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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BBC "미국, 믿고 싶은 거짓말 믿고 이라크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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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 실험실 봤다" 이라크인 정보원의 말 채택

"허위 정보… WMD 없다" 英 MI6 보고는 배척

암호명 '커브볼'. 미국 정보기관은 라피드 아흐메드 알완 알자나비를 그렇게 불렀다. 알자나비는 1999년 독일로 망명한 이라크인으로, 자신을 화학공학기술자라고 소개한 뒤 "이라크에서 탐지를 피하기 위해 이동식으로 된 생화학 실험실을 트럭 위에 싣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의 증언은 미국이 2003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가지고 있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됐다. 그러나 알자나비는 나중에 완전한 거짓말이었다고 자백했다.

이라크 전쟁 10주년을 맞아 18일(현지시간) 방송된 영국 BBC방송의 탐사 다큐 프로그램 '파노라마'는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들이 믿을 만한 핵심 정보는 배척하고 허위 정보에 놀아나 전쟁을 일으킨 과정을 추적했다. 애초 영국 정보기관 MI6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보낸 비밀통신에서 "알자나비의 행동에서 허위 정보원의 특성이 나타난다"면서도 "그러나 그가 말한 중요 정보를 믿기로 했다"고 밝혔다. 알자나비가 정보를 조작한 직접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WMD 관련 허위 정보를 제공한 다른 이라크인이 "새 집을 제공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데서 알자바니가 거짓말을 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반면 이라크 핵심 요직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취득한 정확한 정보는 배척됐다. 전쟁 발발 6개월 전 당시 CIA 파리지부장이었던 빌 머레이는 나지 사브리 이라크 외무장관을 뉴욕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머레이가 얻은 정보는 "1990년대 초반까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 자신에게 충성하는 부족들에게 나눠줬고 지금은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머레이는 사브리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 문제에 관심이 깊은 사람처럼 보였다"고 신뢰감을 표시했다. 그런데도 CIA 보고서는 이런 내용을 담지 않았다.

정확한 정보는 또 있었다. 이라크전 발발 2개월 전 이라크 정보당국의 2인자인 타히르 잘릴리 하부시 알티크리티가 요르단에서 MI6 요원을 만났다. 미국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 알티크리티는 "WMD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2004년 이라크전쟁과 관련한 영국의 정보 왜곡 조사를 맡았던 프레데릭 버틀러 경은 청문회 보고서를 발간한 뒤에야 이런 정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머레이는 "우리는 전쟁 전에 최고의 정보를 모았고 그 정보들이 장기적으로 정확한 것으로 판명됐지만 배척됐고 사용되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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