환해 알제리의 오랑시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일어난 페스트와 그에 대처하는 시민의 모습을 그려 냈다. 비극의 소용돌이에서 인간은 파도처럼 다가오는 운명 앞에 어떤 모습과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설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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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인류의 민낯을 드러내다

지난 5월6일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스티븐 킹은 CBS 토크쇼와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독자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1978년에 쓴 소설 『스탠드』에서 묘사한 전염병 대유행 예측이 지금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다. 소설 『스탠드』는 미국 네바다주의 생화학전 연구소에서 슈퍼 독감 바이러스가 유출되면서 인류가 종말 위기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터뷰에서 스티븐 킹은 “이미 40여 년 전에 쓴 소설이지만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이 ‘스티븐 킹의 이야기 속에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나의 두려움은 우리가 정상 생활로 복귀한 뒤 코로나19가 변종을 일으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약해져서 돌아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치명적인 변이를 일으키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걱정이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인류의 종말을 담은 소설은 비단 스티븐 킹의 작품만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작가가 그들의 작품에서 바이러스 등 각종 질병, 환경 문제, 핵전쟁, 기후 변화, 외계인, 행성 충돌, 빙하기 등등을 소재로 인류의 종말을 그렸다. 또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와 같은 각종 예언서 혹은 구약 성서 등 종교 경전의 비밀스런 해석 등에서 ‘인류 종말론’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는 시기와 상황, 즉 밀레니얼 같은 세기의 변환 등에 따른 일시적인 관심 집중이거나 국한된 지역적 종말론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역사적으로 당시의 인구 절반을 전멸시킨 대유행 병의 기록은 분명히 남아 있지만 현대에 와서 바이러스와 세균에 의한 인류 종말을 염려하는 경우는 일부 의료 전문가와 생화학 전문가, 비관적인 미래학자들에 그치기도 했다. 의학과 과학의 눈부신 발전, 그동안 인류를 위협했던 각종 질병에 대항하는 치료제와 백신 개발, 전염병에 대처하는 의료 시스템 구축, 상하수도 정비와 철저한 개인 위생 관리 등 질병에 대해 ‘안심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 즉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과 팬데믹 선언으로 인류는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공포에 휩싸였다. 비단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꺾이지 않는 극성 때문만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대한 기대감 저하, 그동안 전 세계 국가들이 보여 준 글로벌 연대의 붕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 국가 이기주의, 인종 차별과 혐오로 인한 폭력성 증대, 코로나19 대유행·잠복·2차 대유행 패턴 예측 등에 기인한다. 게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가공할 전염력으로 국경이 봉쇄되고 사람 간 교류를 축소한 데 따른 경제 활동 중단, 그로 인해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현실적인 고통이 너무나도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멸종 혹은 종식되지 않을 거라는 결론에 조금씩 다가서면서 예측 불허의 인류 미래에 관한 진지하고도 심각한 고민으로 연결되고 있다. 고민은 대처를, 대처는 새로운 뉴 노멀(New Normal)을 만들어 간다. 그 과정에서 국가별, 인종별, 빈부 차이별 등 각자의 처지에 따른 행동 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즉, 코로나19 확산은 지구상 모든 국가와 인류의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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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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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73년 전 과거와의 데자뷔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자. 나를 포함한 우리는 과연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 감염을 각오하고 당장의 삶을 위해 마스크 한 장에 의지한 채 만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생활 전선으로 가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실업으로 인해 의료 보험 혜택을 상실한 채 해열제를 먹으며 집에서 버티는 실직자들, 이와는 다르게 격리된 생활을 위해 수십 억 원짜리 섬을 사고 호화 도피성 격리를 하는 부자들, 자가용 비행기로 수백 km를 날아가 사람이 없는 외딴곳의 호화 별장과 펜트하우스에서 생활하는 돈이 넘쳐나는 자들. 확진 환자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몰려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병원으로 달려가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성전에서 신께 인류의 구원을 기도하는 성직자와 교인들, 그동안 선진국이라 우리가 인정했던 미국, 호주, 유럽의 백인들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는 모습들. 도시 봉쇄로 생계를 상실하고 수천 km를 그저 걸어서 고향으로 가야 하는 인도의 하층민들, 정부와 집단이 정한 사회적 격리를 충실히 수행하는 대부분의 시민들, 이와는 별도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혀 두렵지 않다며 ‘청춘의 권리’를 매일 즐기는 패기의 젊은이들. 그리고 ‘위기에서, 난세에서 영웅과 큰 부자가 탄생한다’는 말을 실천에 옮기는 머리 좋은 예비 부자들이 있는가하면, 마스크 수십만 장을 사재기하고 이를 몇 십 배로 비싸게 팔아 치우는, 양심은 없지만 발 빠른 장사꾼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동안 매우 도덕적이고, 규범적이며, 또한 배려심 많은 이웃이라 여긴 사람들의 실체를 보게 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지금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데자뷔를 경험한다. 바로 20세기 한 소설가가 풀어낸 소설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알베르 카뮈와 그의 소설 『페스트』다. 부조리와 반항의 작가로 『이방인』, 『시지프 신화』, 『최초의 인간』 등을 펴낸 카뮈는 1947년 『페스트』를 발표했다. 『페스트』는 출간되자마자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 걸작’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그해 비평가 상을 받았다. 물론 초판은 즉시 매진되었다. 카뮈가 1938년부터 7년을 구상해 발표한 이 소설은 출간 당시의 2차 세계 대전, 즉 전쟁이라는 비극에서 출발한다. 카뮈는 혐오스럽고 폭력적인 전쟁의 실체에 대해 고민했고 그 전쟁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고 보았다. 즉, 인간은 비극의 소용돌이 속, 이 파도처럼 다가오는 운명 앞에서 어떠한 모습과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페스트』의 배경인 오랑시와 시민들을 통해 설파한 것이다. 카뮈는 인간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은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엄청난 전쟁과 재앙 앞에서의 무기력한 굴복, 종교로의 도피, 현실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선의’를 갖고 ‘연대’를 통해 ‘반항’하는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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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페스트』는 공교롭게도 지금의 코로나19와 닮았다. 소설은 지금까지 인류가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로 기억하는 질병 페스트를 소환해 알제리의 오랑시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일어난 페스트와 그에 대처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 냈다. 그중 몇 가지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쥐떼가 알린 비극적 참상의 시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너무나도 평범한 도시 알제리의 오랑. 4월16일이다. 오랑시의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퇴근하는 길에 병원 계단에서 죽어 있는 쥐를 발견한다. 그 쥐는 이상하게도 온몸이 까만색으로 변해 있었다. 병원 수위가 리유를 보고 한마디한다. “선생님, 요즘에는 이상하게도 병원에 쥐가 없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리유는 퇴근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다.

