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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Citylife 제732호 (20.06.09)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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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결함 있는 주인공에 매혹된다 『이야기의 탄생』

시티라이프

윌 스토 지음 / 문희경 그림 / 흐름출판 펴냄


신화 연구자들은 고전의 핵심적인 플롯은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조지프 캠벨의 ‘단일신화’ 구조는 ‘스타워즈’ 등의 모티브가 되어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 플롯을 마법의 공식처럼 떠받든 탓에 요즘 이야기는 가볍고 단조로워지기까지 했다. 저자는 플롯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인물에게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플롯이 존재하는 이유도 결국 인물을 위해서다. 도덕적 분노, 예기치 못한 변화, 지위 게임, 특수성, 호기심 같은 뇌를 사로잡는 기제를 인물에 투영한 이야기야말로 독창적 이야기다. 풍성하고 진실한 인물을 창조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인물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알아봐야 한다. 한마디로 작가는 ‘과학’에 기대야 한다.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변화의 순간에서 시작된다. 신경과학자 소피 스콧은 “거의 모든 지각은 변화를 감지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신경 활동에서 삶의 경험이 나온다. 사랑하고 미워한 것, 내밀한 비밀, 꿈, 고통, 행복 등 모든 것이 뇌의 가장자리를 돌면서 흐르는 방대한 정보에서 창조된 산물이다. 1.2㎏의 회분홍색 뇌는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을 경계한다. 예상 밖의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고로, 이야기는 ‘반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즉적 전환점이 극에서 가장 강력한 순간이라 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완벽한 전환점을 주는 도입부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다. 모르겠다.” 소설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이렇게 열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좋은 이야기는 인간 조건을 탐구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조상보다 뼈가 가늘고 약해졌다. 신체 능력이 우수한 공격적인 사람은 공동체에서 오히려 골칫거리가 됐다. 남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더 잘 살았다. 공격능력 대신 협상과 거래에 필요한 심리 조작에 능숙해졌다. 따라서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야말로 이야기의 실패하지 않는 소재다. 현대인에게 세계를 통제한다는 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이해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인물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건 그가 성공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가진 결함 때문이다.

결함 있는 주인공을 보면 우리는 공감하고 약점에 흥미를 느끼며, 그가 벌이는 싸움에 감정적으로 몰입한다. 결함을 인지하고 변화하는 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일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싸움에 뛰어든 사람을 영웅이라 부른다. 인간처럼 고도로 사회화된 존재에게는 타인의 행동의 이유를 아는 것만큼 매력적인 경험이 드물다. 거대한 성공을 거둔 이야기인 『위대한 개츠비』도 『폭풍의 언덕』도 그렇다. 나라면 저런 행동을 할까? 이것이야말로 좋은 이야기를 이끄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저자는 “이야기는 어두운 두개골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한다”라고 썼다.

▶20세기를 흔든 천재들이 산책에서 나눈 대화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시티라이프

짐 홀트 지음 / 노태복 옮김 / 소소의책 펴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자 부스스한 머리카락으로 멀리서도 한눈에 띄는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에 온 지 10년이 지나자 함께 걷는 일행이 생겼다. 27세나 젊은 쿠르트 괴델이었다. 평소에 붙임성이 좋고 웃기 좋아한 아인슈타인과 달리 괴델은 늘 침울하고 고독하고 비관적이었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은 출근길과 퇴근길 늘 함께 걸으며 지적인 교감을 나눴다. 괴델과 아인슈타인 둘 다 이 세계는 우리 개개인의 인식과 무관하게 합리적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결국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물질 세계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 개념을 뒤집은 사람이라면, 괴델은 수학이라는 추상적 세계에 혁명을 일으켰고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라고도 불린다.

과학 작가이자 철학자인 짐 홀트가 쓴 과학과 수학, 그리고 철학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쟁점과 주제를 다룬 책이다. 특유의 명쾌함과 유머를 발휘하면서 저자는 양자역학의 불가사의, 수학의 토대에 관한 질문, 그리고 논리와 진리의 본질을 파헤친다. 또한 수학자 에미 뇌터부터 컴퓨터의 선구자 앨런 튜링, 그리고 프랙털의 발견자 브누아 망델브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상가뿐만 아니라 학계 또는 대중에게 홀대받은 사상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도 놓치지 않는다.

[글 김슬기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32호 (20.06.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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