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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8월의 포성 - 바버라 터크먼 [김정섭의 내 인생의 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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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 않은 전쟁

경향신문

<8월의 포성>은 1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 1개월간의 전사를 다룬 역사서다. 1962년 발간되자마자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책이다.

딱딱한 전쟁사를 어쩌면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서술할 수 있을까. <8월의 포성>은 1차 대전 당시의 인물들과 상황을 바로 눈앞에 펼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을 사건 속으로 깊숙이 끌고 들어간다. 정리된 2차 자료가 아니라 각종 편지, 일기, 비망록, 내각의 문서와 전투명령서가 글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8월의 포성>은 재미있는 책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 본인은 어떤 도덕적 결론을 얻기 위해 저술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핵전쟁의 문턱까지 갔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 외교도 그 한 사례였다. 젊고 경험이 적었던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 위협에 단호하게 대처하면서도 냉철함과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던 데에는 그가 읽었던 이 책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1차 대전은 당시 유럽의 정치, 군사 지도자들이 범했던 오판과 과오의 결과물이었다. 군은 방어가 유리했는데도 공격 우위의 교리에 매달렸고, 민간 지도자는 떠밀리다시피 전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동원령이 몰고 올 위기증폭 효과에 무지했고, 모든 나라가 상호 공포와 두려움에 굴복했던 것이다. 1차 대전을 두고 ‘침략자 없는 전쟁’ ‘의도하지 않은 전쟁(unintended war)’이라고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우리도 위협을 억제하려는 노력 못지않게 위기관리의 실패를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단호함 못지않게 신중함이 필요하고, 민과 군 간의 소통에 유념해야 하지 않을까.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피하려고 몸부림쳤는데도 1000만명이 넘는 인명을 앗아간 대전쟁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잘못된 정세 판단, 군사와 외교의 단절, 위기관리에 대한 몰이해. 1차 대전에서 드러났던 이 어처구니없는 오판을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김정섭 | 국방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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