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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법률판] 왼발 대신 오른발 수술 해놓고…실수 아니라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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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정영희 법률N미디어인턴]
머니투데이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자료사진입니다/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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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살 아기의 부모가 의료사고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왼쪽 발등의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로 했는데 는 정작 수술실에서는 오른쪽 발등에 대한 수술이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생후 20개월 된 A군은 양쪽 발등을 다쳐 지난 23일 입원했는데요. 이중 왼쪽 발등은 염증으로 심하게 부은 반면 오른쪽 발등의 상처는 상대적으로 경미했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한 후 왼쪽 발등 상태가 좋지 않다며 이틀 후 왼쪽 발등에 대한 수술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A군의 부모가 사인한 수술 동의서에도 왼쪽 발등 염증을 제거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죠.

그리고 예정된 수술 당일 1시간 가량의 전신마취 수술이 진행됐는데요. 수술실에서 나온 A군의 모습을 본 부모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술 부위가 오른쪽 발등이었기 때문인데요.​

의료사고가 의심된 A군 부모는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병원 측은 '수술실에서 보니 오른쪽 발등 상태가 더 심한 것 같아 수술 부위를 변경한 것뿐 과실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A군 부모는 이런 병원 측의 해명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제대로 된 사과없이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며 고소를 검토하고 있는데요.

환자 보호자의 동의도 받지 않고 엉뚱한 부위를 수술한 의사의 행위, 의료사고가 인정될까요?

◇의료사고 낸 의사, 형사고발할 수 있을까

A군 부모는 수술 집도의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할 생각입니다. 이처럼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피해를 입었을 경우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업무상과실치상죄를 묻는 경우가 많은데요.​

형법에 따르면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여기서의 업무자란 사람을 상해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할 위험성을 내포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말하는데요. 의사의 수술이나 처치 등은 사람의 신체와 생명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업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형법 제268조)​

그러나 의료사고가 났다고 해서 의료인이 무조건 형사 책임을 지게 되는 건 아닙니다. 의료인의 과실은 의료인이 마땅히 지켰어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을 의미하는데요.

이런 주의의무 위반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의료인의 행위가 환자의 생명·신체에 위험 또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부주의하여 그러지 못한 경우와 여러 수단을 통한 의료행위 중 가장 적절한 방법을 택해 환자에게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 과실이 있는 경우인데요.

판례 또한 의료사고 과실 유무에 대해 다양한 기준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해당 처치 방법이 일반 의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지 △평균적·표준적 의사의 행위를 기준으로 했는지 △통상적이고 건전한 의료관행을 따랐는지 △의료행위가 얼마나 긴급했는지 △환자에게 특이체질이 있었는지 등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상황을 두루 파악해 의료사고에서 의사의 과실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를 결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의료인을 처벌할 만큼 의료인의 과실이 명백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형사소송은 증거가 모호할 때 유죄판결을 내리지 않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의료사고를 이유로 의료인을 처벌하려면 과실이 있었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해야 합니다. (대법 2002도6110 판결)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민사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의사나 병원을 상대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건데요. 의료행위 중에 의료인이 마땅히 취했어야 할 최선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음이 증명된다면 민사소송을 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의 발생을 증명할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환자 측이 의료행위의 불완전성이나 불법행위를 입증하고, 이에 따른 인과관계까지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에 의료사고에 의한 민사소송의 경우 환자 측의 입증책임을 완화해가는 추세입니다.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인의 과실이 있었다는 점과 환자가 병원에 가기 전에는 의료행위 이후에 발생한 증세가 몸에 나타나지 않았고 이러한 결과에 영향을 끼칠 다른 원인이 없다는 점만 입증하면 족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설명의무 위반'는 충분히 인정될 듯

의료사고를 다투는 재판의 경우, 의료행위에 있어서 의료인의 과실을 판단하기 위해 여러 조건이나 환자의 부주의 및 기타 제반 사정을 따져봐야 합니다. 그렇기에 A군의 부모 역시 수술 집도의를 고소한다고 해서 업무상과실치상으로 그가 처벌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의료인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료인은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행위의 전 과정에서 설명의무를 가집니다. 환자 또한 본인이 받을 의료행위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해 의사로부터 자신의 질병에 대한 치료방법 등에 관해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집니다. (보건기본의료법 제12조)

아울러 의료법 또한 의사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이나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 위 사항을 설명하고 서면으로 그 동의를 받아야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의사에게 진료 및 처방을 받기로 하는 것을 하나의 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봅니다. 의료인이 환자에게 진료에 대한 동의를 받지 않으면 의료계약상 의무위반에 해당하기에 계약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죠. A군과 같은 미성년자나 의사무능력자의 경우 의료행위에 동의할 수 있는 자인 가족이나 법정대리인이 대신 동의해줄 수 있습니다. (대법 94다35671)​

판례는 의사의 설명의무를 의료행위 전반에서 폭 넓게 인정하는 편인데요. 다만 정신적 고통에 의한 위자료 청구는 수술 이후 나쁜 결과의 발생 가능성이 큰 의료행위나 사망 등의 중대한 결과 발생이 예측되는 의료행위에서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을 때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A군의 경우 수술동의서에 왼발 수술에 관한 부분이 적혀 있었으나 실제로 수술한 것은 오른발이므로 설명의무 위반이 충분히 인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로 인해 A군 부모가 받은 정신적 충격에 대한 손해배상이 가능할지는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글: 법률N미디어 인턴 정영희

정영희 법률N미디어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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