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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N리뷰] 무뎌질 수 없어 외로운 이방인, '프랑스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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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프랑스 여자' 스틸 컷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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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주인공 미라(김호정 분)는 '프랑스 여자'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젊은 시절 프랑스에 유학을 가 프랑스 남자와 결혼했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서울에서 미라는 20년 전 공연예술아카데미를 함께 다니며 만났던 친구들과 회포를 푼다. 꽤 잘나가는 영화감독이 된 영은(김지영 분), 연극 연출가로 자리를 잡은 후배 성우(김영민 분)와 나누는 대화 속에는 어느새 2년전 생을 마감한 또 다른 친구 해란(류아벨 분)의 이름이 등장한다.

해란은 과거 미라, 영은, 성우와 함께 연극을 공부해던 연극학도였고, 성우의 여자친구였다. 하지만 성우는 유학을 앞둔 미라의 환송회에서 미라에게 키스로 마음을 고백했다. 미라와 친구들은 '해란의 자해가 미라의 환송회날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때부터일까. 미라는 해란의 꿈을 꾼다. 해란은 홀로 잠을 자는 미라의 환상 속에서 계속해 등장한다. 쳐다만 보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하고 훗날 배우로 데뷔한 그녀가 연기해 훌륭한 평을 얻었다는 연극 '하녀들'의 대사를 읊기도 한다. 성우는 술자리에 해란과 비슷하게 생긴 후배 배우를 데려와 미라와 영은을 심란하게 만든다.

해란을 향해 갖고 있는 미라의 죄책감은 그가 보는 환상을 통해 드러난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차분해 보이는 미라의 감정은 복잡하게 전개된다. 영화는 프랑스와 서울,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미라가 겪었던 일들을 환상과 꿈으로 연결하며 미라의 내면 풍경을 보여준다. 배우를 꿈꿨던 젊은 날, 프랑스인 남편 쥘과 보냈던 행복한 시절, 그리고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고통을 품었던 순간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렇게 고통에 잠겨있는 순간마다 해란이 나타나 미라를 깨운다.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보려는 영은에게 미라는 "오지랖 넓게 남의 사정 다 알려고 하지마"라고 쏘아붙인다. 영은은 "언니가 가끔 낯설 때가 있다. 언니는 언니 감정이 어떤지 나누려고 하지 않는 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섭섭해 한다.

오랫동안 모국을 떠나 살아왔던 미라는 어쩔 수 없는 '프랑스 여자'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도 그는 완벽한 '프랑스 여자'는 아니었다.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했고, 언어 능력과는 별개로 유일하게 사랑하고 의지했던 쥘과의 소통 역시 어려웠다. 이도저도 아닌 경계인의 위치에서 미라는 '사람은 자기 선을 잘 그리며 살아야 한다'고 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묻는다. '나는 내 선을 잘 그리고 있을까?'

인간이 본질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질감에서 온다. 보통은 내가 속해 있는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다름의 한계를 느끼고,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외로움과 고독을 느낀다. 그럼에도 인생이 외롭기만 한 것이 아닐 수 있는 이유는 이질감을 느끼는 때가 있는 만큼 유대감을 느끼는 때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 속에 있을수록 그 속에서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낄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인생이 외로운 것이라 한탄하며 술잔을 기울이더라도, 마주앉아 늘 먹던 술을 마시며 공기처럼 내뱉고 듣는 모국어를 함께 쏟아낼 사람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방인의 경우 사정은 좀 다르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문화권을 떠나, 낯선 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동질감보다는 이질감에 더 많이 노출된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무뎌지는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늘 남과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될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갖고 있는 고유의 문제들에 몰입하고 고독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프랑스 여자'는 한 예민한 여성의 내면을 통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느끼는 삶의 고독을 그려낸다. 영화를 보는 이들이 미라의 감정에 동조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이방인, 경계인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오가는 연출 방식이 판타지 장르 같은 느낌을 주며 영화적 재미를 높인다. 유럽 체류 당시 관찰했던 유럽인들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프랑스 여자'의 캐릭터를 소화한 김호정의 연기는 마치 프랑스 배우를 떠올리게 한다. 외모 뿐 아니라 말의 속도, 동작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들이 흥미롭다. 4일 개봉.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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