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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리뷰]연극의 절박한 기록, 삶서 유효…'이게 마지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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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서울=뉴시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2020.06.01. (사진 = 연우무대 제공)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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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연우무대 66번째 정기 공연작인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마음이 칼에 배인 듯 얼얼함을 안긴다.

1년 만에 돌아와 지난달 7일부터 31일까지 연우소극장에서 관객들을 다시 만난 작품.

고용인의 '약속'에서 계속 소외되며, 삶의 숨 쉴 공간까지 위협받는 노동자 개개인의 서글픈 초상을 그린다. 생계가 위험해질 때 이성적 분별은 하릴없고, 연대는 무력해진다.

예정된 근무시간보다 30분 먼저 나와 물건을 정리하는 시간에 대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편의점 직원 '정화', 밀린 돈을 수금하지 못하면 회사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학습지 교사 '선영',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해도 공부할 돈을 모으지 못하는 '보람'.

삶의 얄팍함에 외마디 비명을 질러도 돈이 채워지지 않는 노동의 빈곤 속에, 관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마냥 쳐다보는 일 뿐이었다.

특히 삶의 불안에 떠는 정화의 고립감은 고공농성 뒤에 방에 갇혀 사는 남편의 그것보다 더하다. 두 아이를 보살피며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편의점에서 일하는 그녀의 삶은 전혀 나아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연극은 지난해 초 426일이라는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끝에 겨우 땅을 밟은 '파인텍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고공농성을 한 지 355일 만인 최근 땅을 밟은 또 다른 해고노동자의 이야기는 최근 또 나왔다.

연극은 노동의 불안정함이 일부 노동자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누구나 몸 하나 겨우 뉘일 만한 고공의 탑에서 몸부림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슬픔의 깊이보다 삶의 모순의 수렁이 더 깊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드는 이연주 작가의 글, 정서적 진폭이 큰 작품의 흐름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한 이양구 연출의 조합은 탄탄하다.

이 작가는 '인정투쟁; 예술가편', '전화벨이 울린다' 등 소수자 문제를 꾸준히 작품 속에 담아왔고, 이 연출은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 기지촌 여성, 청소년 등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왔다. 삶에 대한 태도가 작품에 그대로 묻어나는 모범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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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2020.06.01. (사진 = 연우무대 제공)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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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때론 화가 난 듯, 때론 체념한 듯, 때론 울부짖는 듯한 표정을 모두 갖고 있는 정화 역의 배우 이지현의 연기는 지금 대한민국 노동계의 엄혹함을 압축해놓은 듯하다.

극의 마지막에 보람은 불이 꺼지지 않는 24시간 편의점의 문을 걸어 잠근 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문구를 통유리에 써붙인다. 그녀 역시 이 편의점에서 노동력을 강탈 당한 전력이 있다.

그 안에 있어야 할 정화는 보조열쇠를 찾고도 밖에서 지켜볼 뿐이다. 멀리서 감시 카메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점장은 정화에게 해결하라고 요구하지만, 그녀는 "와서 봐야지 안다"고 답할 뿐이다.

극 중 '이게 마지막이야'라는 외침은 '나 좀 봐 달라'로 치환된다. 이 연극의 절박한 기록은 무대 예술이 삶에서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년 초연했고, 2019 월간 한국연극 선정 '공연 베스트 7', 2019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2019 레드어워드 '주목할만한 시선'에 선정됐다.

오는 5일 오후 경기 일산 킨텍스홀에서 열리는 TV·영화·연극 종합 예술시상식 '제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이 작가가 백상 연극상, 이지현이 여자최우수 연기상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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