집 계단, 리유는 걸음을 멈춘다. 계단에서 뭔가 시꺼먼 그림자들이 다가온다. 쥐다. 그런데 쥐들은 모두 시뻘건 피를 토하면서 쓰러진다. 마치 입에 빨간 꽃을 문 것처럼 말이다. 리유는 처음 보는 광경에 깜짝 놀란다. 특히 쥐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 병원으로 간 리유는 수위와 마주친다. 수위는 피투성이 쥐 세 마리를 잡아 들고 리유에게 말한다. “선생님, 제가 쥐 세 마리를 덫으로 잡았어요. 그런데 어떤 놈들이 장난을 치려고 한 것 같아요.” 리유는 미심쩍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리유는 오랑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변두리로 간다. 좁고 더러운 골목. 쓰레기가 곳곳에 쌓여 있다. 그곳은 온통 시꺼먼 쥐들이 빨간 피를 입에 묻힌 채 죽어 있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무더기다. 리유는 불길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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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리유는 아내를 배웅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간다. 몸이 아픈 아내는 오랑시를 떠나 다른 도시의 요양소를 찾아가는 참이다. “제발, 몸조심해요.” “그래요. 건강하게 우리 다시 만나요.” 두 사람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기차역에서 나오던 리유는 죽은 쥐가 가득 들어 있는 상자를 끼고 나오는 역부와 마주친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시는 쥐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리유뿐 아니라 오랑시의 사람들은 막연한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요 며칠 동안 제자리를 맴돌다 주둥이에 선혈이 가득한 채 죽은 쥐가 무려 1만 마리가 될 정도로 오랑시는 쥐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시청으로 달려가 대책을 요구하지만 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은 속수무책이다. 그들 역시 그저 지켜볼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날 쥐들이 사라졌다. 오랑시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리유는 이 조용함이 더 불안했다. 리유에게 수위 미셸과 그 부인이 찾아왔다. 미셸은 이미 병에 걸려 있었다. 그는 목이 붓고, 멍울이 생겼다. 미셸은 고통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단발마의 한마디를 외쳤다. “쥐들….” 마비와 정신 착란, 반점, 통증이 미셸을 괴롭혔다. 미셸의 아내가 리유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제 가망이 없는 건가요?” “예, 불행하게도. 미셸은 죽었어요.”

