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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쌍둥이에게 생명을 준 은인이 ‘천사님’이 되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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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22년 만에 현충원 안장…양언 소방위 생전의 미담

경향신문

지난달 29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양언 소방위(현수막 사진) 안장식이 거행됐다. 양 소방위는 32년 전 응급조치로 산모 김현미씨와 쌍둥이 아기를 구했다. 2010년 김씨가 감사의 뜻을 전하려 했으나 양 소방위는 구급출동 중 교통사고로 순직한 뒤였다. 군산소방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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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과거의 은인 찾는 편지…주인공은 98년 출동 중 별세
10년 노력 끝 ‘소방영웅’ 추서…“고인의 큰 사랑 갚으며 살 것”

지난달 29일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공무원 묘역. 소방관으로는 122번째 국립묘지에 묻힌 고(故) 양언 소방위 안장식에서 전북 군산소방서 정은애 금동 119안전센터장이 추도사를 읽어 내려갔다.

“안장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배님과 한 산모의 가슴 뭉클한 사연을 접하고 우리의 역할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32년 전 발생했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모든 결정과 책임이 국민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잊지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32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88년 3월2일 0시30분, 전북 익산시 외곽에 살던 임신부 김미현씨(당시 29세)에게 진통이 시작됐다. 가족은 급히 택시를 수소문했지만 외진 곳이어서 차를 구하지 못했다. 상황이 급해지자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구급차를 몰고 달려온 이는 양언 소방관(당시 36세)이었다. 구급차는 김씨가 다니던 인근 산부인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쌍둥이 중 한 아이의 다리가 몸 밖으로 나오다 걸려 있다”며 “엄마와 태아의 상태가 위급하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대학병원으로 차를 돌린 양 소방관은 이송 중 응급조치를 취하며 김씨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두 손을 꼭 잡아줬다. 응급실에 도착한 김씨는 산고 끝에 무사히 쌍둥이 자매를 낳았다. 양 소방관은 동이 터 오는데도 한동안 응급실을 떠나지 못하다 산모와 쌍둥이가 건강하다는 말을 듣고서야 자리를 떴다.

이 사연은 22년 뒤에야 알려졌다. 산모 김씨가 2010년 익산소방서에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김씨는 “출산 때까지 모든 상황을 끝까지 지켜준 천사 같은 소방관을 찾고 싶다”면서 “시간은 흘렀지만 두 딸이 반듯하게 컸으니 이제라도 은혜를 갚고 싶다”고 부탁했다.

익산소방서는 수소문해 미담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하늘나라에 가 있었다.

1998년 구급출동 중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와 아들(현재 소방관)을 두고 순직한 양언 소방위가 그였다.

김씨는 망연자실했다. 그는 “이제야 천사님을 찾았는데 고인이 되셨다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면서 익산소방서 모든 소방대원들에게 양말과 떡, 과일 등을 전달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간 군산 종중묘지에 묻혀 있던 양 소방위의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해온 군산소방서는 그가 국민소방영웅으로 추서됐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김씨에게 전했다.

모녀는 뛸 듯이 기뻤다. 이날 안장식에 김씨는 물론 간호사와 언어치료사가 돼 사회봉사를 실천 중인 두 딸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안장식을 손꼽아 기다려온 모녀는 갑자기 집안에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달려오지 못했다. 대신 이들은 “함께하지 못해 너무 서운하다. 따로 시간을 내 대전현충원을 참배할 예정이니 묘지번호를 알려달라”는 문자메시지를 군산소방서에 보냈다.

김씨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그날 그 자리에서 죽는 줄로만 알았던 쌍둥이 두 딸은 소방관께서 베풀어주신 큰 사랑을 갚아 나가는 일을 하고 있다”면서 “아이들이 커갈 때 그분이 베풀어주신 큰 뜻을 잊지 말고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삶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라고 당부해왔고, 두 딸이 잘 따라줬다”고 전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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