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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엄근진' 리춘희 대신, 일곱살 리수진이 "행복합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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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했던 체제선전물, 친근함 앞세워 젊은층 공략

트렌치코트 차림 은아, 유창한 영어로 평양 소개

7살 수진이, 학용품 들고 "원수님께 보답할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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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수진이란 이름의 북한 7살 어린이가 유튜브 채널에서 피아노를 치며 일상을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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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에 친숙한 외국 젊은 세대에 파고들기 위해 선전·선동 전술에 변화를 주고 있다. 호전적이고 반미 일색이던 선전물에서 탈피해 리수진이란 7세 여아가 밝은 얼굴로 피아노를 치며 “행복합네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의 영상물을 제작해 SNS에 집중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이런 선전물을 유튜브에서 무심코 클릭하는 한국의 10대도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정일 부자(父子) 배지를 단 붉은 저고리 차림으로 “수령님 은혜”를 외치던 조선중앙TV 간판앵커 리춘희의 시대가 가고 ‘유튜버 수진이’가 북한 선전·선동의 최전선을 누비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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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유튜브 채널 'Echo DPRK' 영상물에서 한 여성이 북한 시내를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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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여성비하 논란에도 젊은 세대 취향을 저격하는 탁월한 기획력으로 문재인 정부의 각종 정책 홍보를 지휘한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 같은 인물이 북한에도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작년 1월 행정관에서 물러난 그는 31일 신임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임명됐다. 대통령 의전 및 각종 행사를 총괄하는 자리로 16개월 만에 화려하게 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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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 간판 앵커 리춘희.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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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체제 선전에 유튜브 등 SNS를 활용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0년대 들어서 각종 인터넷 웹사이트나 SNS 계정을 만들어 운영해왔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만든 '우리민족끼리TV'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콘텐츠는 대부분 ‘엄근진(엄숙·근엄·진지)’한 관영 매체 보도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강렬한 붉은색의 선전 문구 아래 살벌한 군사용어를 동원한 체제 선전물이 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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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북한의 체제선전용 유튜브 채널은 ‘친근함’을 무기로 내세우는 모양새다. ‘Echo DPRK’라는 유튜브 채널 계정에선 은아라는 한 젊은 북한 여성이 ‘은아의 평양 투어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일주일에 2~3개 영상을 올린다. 채널 이름을 ‘메아리’가 아닌 ‘에코’라는 영문으로 작명한 점도 해외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은아는 이 채널에서 한복 차림이 아니라 꽃무늬 블라우스에 트렌치 코트를 입고 나온다. 종이 원고지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자연스럽게 평양의 려명거리 등을 소개한다. 구독자는 약 1만2000명이다.

'New DPRK' 계정은 지난 4월부터 약 한 달간 평양에 사는 7살 어린인 ‘리수진’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상물 3편을 공개했다. 리본이 달린 깨끗한 원피스에 양 갈래 머리를 하고 피아노를 치며 행복한 일상을 자랑하는 등의 내용이다.

‘수진이네’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고, 집 내부에는 대형 소파, 금붕어 어항 등이 보인다. 그는 별일 아닌 양 이런 집안을 보여주다가 학용품 선물을 받고선 "훌륭한 사람이 돼서 원수님께 보답하겠다"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며 말한다. 한국 드라마 속 간접광고(PPL)처럼 ‘김정은 우상화’ 코드가 녹아 있는 것이다.

이 영상 조회 수는 5만회에 육박한다. 콘텐츠 대부분이 한국어로 제작되는 점, 북한 주민의 인터넷 사용이 제한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 영상물의 공략 타깃은 주로 ‘남조선 주민’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북한이 체제 선전 목적으로 제작한 영상물을 우리 국민이 시청해도 문제없을까.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27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에서 만든 방송과 동영상을 보는 것 자체는 현재 법이 금하고 있지 않다”며 “다만 이것을 제3자에게 전파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 시청은 가능하지만 이를 퍼나르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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