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5개월 앞두고 부활한 인종 정치
68년 닉슨 '침묵하는 다수'로 험프리 꺾어
트럼프 강경 진압론도 보수 백인층 타깃
플로이드사건 중도층 결집에 바이든 유리
48.3% 대 41.0%, 트럼프와 격차 소폭 벌려
시위 장기화땐 트럼프 지지 결집 세질 수도
군대를 동원한 시위 강경 진압 방침을 밝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세인트 존 교회를 방문한 데 이어 2일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워싱턴 DC 요한 바오로 2세 성지를 방문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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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침묵하는 다수! (SILENT MAJORITY)라고 적었다. 군대 등 연방 자원을 총동원한 강경 진압 방침이 다수 백인과 시위대를 분리해 표를 얻으려는 대선 전략임을 내비친 셈이다. 전날 "법질서 대통령"을 선언한 것도 1968년 소요사태 당시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의 법질서(Law and Order) 슬로건을 따라 한 것이다.
이에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2일 "체계적인 인종차별 해결"을 내세워 극명한 대조를 보이면서 대선을 5개월 앞두고 미국에서 다시 인종 정치가 부상하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필라델피아 시청에서 지난 3월 이후 석 달 만에 공개연설을 하면서 트럼프의 분열 전략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는 2일 필라델피아 시청에서 연설을 통해 "트럼프가 나라를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며 "지금은 체계적인 인종차별을 해결할 때"라고 비판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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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가 이 나라를 해묵은 분노와 새로운 공포로 분열된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며 "나는 공포와 분열을 뒷거래하지 않을 것이며, 증오의 불길을 부채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나라를 오래도록 괴롭혀온 인종차별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며 이를 정치적 이득을 얻는데 이용하지 않겠다"라고도 선언했다.
그는 "폭력과 약탈은 설 자리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1일 백악관 인근 세인트 존 교회에서 성경을 든 채 사진촬영 행사를 하기 위해 최루가스와 폭음으로 평화적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고도 비난했다. "성경책을 휘두르는 대신 한 번이라도 성경책을 펼쳐보면 배우는 게 있을 것"이라며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도 읽어보라"고 하면서다.
이어 "피부색 때문에 너무나 자주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바이러스로 10만명 이상 숨지고 4000만명이 실직할 때도 흑인과 소수인종은 불균형적으로 희생된다"며 "지금은 체계적인 인종차별을 해결해야 할 때"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지 않았다. 그는 트위터에 "바이든은 40년 동안 정계에 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이제 해답을 가진 척한다"며 "그는 정작 문제가 뭔지조차 모른다"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나약함은 무정부주의자와 약탈자, 폭력배를 이길 수 없다. 바이든은 평생 정치적으로 나약했다"라며 '법질서'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인종 투표 전략을 펴는 건 백인의 인구 비율은 60%지만 전체 투표자 중 비중은 73%로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미국 인종별 투표자 비율 [2018년 미국 중간선거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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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 주립대 교수는 "인종 정치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미국 정치의 막후에서 작용한다"라며 "2008년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자 공화당은 미 의회 상·하원은 물론 주지사 선거도 승리하며 입지를 강화했다"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에 대한 반발로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인 '딥 사우스'(미 남동부)가 공화당에 넘어간 것도 마찬가지다. 슈미트 교수는 "2020년 미국의 대분열에서 인종은 아주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 직후 여론조사에선 바이든 전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소폭 유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CBS 방송이 전국 성인 2071명을 상대로 지난달 29일~지난 1일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시위 대응방식에 대해 '지지한다'는 32%였고 '지지하지 않는다'가 49%로 높게 나왔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양자 대결에서도 바이든은 48.3%로 트럼프(41.0%)를 7.3% 포인트 앞섰다. 25일 이전 5월 여론조사 평균인 바이든 47.9%대 트럼프 41.9%에 비해 1.3% 포인트 차이가 더 벌어진 셈이다. 다만 최근 CBS 조사에서 투표 확실층(1486명)은 바이든과 트럼프가 47% 대 43%로 4%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전후 트럼프 vs 바이든 양자 대결 지지도. [자료: fivethirtyeigh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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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슈워츠 밴더빌트대 정치학 교수는 "지금 당장은 트럼프의 대응에 실망한 일부 중도 유권자가 이탈해 바이든의 지지층이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면서도 "트럼프 지지층보다 결집력이 약한 바이든 지지자의 결집이 대선까지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국적 폭력시위가 장기화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노리는 '침묵하는 다수'가 1968년 대선 때처럼 움직일지도 변수다.
당시 닉슨 후보는 1968년 4월 마틴 루서 킹 목사, 6월 로버트 케네디 암살 사건이 전국 100여개 도시에서 폭력 사태로 번지자 "미국에 질서를 회복할 것"이란 '법질서' 제목의 TV 정치광고를 했다. 피 흘리는 대학생 시위대와 불타는 건물, 군대 진압 모습과 섬뜩한 배경 음악이 흐르는 광고 속에 흑인 시위대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는 선거 내내 "법을 지키는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하는 법질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로 대선 선거인단 301명을 확보해 민주당 허버트 험프리 후보(191명)에 압승했다.
슈미트 교수는 "침묵하는 다수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를 놓쳤지만, 닉슨은 알아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1968년의 미국은 백인 인구가 89% 압도하던 때여서 닉슨을 따라하다가는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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