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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나를 위한 선물', 코로나로 우울한 마음 쇼핑으로 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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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보복 소비 일어나는 세 가지 이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명품 매장 앞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줄 서 있다. 감염 우려에도 더는 못 참겠다는 소비자들이 억눌러온 소비 욕구를 분출시키는 일명 ‘보복 소비’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긴급재난지원금까지 지급되자 꽁꽁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나아진 듯하다. 하지만, 경제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세계 경제가 도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4월 국내 취업자는 1999년 IMF 외환위기 직후 최대 감소 폭을 보였다. 4월 수출은 24% 급감했다. 이코노미조선은 소비자들이 보복 소비에 나서는 이유를 심리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경제에 미칠 영향을 따져봤다. [편집자 주]

소비도 결국 심리와 연결
쇼핑이 정신과 상당보다 싸다?
플렉스·가치 소비 문화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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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샤넬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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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소비’하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결핍을 채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비는 인간의 감정, 심리와도 연결돼 있다. 우리는 때로 정신적 결핍을 보충하기 위해 지갑을 연다. 배가 고파 밥을 먹기도 하지만, 마음속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음식을 찾는 것과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 약 4개월이 지났다.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다는 생각에 ‘더는 못 참겠다’며 활동을 재개한 소비자가 늘고 있다. 황금연휴 전후로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명품 매장 앞에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장기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지만, 국내 시장에서 4월 슈퍼카 판매를 보면 롤스로이스(10대), 포르셰(1018대), 람보르기니(26대), 벤틀리(17대) 등은 불티나게 팔렸다.

국내 소비자심리지수는 1월 104.2에서 2월 96.9, 3월 78.4, 4월 70.8까지 연속해서 떨어졌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장기 평균(2003~2019년)보다 소비자 심리가 낙관적이라는 의미고, 100 이하면 그 반대다. 수치에서 볼 수 있듯 소비자 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는데 보복 소비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했다.

◇ 이유 1│우울해진 마음에 대한 보상 심리

보복 소비는 코로나19 탓에 일상생활로 복귀하지 못한 우울한 마음을 쇼핑으로 풀고 싶은 심리가 바탕이 됐다는 의견이 많다. 2011년 프랑스 파리공립경영대학원 셀린 아탈레이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마거릿 멀로이가 쇼핑몰을 방문한 2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부정적 마음이 소비로 이어지는 결과가 나왔다. 설문 조사에서 계획에 없던 ‘나만의 선물’을 구매한 사람이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쇼핑 전에 기분이 더 언짢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 방송인 태미 페이 바커가 한 말로 유명한 "쇼핑이 정신과 상담보다 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인은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회적 거리 두기, 재택근무, 외출 자제 등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자 답답함을 호소하고, 우울해한다.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보복 소비 현상은 코로나19에 보복하듯 미뤄 둔 소비를 한꺼번에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기를 덜 타는 구매력 높은 고소득층이 선제적으로 소비를 재개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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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 기간이던 5월 4일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기흥점은 고객들로 가득했다./ 롯데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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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 2│외출 자제로 미뤄둔 쇼핑 수요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 후에도 오프라인 소비가 줄고 언택트(untact·비대면) 문화가 급격히 확산할 것이라고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사람들은 언택트 생활보다 일단 밖으로 나가고, 오프라인에서 미뤄둔 쇼핑을 하고 싶은 욕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전문 기업 칸타가 2월 6~9일 중국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사태 후 가장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65%의 응답자가 "사람들과 함께 외식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해당 조사는 중복 응답으로 이뤄졌다. 그 뒤를 쇼핑(58%), 야외 오락(55%), 야외 운동(53%), 여행(45%)이 이었다. 칸타는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왜 애완견이 매일 산책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5월 황금연휴를 전후로 급격히 줄면서 소비가 점차 살아나고, 한강에 다시 사람들이 대거 출몰한 것도 장기간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며 억눌려온 욕구가 폭발한 결과다.

◇ 이유 3│플렉스 문화, 가치 소비, 자기만족 소비 트렌드

보복 소비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가치 소비, 자기만족 소비 트렌드가 확산한 결과이기도 하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밀레니얼 세대(1981~96년 출생)가 기성세대와 달리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소비를 줄이지 않은 영향이 있다고 봤다. 밀레니얼 세대는 개인의 행복과 현재의 만족을 가장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20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플렉스(flex·과시) 문화도 보복 소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실제로 롯데멤버스가 2019년 명품 구매자 332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와 데이터 분석 결과를 담은 ‘트렌드Y 리포트’에 따르면, 20대의 명품 소비가 2년 사이 7배 이상 늘며 명품 소비 시장의 주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명품 정보를 얻어 고가 명품을 구매하는, 소비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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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러너. 미시간대 심리학 학사, UC 버클리 심리학 석·박사, 하버드대 공공정책학 박사




◇ [Interview] 제니퍼 러너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 "우울한 사람은 구두쇠가 아니다"

우울할 때 자기 자신에게 평소보다 관대한 마음으로 스스로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물건을 구매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울함과 소비가 관련 있을까. 제니퍼 러너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이코노미조선’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이후 나타나는 보복 소비 현상에 대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사람들에게 우울한 감정을 야기했고, 소비자들은 이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과소비하고 있다"고 했다.

러너 교수는 "사람들이 상실감과 우울함을 느낄 때 암묵적으로 정신적 결핍을 채우겠다는 목표가 발동하고 물건을 사는 데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며 "2008년 미 카네기멜런대학교의 신시아 크라이더 교수 연구팀 등과 함께 연구한 ‘우울한 사람은 구두쇠가 아니다(misery-is-not-miserly)’는 이론이 이를 잘 설명한다"고 했다.

당시 연구팀은 18~30세 33명을 대상으로 절반에게는 슬픈 영화를 보여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뒤 물병을 사게 했다. 첫 번째 그룹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심어주고, 다른 그룹에는 아무 감정 동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슬픈 영화를 본 그룹이 30% 더 많은 돈을 지불해 물건을 샀다. 실험팀은 우울함을 느낄수록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상실감을 갖게 되는데, 비싼 물건을 사며 자신의 낮아진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너 교수는 "돈 있는 사람이라면 코로나19로 우울함을 느껴 소비 욕구가 계속 강화될 것"이라면서도 "소비 지출은 보복 소비하는 물건의 라벨 가격 정도만 오를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보복 소비 현상이 나타날지에 대해 그는 "돈 있는 사람은 그럴 것"이라며 "다만, 많은 사람이 그럴 형편이 안 될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는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면 단기적으로는 경기가 나아질 수 있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신용카드를 쓴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봤다. 러너 교수는 "중국 시난(西南)재경대학이 자국민 2만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코로나19 이후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인다고 답한 것을 보면 소비자들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모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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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소비] ⑦보복 소비 경제 효과 있을까
[보복 소비] ⑧<Interview> 경제 전문가 3人이 바라본 보복 소비

안상희 이코노미조선 기자(hu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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