그것은 시작이었다. 오랑시 사람들이 희생당하기 시작했다. 집단 발병이 시작된 것이다. 시는 온통 혼란에 휩싸였다. 의사들은 모여 회의를 거듭했다. 시장과 공무원들 역시 매일 회의를 했다. 그들은 차마 표현은 안 했지만 한 가지 병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페스트’다. 중세 유럽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지금까지 무려 1억 명 이상이 죽임을 당했던 그 무서운 병 말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보건 당국자는 그러나 이 사실을 발표하지 못한다. 시청 공무원 역시 ‘나는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결정과 책임에서 도망가기 바빴다. 그 사이 사람들은 더욱 빠르게 죽어 갔다. 이윽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한 정부에서 공문이 왔다.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봉쇄하라’는. 이제부터 식량은 배급제로 실시하고 전기와 물 역시 제한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시 안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그 누구도 오랑시 출입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사람과의 이별이었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들이 생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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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우리 모두와 관련 있어요”

리유에게 기자 랑베르가 찾아왔다. 그는 리유에게 부탁했다. “저는 원래 오랑시 사람이 아닙니다. 취재차 온 것뿐입니다. 이 도시와는 상관없어요. 진단서를 써 주세요. 저는 오랑시를 떠나야 합니다.” 리유는 거부한다. “예외는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건강 상태 역시 확신할 수 없습니다.” 랑베르는 화를 냈다. “나는 파리로 가야 해요. 파리에는 내 연인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 사정은 전혀 고려치 않는군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별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것 같군요.”

오랑시에 페스트가 번진 지 3주 차. 페스트에 감염된 사람은 더 늘어나고 오랑시는 점차 폐허가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이 고통과 공포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누군가는 병균을 소독하겠다고 알코올을 마셨고, 또 누구는 술을 마시고 취한 채 이 공포를 잠시 잊었다. 그리고 교회를 찾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다. 파늘루 신부는 이 사람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했다. “당신 모두 죄인들이다. 페스트는 신이 내린 형벌이다. 이럴 때일수록 회개하고 구원받아라.” 파늘루 신부는 참상과 비명에도 사랑의 말씀만을 외쳤다. 그 나머지 일은 신이 하시리라는 것이다.

타루는 리유에게 민간 보건대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타루는 “페스트를 용인하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하는 비겁한 일이다.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힌다. 여전히 오랑시를 탈출할 방법만 찾는 랑베르는 리유와 타루를 만난다. 랑베르는 여전히 오랑시에서 벌어지는 비극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보기에 민간 보건대를 만들겠다는 것은 영웅심에 불타는 행동인 것 같네요. 나는 관심 없어요. 나의 관심은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리유는 불쾌한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이 무서운 페스트와 싸우는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각자 자신이 맡은 직분에 최선에 다하는 것이지요.”

페스트가 창궐할수록 도시는 미쳐 갔다. 페스트 균을 죽인다는 구실로 방화도 일어나고 폭력과 절도가 횡행했다. 시청에서 죄를 묻겠다고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사형은 두렵지 않다’고 외쳤다. 어차피 페스트로 죽나, 사형 당해 죽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자 시청에서는 ‘감옥에 수십 명을 한곳에 가두겠다’고 선언했다. 그제서야 도시는 겨우 통제되기 시작했다. 또 이런 상황에서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물건을 사재기하고 페스트에 유용하다고 선전해 엉뚱한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인간의 본성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 활성은 멈추지 않았다.

랑베르가 오랑시를 탈출하기 전 작별 인사를 하겠다고 리유를 찾아왔다. 리유는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리고 랑베르의 건강과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러자 랑베르는 “나는 떠나지 않겠어요. 여러분과 함께 있겠어요. 나는 이 도시와는 무관하고 여러분과도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나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와 관련된 거였어요. 저는 떠나지 않아요”라며 진심을 털어놓았다. 리유는 랑베르의 손을 꼭 잡았다.

어느덧 10월이 되었다. 리유의 동료 의사 카스텔은 페스트를 잡기 위한 방법으로 혈청 주사를 만든다. 그는 그것을 페스트에 걸린 오토 판사의 어린 아들에게 주사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리유는 어린 아이에게 벌어지는 무서운 광경을 똑바로 지켜보았다.

