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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한은, 올 성장률 -0.2% 전망 “코로나 악화 땐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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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전망치 2.1%에서 대폭 낮춰

기준금리 0.25%P 내려 연 0.5%로

“감당 가능한 최저치까지 인하”

더 내리면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

중앙일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오전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현재 연 0.75%에서 0.5%로 인하했다. [사진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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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충격과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28일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0.75%에서 연 0.5%로 인하했다. 지난 3월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춘 지 약 두 달 만이다. 시장에선 동결 전망이 우세했지만 한은은 먼저 칼을 빼 들었다. 제척 사유(주식 초과 보유) 발생으로 표결에 참석하지 못한 조윤제 위원을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전원이 금리 인하를 택했다.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는 “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고, 설비투자 회복도 더딘 상황”이라며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취업자 수 감소 폭이 확대되는 등 고용 상황도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3차 추경이 통과되고 국채 발행이 늘면 시장금리가 상승하기 때문에 다음 금통위(7월) 때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경제성장률이 0% 전후로 떨어지고, 물가상승률도 큰 폭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금리를 내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한국 역성장은 1980년, 1998년 단 두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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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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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한은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0.2%로 대폭 수정했다. 한은이 마이너스 성장률 전망을 한 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7월(-1.6%) 이후 11년 만이다. 한국 경제가 역성장했던 건 GDP 통계를 시작한 1953년 이후 80년(-1.6%), 98년(-5.1%) 단 두 차례밖에 없다. 마이너스 성장을 전망했던 2009년에도 실제 성장률은 0.8%였다.

한은 전망은 코로나19 신규·잔존 확진자 수가 2분기 중 정점을 찍고, 봉쇄조치가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걸 전제로 했다. 확진자 수 정점이 3분기로 밀리고 봉쇄조치 완화도 늦어지면 -1.8%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수출·소비·투자가 함께 죽을 쑤고 있다. 3월까지 그나마 버텼던 수출은 4월부터 낙폭이 확 커졌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4월 24.3%, 5월(20일까지) 20.3% 각각 감소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국제 교역이 얼어붙은 여파다. 미·중 갈등도 골칫거리다. 두 나라가 거칠게 싸우면 중간재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어떤 형태로도 득을 보기 어려운 구조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며 “국내 경기는 상반기 중 크게 위축됐다가 하반기부터 소비와 수출 회복으로 완만하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또 한 번 구원투수로 나선 배경이다.

하지만 당장 금리 인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때만 해도 기준금리가 5%대였다. 한은이 빠르게 금리를 2%까지 내리면서 돈을 풀었고, 단기간에 큰 효과를 봤다.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가계, 기업의 조달 비용이 줄어 경기 부양 효과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금리가 너무 낮은 상태다. 돈이 부족해서, 이자 부담 때문에 투자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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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별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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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다(원화가치 하락).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 대출금리가 낮아 부동산으로 자금이 쏠릴 가능성도 있다. 더 나빠질 경우에 대비해 한은이 인하 카드를 아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물경기 부진에 대응하는 차원인데, 금리를 내린다고 소비가 늘어날지는 의문”이라며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확실한 신호가 있을 때 내리는 게 더 큰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한은의 판단에 따라 기준금리는 사상 처음으로 0.5%까지 내려왔다. 사실상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최저치(실효하한)까지 낮췄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총재는 “실효하한은 국내외 금융·경제 여건에 따라 가변적이지만 이번 금리 인하로 기준금리가 그 수준에 상당히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실효하한 밑으로 내려가면 경기 부양 등 긍정적 효과보다 해외자본 이탈, 환율 상승, 가계부채 증가 등 부작용이 더 커진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금리가 상당 수준 내려왔기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이 마이너스 금리를 택하지 않는 한 운신의 폭은 좁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열 "필요 땐 국고채 매입 적극 나설 것”

코로나19 위기가 길어지고 한은의 추가적인 대응이 필요할 경우 금리 인하보단 양적완화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국고채 매입을 늘리는 것이다. 이미 연이은 추경으로 적자국채 발행 규모가 커졌다. 곧 편성할 3차 추경과 기간산업안정기금 등의 채권 발행 규모도 상당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 총재는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필요한 경우 국고채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역성장 전망에도 현재로선 코로나19 사태가 빠르게 진정되는 것 외엔 마땅한 반전 카드가 없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거시금융실장은 “시장은 V자 반등을 기대하지만, 확진자 수가 재차 늘어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둬야 한다”며 “그럴 경우 실물경제가 받는 2차 충격이 금융시장으로도 전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채권값은 일제히 상승(금리 하락)했다. 시장 금리의 지표가 되는 국고채 3년물 금리는 0.045%포인트 내린 연 0.818%를 기록했다. 증시도 약세였다.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0.13%, 2.19% 하락했다.

장원석·정용환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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