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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지느러미만 봐도 알아요···"제주해안서 돌고래 만나면 꺼내보세요" [살아남아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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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기범 기자의 살아남아줘서 고마워(32) - 제주 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를 만나면 ‘지느러미목록(Fin Book)을 꺼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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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의 2019년 등지느러미 목록(Fin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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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안도로, 특히 남동쪽의 서귀포시 대정읍 해안도로를 지나다보면 높은 확률로 남방큰돌고래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운이 살짝만 좋으면 국내에선 제주에만 사는 남방큰돌고래들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한 덕분에 이 도로에는 돌고래 카페도 들어서 있고, 돌고래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가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해양생물을 육안으로 또는 쌍안경 등으로 보고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주 가까이에서 보거나 망원 카메라로 촬영해서 보지 않는 이상 어려우리라 생각하시겠지만 의외로 쉽게 남방큰돌고래들을 개체별로 식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개체마다 지느러미 형태가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돌고래들의 지느러미는 태어날 때는 매끈하고,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성장하면서, 또 성체가 된 이후 상처를 입고, 긁히면서 저마다 독특한 형태를 지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지느러미에 상처가 없는 개체는 식별이 어렵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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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의 2019년 등지느러미 목록(Fin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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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와 일본 교토대 출신 연구자들로 구성된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가 최근 공개한 ‘2019년 등지느러미 목록(Fin Book)’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MARC 연구진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등지느러미 사진과 상세 설명을 담은 자료를 모아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등지느러미 목록’이란 위에서 설명해드린 것처럼 돌고래의 개체 식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등지느러미 사진을 촬영한 뒤 일련번호를 부여한 연구자료를 말합니다.

연구진은 “돌고래를 연구하는 데 있어 개체 식별은 많은 연구의 가장 기초적인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라며 “개체 식별에는 몸, 가슴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 등지느러미, 두부의 형태나 상처 등 다양한 외형적 특징이 주로 사용됩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어 “다만 포유류인 돌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오면 몸의 다른 부분은 보이지 않더라도 등지느러미는 항상 수면 밖으로 드러납니다”라며 “따라서 일반적으로 등지느러미의 형태나 상처 등의 특징이 개체 식별에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라고 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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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등지느러미 모습. 2019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등지느러미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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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남방큰돌고래 춘삼이의 등지느러미 모습. 2019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등지느러미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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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이 올해 공개한 등지느러미 목록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면 모두 154장의 등지느러미 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이들 사진에는 각각 연구진이 부여한 식별코드와 특징이 있는 개체의 이름, 성별, 성체인지 새끼인지 등을 나타내는 정보 등이 함께 기재돼 있습니다. 사진이 154장인데 식별번호가 164번으로 끝나는 이유는 사망이 확인된 개체이거나 동일한 개체로 판명이 난 사진들을 추려냈기 때문입니다.

다만 등지느러미 사진이 154장 실려있다고 해서 제주에 최소한 154개체의 남방큰돌고래가 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등지느러미로 구별하기 어려운 개체는 포함되지 않았고, 아직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개체들도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 개체군 수를 계산하는 것은 좀 더 복잡한 계산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만 매년 수 차례에 걸쳐 제주에서 남방큰돌고래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대략적인 개체 수를 짐작해 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주 연안의 남방큰돌고래 수는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최근 10여년 동안 계속해서 100~120개체 사이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연구진에게 포착되지 않는 개체들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이 숫자를 크게 넘어서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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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제주 대정읍 앞바다에서 포착된 남방큰돌고래 ‘백도’의 모습. 핫핑크돌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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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제주 대정읍 앞바다에서 포착된 남방큰돌고래 ‘백도’의 모습. 핫핑크돌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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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제주 대정읍 앞바다에서 포착된 남방큰돌고래 ‘백도’의 모습. 핫핑크돌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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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느러미목록을 보면 일반인들도 제주 해안도로에서 망원경이나 육안, 카메라 등으로 돌고래를 관찰한 뒤 자신이 관찰한 돌고래가 어느 개체인지를 찾아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2013년 7월 방류하면서 등지느러미에 숫자 1을 새겨놓은 제돌이나 숫자 2가 새겨진 춘삼이가 아니더라도 지느러미의 형태만으로 개체 식별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느러미 목록을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돌고래들 중에는 사람들의 걱정을 살 정도로 등지느러미의 상처 자국이 큰 개체들도 있습니다. 식별번호 JTA096인 ‘백도(100°)’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돌고래 백도 등지느러미의 상처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선박과 충돌하면서 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등지느러미에 약 100도 정도의 큰 상처가 있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이렇게 큰 상처가 등지느러미에 있는 백도는 2013년 처음 관찰돼 현재까지도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돌고래이기도 합니다. 현재 제주 바다에서는 대형 선박은 물론 해상관광을 위한 제트스키나 고무보트 등이 다수 운행되고 있고, 이들 중 일부는 돌고래 무리에 가까이 접근해 돌고래들을 교란해 물의를 빚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로 인해 핫핑크돌핀스 등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제주도 차원에서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것은 물론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지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해양수산부에도 해양포유류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할 것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치들은 먼 옛날부터 제주 연안을 토대로 인간과 공존해온 남방큰돌고래들이 앞으로도 존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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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남방큰돌고래들이 제주 모슬포항 앞바다에서 물 밖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왼쪽 동그라미 안은 삼팔이, 오른쪽은 나오 등지느러미. 김창길 기자·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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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제주도를 찾아 대정읍 쪽에 가서 돌고래들을 관찰하게 되신다면 휴대전화에 미리 지느러미목록을 다운로드 받아두었다가 살펴보시는 건 어떨까요. 제주 바다의 터줏대감인 남방큰돌고래들이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제주 바다도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등지느러미 목록은 생명다양성재단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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