어린애는 몸을 바싹 오그렸고 전신을 태워 버릴 듯한 불꽃의 공포에 질려 침대 밑바닥으로 파고들었다. 그 옆에서 신부님은 “구해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어린애는 소리를 질렀고 급기야는 숨이 멎어 버렸다. 더 작아진 듯한 몸을 웅크리고 얼굴에는 눈물자국을 남긴 채로 누워 있었다. 죽은 것이다. 모두들 충격에 말을 잊었다. 리유가 파늘루 신부에게 묻는다. “페스트는 죄지은 사람에게 내린 벌이라면서요. 이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지요?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서도 거부하겠습니다.” 파눌루 신부는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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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묘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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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다시 깨우다

벌써 겨울이 되었다. 멈출 줄 모르고 지옥의 불꽃처럼 타오르던 페스트.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4명의 환자가 치유된 것이다. 신기하게도 오랑시에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쥐가 돌아왔다. 페스트가 사라지고 있었다. 오랑시의 하늘이 마치 처음 생긴 하늘처럼 푸르게 보였다. 페스트는 그 깨끗해진 대기 속에서 3주 동안 계속적인 하강 상태에 있었다. 페스트는 힘을 잃어 가는 듯했다. 모두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했다. 그때 타루가 기침을 한다. 하필이면. 타루가 페스트에 걸린 것이다. 타루는 치열하게 민간 보건대에서 페스트와 싸웠다. 타루는 리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 저는 어릴 적에 부족할 것 없는 검사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존경했어요. 제가 열일곱 살 때 아버지가 저를 재판장에 초대하셨어요. 신이 나서 갔어요. 그런데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피고를 유심히 지켜보았어요. 그는 오른손 손톱을 깨물고 강한 햇빛에 겁먹은 올빼미 같은 모습으로 파르르 떨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그가 비록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피고이긴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인간임을 느끼며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어요. 법과 제도라는 옷을 걸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사회와 이를 통해 권위와 부를 누리는 아버지에. 아버지가 불쌍해 보이는 피고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모습을 보고… 제 눈에 아버지는 검사가 아닌 살인자였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그리고 집을 나왔어요. 방황하다 오랑시에 정착해 페스트를 만난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사형을 구형할 때 그것을 막지 못했지만 이 페스트의 사형 선고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어요.”(-329쪽)

결국 타루는 고통을 견디다가 하느님 곁으로 갔다. 타루가 죽고 얼마 뒤 리유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리유는 오랑시에서 터져 나오는 환희의 외침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 또 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01~402쪽)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표출된다. 오랑시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나는 파리 사람이라 상관없다’는 기자 랑베르. 그는 오로지 이 도시를 탈출하기 위한 방법만을 찾는다. 물론 그 역시 리유와 타루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받아 결국 페스트와 싸우는 데 나선다. 또 한 사람은 파늘루 신부다. 그는 페스트가 ‘신의 징벌’이라고 외친다. 그리고 이 재앙을 통해 신이, 신앙이 우리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달리 페스트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그야말로 닥친 운명에 ‘반항’하는 이는 리유와 타루다. 소설 속에서 타루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329쪽)

『페스트』는 카뮈가 알제리의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1938년부터 구상을 시작해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필한 작품이다. 실제로 소설의 무대인 오랑시에 카뮈가 지내고 있을 때 티푸스가 유행했던 사실과 카뮈가 지병인 폐결핵을 앓으며 요양 중인 아내와 헤어진 경험 등이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사라진 병이라 여겼던 페스트가 오랑시를 덮치면서 10개월 동안 도시 사람들이 겪는 사투를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그린 이 작품은 절망적인 운명에 반항하며 공동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여 주고 있다. 폐쇄된 도시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되어 다른 사람에게 페스트를 전염시킬 수도 있는 상황은 모든 이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다양한 보편적 폭력의 상황을 상징한다. 이 과정에서 연대의식 속에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것만이 부조리를 타개하고 희망을 불러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즉, 아무리 힘들고 어두운 재앙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각자의 직분에서 묵묵히 걸어갈 때 인간은 극복과 새로운 세상의 행복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 정우영(프리랜서) 사진 위키피디아, 픽사베이 인용, 발췌 및 참고 『페스트』(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32호 (20.06.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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