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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심의효력 강제성 없지만… 검찰, 다른 결론 땐 부담 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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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 / 임원 30여명 100여차례 檢 소환 / 검찰 수사의 적정성에 이의 제기 / 기소 결정 등 수사 지연 불가피 / 과잉·표적수사 여론조성 효과도 / 합병·승계 등 총체적 논의 전망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의혹에 대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 소집을 요청한 것을 두고 ‘회심의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일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를 마친 후 지난달 30일 새벽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주 이 부회장을 두 차례 소환조사한 검찰은 이번 주 내로 구속 및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이날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한 것은 벼랑 끝에 몰린 이 부회장으로서는 시간을 벌어보려는 의도가 있다. 또 기업 총수가 이례적으로 검찰 수사 자체에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과잉수사 혹은 표적수사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심의위 자체가 열릴 수 있을지, 열린다고 해도 기소 결정을 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변호인들은 전날 심의위 소집 신청서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팀은 심의위의 개최 및 결정이 이뤄질 때까지 사건을 처분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심의위 오르려면 1차 관문 시민 판단 거쳐야

심의위는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인 2018년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주요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고,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지난 2년간 총 8차례 소집됐다.

대검찰청 산하 심의위에 사건을 올리기 위해서는 서울고검 산하에 부의심의위원회를 열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서울 5개 지검 200여명의 시민 위원 중 명단을 추첨하고 조율해야 한다. 여기까지만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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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사옥에 사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재문 기자


‘삼성 합병·승계 의혹’ 사건이 국민적 의혹을 사고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란 점에선 심의위 제도의 도입 취지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 심의위가 실제로 가동된 사례는 극히 적고, 피고인 측 요청으로 심의위가 소집된 경우는 더 드물다. 만약 이 부회장 측이 부의심의위의 ‘좁은문’을 통과한다면 심의위가 열리게 된다.

심의위는 사회 각층의 추천을 받아 250명의 위원 인력 풀을 구성한 상태다. 이 중 이 부회장 사건 관련 심의기일 출석이 가능한 15명으로 현안위원회를 구성해 이 부회장 사건에 대한 심의를 맡게 된다. 심의 효력에는 강제성이 없어 심의위가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검찰 수사팀이 이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시민의 판단을 구한 만큼 심의 결과와 검찰의 결론이 다를 경우 여론 부담을 맞닥뜨려야 한다. 한 검찰 간부는 “심의위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절차를 통해 시민의 눈높이에서 사건과 검찰 수사에 대해 판단을 받았다는 명분이 있는 만큼 심의위 결과를 많이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의위 기소 판단 여부는 미지수

심의위에서는 지금까지 제기된 검찰 수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총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의 회계 의혹과 합병 그리고 승계를 둘러싼 검찰의 수사는 2018년 말 시작돼 2020년 6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성 합병과 관련해 2016년 12월 특검 수사가 시작된 이후로 치면 4년 반 동안이나 같은 건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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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과잉수사’ 논란이 제기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사안을 두고 검찰이 무리하게 ‘범죄’라고 예단하고 수사에 착수했다는 비판이다. 이후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하게 되자 무리하게 수사 기간을 늘리면서 피고인들은 물론 삼성 전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회계와 합병 등과 관련해 삼성 임원 30여명은 현재까지 100여차례나 검찰에 소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애초 ‘수사 대상이 아니다’는 비판도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삼성의 회계 이슈는 부실을 숨기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하거나 가공한 사례와는 달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어떠한 회계처리 방식으로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병태 KAIST 교수(경영학)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한 건은 전 정부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한 사항인데 정권이 바뀌자 분식회계로 돌변했다”며 “회계학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논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부회장 측이 검찰보다는 심의위에 결정을 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 증거 부족으로 기소가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 사건에 대해서 심의위가 기소 의견을 낸 전례가 있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심의위의 결정이 갈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청윤·정필재·나기천 기자 pro-ver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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